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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최저임금위원회 파행 우려

입력
2018.02.04 17:0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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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1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2차 전원회의가 파행했다. 그날 전원회의에서 다룰 예정이던 최저임금 산입 범위,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 최저임금 준수율 제고 등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못했다. 보도에 따르면,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근로자위원들은 어수봉 위원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대해 개인적 의견을 밝힌 것을 비판하며 그의 사퇴를 요구했다. 만약 위원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향후 최저임금위원회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그러자 공익위원 전원이 위원장과 거취를 같이 하겠다고 밝힌 뒤 회의장을 퇴장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의 파행이 하루 이틀의 것이 아니다보니, 이날의 사건도 일상적인 신경전 또는 힘겨루기의 하나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이 다음 해의 최저임금 전반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시점에 발생했으며, 그 과정에서 공익위원들이 집단 퇴장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최저임금 인상률을 다투다가 근로자위원이나 사용자위원 중 어느 한쪽이 퇴장하는 경우는 있어도, 공익위원들이 집단 퇴장하거나 사퇴 의사를 표명하는 경우는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공익위원 전원이 퇴장을 선택한 이유를 짐작하기 위해서는 1월 31일 전원회의에서 논의하지 못한 안건들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언론보도 등에 의하면, 2차 전원회의의 파행으로 인해 산입 범위 등 주요 현안들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논의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듯하다. 그러나 이 산입 범위 등의 안건은 2018년 최저임금액이 의결된 후 최저임금위원회가 전원회의 등을 통해 제도 개선 과제로 합의한 사항이다. 따라서 이날 근로자위원들의 행동은 스스로 합의한 사항에 대한 논의를 회피한 것이라고 해석될 여지가 있다.

근로자위원들의 비판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최저임금위원회와 같은 합의제 기구에서는 위원들 사이에 신뢰관계가 형성되어야만 실효적 논의가 가능한데, 이러한 행동이 그 신뢰를 무너뜨리고 위원회가 남은 과제를 논의할 책임의 기초를 깨뜨린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공익위원들은 이날 근로자위원들의 행동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위원장과의 동반 사퇴라는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런 결과는 지금 최저임금위원회가 추진하는 제도 개선 노력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최저임금 제도는 1986년 최저임금법이 제정된 이후 내용상 큰 변화 없이 버텨왔다. 그 이유는 최저임금 제도에 관한 주요한 관심사가 그 인상률에 한정되었기 때문이다. 다음 해 임금액을 정할 때에는 떠들썩하다 그 후 일 년 동안 제도의 중요도가 약해지는 일이 반복되다보니 그 개선이 어려웠던 것이다. 이 점에서 최저임금에 관한 관심이 지속되는 요즈음의 양상은 최저임금 제도의 개선이 이뤄질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다. 최저임금위원회 위원들은 이 시점을 최저임금 제도의 개선을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

최저임금 제도는 헌법에 기초하여 저임금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액의 인상률만을 다뤄서는 안 되고 임금 체계 및 가구 구성, 산업 구조 등 다양한 변수에 맞춰 최저임금 제도를 재구성하는 일도 맡아야 한다. 중심부와 주변부 노동시장의 이원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최저임금 제도 역시 그 적용 대상을 좀 더 분명히 하고 이들의 임금 소득 향상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최저임금 제도는 비로소 저임금 근로자의 생활안정을 돕는 진정한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위원회 위원들이 현 시점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공적 책임감을 갖고 더 적극적으로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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