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짜오! 베트남] 일찌감치 예선 탈락했지만... 축구 강국 꿈꾸며 월드컵 열기

입력
2018.06.20 18:14
수정
2018.06.20 22:54
15면
0 0
<45> 월드컵 풍경 # 대형 TV 불티나게 판매되고 음식점은 맥주ㆍ음료 다량 구비 # 야구ㆍ골프 등 국민 관심 못 끌고 ‘박항서 효과’ 겹쳐 축구로 집중 # 독일, 멕시코에 덜미 잡히자 도박에 돈 잃은 청년들 자살도
월드컵 예선전에서 일찌감치 본선 진출이 좌절됐지만, 축구 그 자체에 열광하는 베트남 사람들은 다른 나라의 경기 관람에도 많은 돈과 시간을 쏟는다. 한국 팀이 스웨덴과 맞붙었던 지난 18일 저녁 호찌민시내 10군의 한 커피숍에서 사람들이 모여 앉아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월드컵 예선전에서 일찌감치 본선 진출이 좌절됐지만, 축구 그 자체에 열광하는 베트남 사람들은 다른 나라의 경기 관람에도 많은 돈과 시간을 쏟는다. 한국 팀이 스웨덴과 맞붙었던 지난 18일 저녁 호찌민시내 10군의 한 커피숍에서 사람들이 모여 앉아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이번 러시아 월드컵 기간 베트남을 찾은 많은 외국인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자국 팀은 예선전에서 일찌감치 탈락한 베트남 분위기가 본선 진출국가 못지않은 까닭이다. 현지 매체들은 남의 나라 경기 소식 전달에 열을 올리고 있고, 가전 매장에서는 대형 TV가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월드컵이 열리는 러시아 관광 상품은 일찌감치 ‘완판’됐으며, 경기 시간에 맞춰 단체 축구 관람장으로 변신한 골목 곳곳의 커피숍과 식당들은 동네 주민들로 북적댄다. 4년 만에 찾아온 ‘대목’에 각 기업들은 월드컵과 연계한 판촉에 몰두하고 있다.

월드컵 특수

호찌민시 빈탄군에 살고 있는 부 응옥 꽝(46)씨는 지난 9일 55인치 TV를 새로 구입했다. 국영방송 VTV가 대회 개막 1주일을 앞두고 국제축구연맹(FIFA)과 월드컵 중계권 계약을 마무리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다. 3,000만동(약 145만원)의 거금을 투자한 목적은 하나. “4년 만에 찾아온 월드컵을 가족, 친구들과 함께 즐기기 위해서”다. 꽝씨 같은 베트남 사람들이 TV구매에 나서면서 호찌민 시내 한 가전매장에서는 9, 10일 양일간 500대의 TV가 팔려나갔다고 현지 일간 뚜이쩨가 보도했다. 매장 매니저 L씨는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42~49인치 모델”이라며 “가격은 제품에 따라 1,200만~1,900만동”이라고 설명했다. TV 한 대 가격이 웬만한 근로자 2개월치 월급에 해당하는 금액이지만, 그래도 베트남 시민들이 월드컵 경기 관람에 지갑을 열어젖힌다는 뜻이다.

음식점들은 평소보다 많은 음료와 맥주를 준비해놓고 손님 맞이에 들어갔다. 호찌민시 탄빈군의 한 카페 민탐 대표 차우 응옥 투이씨는 “에너지 음료, 맥주, 커피 제품을 평소보다 20% 가량 더 확보해놓고 있다”며 “대형 TV 없는 장사는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근의 다른 가게 주인 하씨는 “첫 경기가 오후 7시에 시작해 자정 넘어서까지 펼쳐지는 만큼 경기 시간은 매출에도 큰 도움을 준다”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손님 마이 쿽 칸(31)씨는 “각 팀의 용병술과 선수들에 대한 평을 주변 사람들과 교환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축구는 모여서 봐야 제 맛”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의 삼성’으로 불리는 빈그룹은 조건 없이 월드컵 경기 중계사인 VTV에 500만달러를 후원했고, 100만달러치 광고 계약까지 체결하면서 대대적인 기업 광고에 들어갔다. 빈그룹은 지난해 말 베트남 최초의 자동차 ‘빈패스트’ 생산에 뛰어 들었다. 업계 관계자는 “잠을 설쳐가며 경기를 시청하는 고객들을 감안하면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고 귀띔했다. 비엣젯, 패밀리마트 등 기업도 경기 대진표를 자체 제작, 배포하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현재 베트남 주택가에 자리잡은 카페는 대부분 '축구 경기 관람장'이다. 19일 저녁 호찌민시 빈탄군 주택가 카페에서 주민들이 월드컵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현재 베트남 주택가에 자리잡은 카페는 대부분 '축구 경기 관람장'이다. 19일 저녁 호찌민시 빈탄군 주택가 카페에서 주민들이 월드컵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열광 이유는

특히 맥주업체 버드와이즈는 지난 14일 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 개막전 당시 호찌민 시내 대운동장을 빌려 단체 관람행사를 가졌다. 이날 2,000명 이상의 축구팬들을 상대로 자사 광고를 펼쳐 쏠쏠한 재미를 챙겼다.

베트남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이유는 아직까지 야구나 골프 등 다른 스포츠로 관심을 돌리기엔 경제적 여유가 부족하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요즘 ‘우리는 언제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느냐’는 베트남 사람들의 질문을 가는 곳마다 받고 있다”며 “한국처럼 야구나 골프 등 일반 국민들의 관심을 끌만한 종목이 없어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축구로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축구 강국이 되고 싶은 욕구와도 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사회학 박사인 이계선 하노이 탕롱대 교수는 “1962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 베트남(월남)은 4강에 오를 정도로 축구 강국이었지만 통일 후 사회, 정치적 문제로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었다”며 “박항서 감독이 지난 1월 활기를 불어넣으면서 과거 영광 재현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공 하나에 여럿이 어울릴 수 있는 축구와 달리 장비와 비용이 추가로 드는 야구, 테니스보다도 축구가 사회주의 국가 분위기에 부합한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중앙 및 지방정부도 축구를 장려하고 있다. 하노이 호찌민시 등 개발예정 빈 땅에 인조잔디를 깐 미니 축구장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게 대표적인 예다. 현재 하노이에만 100개 가까운 축구장이 있는데, 3만원 수준의 연회비만 내면 이용할 수 있다. 현지 생활체육계 관계자는 “학교에서도 축구를 장려하면서 구장 대여업은 유망사업 아이템 중의 하나”라며 “허가 받기도 비교적 쉽다”고 전했다.

비엣젯 승무원이 러시아 월드컵 대진표를 승객들에게 나눠주면서 자사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비엣젯 제공
비엣젯 승무원이 러시아 월드컵 대진표를 승객들에게 나눠주면서 자사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비엣젯 제공
도박에 살인까지

축구에 열광하는 배경으로 ‘도박’을 꼽는 경우도 있다. 소득 수준이 낮아 이렇다 할 레저 활동이 발달하지 않은 베트남에는 각종 도박이 성행하는데, 돈을 걸고 경기 관람에 임하는 만큼 열기가 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세계 최강 독일이 멕시코와 싸워 무너졌던 지난 17일 밤, 호찌민 시내에서는 젊은 청년들의 투신 자살 시도가 어려 건 보고됐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한 청년이 강으로 뛰어 내리거나 육교에서 투신한 것. 관련 기사 아래에는 독일에 ‘올인’한 청년이 돈을 몽땅 잃게 되자 자살을 시도했다는 댓들이 대부분을 이뤘다. 해당 기사도 정확한 이유는 밝히지 않고 있는 가운데, 해당 청년의 가족은 “우울증 때문이지 도박 때문은 아니다”고 경찰에 설명했다. 하지만 자살 원인을 도박에서 찾고 있는 해당 기사는 여전히 페이스북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밖에 지난 18일에는 벨기에ㆍ파마나 경기를 함께 보던 이웃 록(46)씨와 냐(39)씨 사이에 싸움이 일어 냐씨가 휘두른 흉기에 록씨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베트남 매체들은 해당 사건을 건조하게 전달했지만, 일반 베트남 국민들은 싸움 배경에 내기 돈 문제가 걸려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축구 도박으로 돈을 다 잃은 청년의 최후 장면 소식을 전하고 잇는 한 페이스북 계정.
축구 도박으로 돈을 다 잃은 청년의 최후 장면 소식을 전하고 잇는 한 페이스북 계정.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