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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정 인턴 기자

등록 : 2017.04.24 15:46
수정 : 2017.04.24 15:47

마라톤 풀코스 42.195km 버진로드를 완주한 ‘항암 신부’

등록 : 2017.04.24 15:46
수정 : 2017.04.24 15:47

2017 런던 마라톤에 참가한 야키에 스쿨리. 야키에 스쿨리 트위터

런던마라톤은 각종 코스튬(무대복)을 입은 참가자들이 주목 받는 대회로 유명하다. 올해도 39개의 코스튬이 기네스 공식 기록으로 등록되는 등 열기는 뜨거웠다.

2017 런던 마라톤에 참가한 화려한 코스튬들 가운데 ‘웨딩드레스’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올해 런던 마라톤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달린 마라토너가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유는 그녀가 ‘코스튬 레이스’를 하는 게 아니라 진짜 결혼식 후 ‘버진로드’를 달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24일(한국시간) 열린 제37회 런던마라톤에는 갓 결혼식을 마친 부부가 출전했다. 이들의 42.195km, 세상에서 가장 긴 버진로드 행진을 BBC 등 영국 언론들이 소개했다. ☞ 관련기사

서른 다섯 살 동갑내기 부부 야키에 스쿨리와 둔칸 슬로안은 런던 마라톤이 열린 24일 오전 런던 외곽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슬로안이 프러포즈를 한 지 3년 만의 일이었다. 스쿨리는 13년을 사귄 남자친구 슬로안에게 2014년 결혼 프러포즈를 받았다. 스쿨리는 슬로안의 프러포즈를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그리고 3주 뒤, 스쿨리는 유방암이 재발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이들의 결혼준비는 웨딩 케이크를 시식하고 반지를 고르는 게 아닌, 병원을 선택하고 항암을 위한 준비에 들어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야키에 스쿨리와 둔칸 슬로안 부부. 야키에 스쿨리 트위터

스쿨리는 이미 20대에 한 차례 유방암 수술을 받은 병력이 있다. 당시 엉덩이에 금속판을 끼우는 수술까지 받았다. 거동이 불편해져 20대 후반에 걷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할 정도였다. 완치판정 후 간신히 정상적인 생활을 하며 달콤한 신혼을 꿈꾸고 있던 스쿨리는 유방암 재발 진단을 받고 유방 절제술까지 받아야 했다. 절망의 순간에서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달리기다. 그녀는 “달릴 때 나는 암환자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달리기에 매료된 스쿨리가 처음 10km 마라톤을 완주한 건 마지막 항암치료를 앞두고 있었을 때였다. 이후 스쿨리는 항암치료를 견디며 하프마라톤을 수차례 완주했다. 그녀는 달리는 순간 자신이 환자라는 걸 잊게 된다고 말했다. “유방암 재발 판정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줬습니다. 나는 달리기를 통해 매 순간을 즐기는 법을 배우고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올해 스쿨리는 다시 유방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런던 마라톤은 스쿨리가 건강을 되찾은 후 가장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 맨 위에 있는 항목이었다. 그녀는 런던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는 이유에 대해 “마라톤이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선택했다. 마라톤에서는 병실에서 나와 얼굴에 태양이 내리쬐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쿨리와 슬로안은 런던 외곽에서 오전 7시 30분 결혼식을 올린 후 곧바로 대회가 열리는 그리니치 공원으로 출발했다.

마라톤을 위해 특별 제작된 드레스를 입은 야키에 스쿨리. 야키에 스쿨리 트위터

웨딩드레스도 특별하게 제작됐다. 앞뒤로 기장이 긴 기존의 드레스 디자인이 아닌 좌우로 긴 디자인을 채택했다. 스쿨리가 달리는 데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함이다. 스쿨리가 순백의 드레스에 면사포를 쓰고 빨간 러닝화를 신은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에 공개하자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드레스는 전 축구선수 데이비드 시먼의 부인 프랭키 시먼이 특별 제작했다. 프랭키 시먼은 유방암 환자들을 지원하는 자선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스쿨리는 5시간 56분 26초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남편 슬로언은 3시간 30분에 결승선을 미리 통과해 스쿨리의 레이스를 기다려 줬다. 이 부부의 결혼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인터넷과 현장에서 응원 모금을 진행했다. 부부는 이렇게 모인 1만 5,000파운드(약 2,176만원)를 유방암 자선단체에 기부할 계획이다.

런던마라톤에 참가한 야키에 스쿨리. 야키에스쿨리 트위터

세상에서 가장 긴 버진로드 행진을 마친 스쿨리 부부는 마라톤 후 신혼여행을 떠났다. 장소는 ‘세상에서 가장 긴 장벽’, 중국 만리장성이다. 유방암 치료를 돕기 위한 모금 행사의 일환이자 유방암 환자 앞에 있는 거대한 벽을 넘어서겠다는 스쿨리의 의지다. 스쿨리는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나는 내 몸이 아직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20대에 걷는 법을 다시 배우고 30대에는 가슴을 잃어버렸지만, 그것이 나를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오수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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