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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왜 버려진 동물만 불행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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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왜 버려진 동물만 불행해야 할까

입력
2017.05.2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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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뱅상은 ‘어느 개 이야기’에서 버려진 개의 막막함을 글 하나 없이 크로키로만 표현했다. 열린책들 제공
가브리엘 뱅상은 ‘어느 개 이야기’에서 버려진 개의 막막함을 글 하나 없이 크로키로만 표현했다. 열린책들 제공

길고양이와 인연을 맺은 후 내게 봄은 새끼고양이 대란의 계절이다. 중성화수술이 안된 길고양이 암컷이 겨울이 물러갈 무렵 임신을 해서 이 시기에 대거 새끼를 낳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 봄에는 세 마리 푸들 소식이 한꺼번에 들려왔다.

노견 카페 이웃인 지인에게 연락이 왔는데 동네에서 새끼 푸들이 떠돌고 있어서 구조한 후 유기동물 보호소로 보냈단다. 20일을 기다렸지만 가족도, 새로운 입양자도 나타나지 않아서 데리고 나와 ‘깨비’라는 이름을 지었다. 보호소에서 가족을 찾지 못하면 지자체에 따라 다르지만 10~20일 후 살처분 된다. 입양이 되지 않아서 계속 보호소에 머무는 노견을 여러 마리 입양해서 돌보고 계시는 분이라서 자신이 입양할 수는 없었다. 구조할 때 피부병과 감기 기운이 있던 깨비는 보호소 생활 후 상태가 더 나빠졌다. 아픈 아이를 치료하지도 않고, 짧은 계류 기간 동안 입양이 안 되면 살처분 하는 곳을 보호소라고 불러야 하나.

어쩌다가 피부병 걸린 생후 2개월짜리가 주택가에 버려졌을까? 아마도 피부병 때문에 팔지 못할 터라 버렸을 것이다. 알을 낳지 못하는 수컷 병아리를 태어나자마자 바로 분쇄기에 던져 으깨버리듯 상품 가치가 없으니 버렸겠지. 강아지공장만큼 참혹한 환경과 끔찍한 방법으로 주택가에서 소규모로 강아지를 생산해서 파는 사람들이 꽤 있다.

운이 좋았는지 깨비는 미국에 사는 교포에게 입양이 되었고, 한국에서 입양된 다른 유기견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깨비는 ‘밤’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김보경 제공
미국에서 살고 있는 깨비는 ‘밤’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김보경 제공

깨비를 미국으로 보낼 무렵 미국에 사는 친척에게서 다른 푸들 소식이 들려왔다. 함께 살았던 반려견이 떠나고 힘들어했는데 푸들 ‘루이’를 입양했다고. 새로 가족이 된 루이의 사진을 내게 왕창 보내왔는데 그중에 루이와의 첫 만남 사진이 있었다. 전문적으로 스탠다드푸들 종을 분양하는 브리더(사육업자)의 집이었는데 멋진 갈색의 루이 아빠, 눈부신 흰색의 엄마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유기견을 입양했으면 좋았겠지만 강아지 공장에서 데려온 동물을 파는 ‘펫숍(애완동물판매가게)’이 아닌 정직한 브리더에게 입양을 해서 다행이었다. 물론 미국도 1년에 약 4백만 마리의 동물이 보호소에서 살처분 당하고, 끔찍한 강아지 공장도 많지만 관련 규제는 강화되고 있다.

깨비와 루이, 두 푸들 이야기로 이번 칼럼을 쓰려고 했는데 며칠 전 푸들 커피가 나타났다. 휴양지로 유명한 산골 오지에 푸들이 버려져 보호소에 있다는 말에 평소 유기견 임보, 입양 활동을 열심히 해온 지인이 출동했고, 꼬박 하루를 걸려서 데리고 왔다. 그곳은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개를 많이 버리고 가는 곳이란다. “그 정성이면 키우겠다”며 둘이서 마구 욕을 해댔다. 커피는 8살 나이로 어리지 않지만 건강하고 사람을 잘 따르고, 인기 견종이니 입양 보내기 쉬울 거라고 낙관했다. 그런데 며칠 후 커피가 떠났다. 개에게는 치명적인 파보장염. 치료 도중에 병원에서 떠나고 말았다. 믿기 어려웠다. 건강했는데. 보호소에서 옮은 걸까. 끝까지 보살펴줄 좋은 가족을 만나는 걸 보고 싶었는데……

깨비, 루이, 커피, 세 마리 푸들의 운명. 깨비와 커피는 우리의 유기동물 정책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 생산, 판매, 반려동물등록 인식 칩에 대한 강력한 규제 부족, 중성화수술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유기동물 예방도 못하고, 구조한 후에는 보호소에서 치료는커녕 병을 키우고, 입양이 안 되면 바로 살처분 되는 현실. 유기동물의 예방, 구조 후 입양 과정에 대한 법은 언제쯤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옮겨갈까.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로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유기동물을 청와대로 데리고 들어가는 대통령은 동물의 생명도 하늘처럼 존중해줄까.

책 '어느 개 이야기'에서 버려진 개가 주인을 쫓아가며 울부짖고 있는 모습. 열린책들 제공
책 '어느 개 이야기'에서 버려진 개가 주인을 쫓아가며 울부짖고 있는 모습. 열린책들 제공

가브리엘 뱅상은 ‘어느 개 이야기’에서 버려진 개의 막막함을 글 하나 없이 크로키로만 표현했다. 선 하나에 슬픔과 아픔을 담을 수 있다는 걸 이 책을 보고 알았다. 자동차의 문이 열리고 버려지는 개 한 마리. 개는 미친 듯이 차를 쫓다가 포기하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떠돌고, 그러다가 인간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다. 야생에서 개는 무리를 이끌고 미래를 계획하고 전술을 짜는 멋진 동물이지만 인간 세계에서는 무력하다. 복잡한 인간 세상에 버려진 개는 아무 것도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다. 개가 허공을 향해 울부짖는 소리가 마음을 친다. 개에게서 느껴지는 두려움과 외로움, 책을 읽으며 밀려오는 참담함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개를 차에서 내려놓고 도망간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불행해야 한다. 생명을 버리는 죄를 지었으면 불행이라는 벌을 받아야 한다.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참고한 책: ‘어느 개 이야기’, 가브리엘 뱅상, 별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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