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미 기자

등록 : 2018.05.15 20:00
수정 : 2018.05.16 09:43

[겨를] 집 팔고 빚 내서 세운 ‘유랑 마켓’ “판 깔았으니 먹고 놀고 즐기세요”

서울 진출한 부산 '마켓움' 손지민 대표

등록 : 2018.05.15 20:00
수정 : 2018.05.16 09:43

지난 5일과 6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 부산 유명 마켓 '마켓움' 기획자 손지민씨. 김주성 기자

놀 거리, 볼거리 없던 시절 1년에 한번쯤 동네 공터에는 유랑서커스단의 대형 천막이 펄럭였다. 휘황찬란한 조명과 멈추지 않는 음악 소리에, 온 부모가 아이의 손을 잡고 서커스를 보러 출동하곤 했다. 부산에는 스스로 ‘마켓 서커스단’을 자처하는 유랑단이 있다. ‘부산을 대표하는 시장’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2015년 봄 인적 드문 부산 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친구들과 물건을 팔며 탄생했던 움직이는 시장 ‘마켓움’이 어느덧 서울까지 진출했다.

마켓움의 산파, 손지민(38) 대표는 대학에서 국악을 했다. 자연스럽게 주변에 예술인이 많았다. 지인들이 좋은 디자인 제품을 만들어도 판로를 개척하지 못해 경력이 단절되는 것을 항상 안타깝게 여겼다. 손씨는 해외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길거리에서 물건을 펼쳐서 파는 플리마켓(벼륙시장)을 구경하게 됐다. 그때 ‘부산에도 있으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번쩍였다. 사비를 털어서라도 딱 한번만 장터를 만들어 보자는 마음을 먹게 된 이유다.

손 대표가 생각하는 ‘마켓’은 ‘판’이다. 마켓을 직역하면 ‘시장’이지만,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물건을 사겠다는 목적이 있는 백화점과 마트식 장보기와도 다르다. 손 대표는 “마켓이라는 판에 오면 먹는 것, 노는 것, 배우는 것, 파는 것 할 것 없이 모두 즐길 수 있다”며 “열리는 공간이나 시기에 따라 테마도 다르고, 잘 알려지지 않은 나만의 브랜드를 그때만 살 수 있는 게 매력”이라 말했다.

2015년 3월 부산 기장군 동백리의 텅 빈 바닷가에 1회 마켓을 열었다. 손 대표는 “전문 기획자도 아니기에 일단 ‘재미있게 해 보자’고 시작했는데, 그날 400~500명이 왔다”라며 “계속 열어달라는 부탁이 들어오면서, 이 일을 ‘업(業)’으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초보 기획자에게 회당 평균 2만명이 방문하는 마켓을 기획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를 피할 수 있어야 했고, 주차나 위치 모두 만족할만한 곳을 찾아 매회 떠돌아다녔다. 그렇게 ‘마켓 유랑단’이라 불리는 기획자와 셀러(판매자)들은 부산 내 적절한 공간들을 떠돌아다니며 마켓을 열었다. 그렇게 비정기적으로 부산 지역에 마켓을 열다가 16번째 마켓은 이달 5, 6일 처음 서울에서 열었다.

비용도 문제였다. 장소 섭외비와 인건비 등 필요한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 손 대표는 살던 집을 팔고, 어머니의 마이너스통장까지 보탰다. 손 대표는 “영혼까지 끌어 모아 수천만원의 목돈을 마련했지만 금방 바닥났다”고 털어놨다. 규모가 커져 전국의 많은 셀러들이 꼭 한번 참여하고 싶은 마켓으로 성장했지만 손 대표는 지금도 최소 운영비만 걷고 있다. 생활비는 강연 등을 통해 벌고 있다.

매번 마켓을 기획할 때마다 손 대표는 ‘이번이 마지막이야’라는 생각으로 임한다. 셀러와 참가자들의 자발적인 봉사로 이뤄지는 축제인 만큼 다음을 확약할 수 없어서다. 지금까지는 재미있게 즐기자는 마음이었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어깨도 무겁다. “‘마켓이 재미 없다’는 생각이 사람들 속에 한번 생기기 시작하면 문화 자체가 무너질 수 있을 정도로 아직은 초창기 단계거든요. 마켓이 많아질수록 그 안에 담긴 내용도 알차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크래프트 위크'를 맞아 5일과 6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 부산 유명 마켓 '마켓움'에서 기획자 손지민씨가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주성 기자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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