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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공사·공직자 쇼... 영화 '터널'은 한국사회 자화상

입력
2016.08.03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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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터널'은 재난 상황을 정면으로 다루며 한국사회를 직시한다. 쇼박스 제공
영화 '터널'은 재난 상황을 정면으로 다루며 한국사회를 직시한다. 쇼박스 제공

‘여름 남자’가 돌아왔다. 2013년부터 배우 하정우는 매년 염천 극장가를 찾고 있다. ‘더 테러 라이브’(2013)로 558만 관객을 모았고, ‘군도: 민란의 시대’(2014)로 477만명과 만났다. 지난해에는 ‘암살’로 1,270만 관객과 마주하는 기쁨을 누렸다. 그는 올해도 여름 흥행대전에 ‘참전’한다. 하정우와 함께 하는 지휘관은 김성훈 감독. 2014년 재기작 ‘끝까지 간다’로 345만 관객의 마음을 훔친 흥행 감독이다. 장르는 재난영화. 충무로의 일급 배우와 8년 만의 복귀작으로 재능을 발휘했던 감독이 만나 합작해 낸 영화는 어떤 모습일까. 올해 충무로 여름 빅4 중 하나로 꼽히는 ‘터널’이 3일 오후 서울 삼성동 한 멀티플렉스에서 첫 공개됐다.

‘터널’은 한 사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낸다. 막 개발된 신도시의 집으로 퇴근하던 이정수(하정우)는 자동차로 지나던 터널이 무너지면서 부실공사의 피해자가 된다. 허둥지둥 구조대책본부가 세워지고, 기자들의 취재전쟁이 시작된다. “반드시 구해내겠다”는 장관의 공언이 이어지고 국민들의 시선도 무너진 터널로 향한다. 생수 두 병, 생크림 케이크 하나와 함께 폐쇄공간에 남겨진 정수는 가족에게 돌아갈 시간을 기다린다. 정수의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는 무관하게 시간이 지나면서 바깥 세상은 조금씩 구조작전의 손익을 계산한다. 영화는 정수가 역경을 딛고 다시 가족과 만나게 될지 의문부호를 계속 던지며 스릴을 만들어간다. 10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 한국일보 영화담당 기자가 본 ‘터널’

※★다섯 개 만점 기준, ☆는 반 개.

하정우가 만들어낸 ‘미니멀 스펙터클’

예상대로 얼개는 낯익다. 부실공사로 막 지어진 터널이 무너지고 사람이 갇힌다. 사고 현장을 찾은 고위 관계자들은 사진 찍기로 자신들의 공무수행을 기록하려 하고, 기자들은 특종을 낚으려 달려든다. 악조건 속에 홀로 남겨진 남자는 기약 없는 구조를 기다리며 살아남을 방법을 강구한다. 피해자의 가족은 구조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나 시간이 갈수록 뜨거웠던 동정의 시선들은 냉소로 바뀐다.

익숙한 소재와 진부한 이야기는 관객에게 질문을 계속 던지며 활력을 얻는다. ‘만약에 당신이라면’이란 가정 화법을 통해 영화는 관객과 질의응답을 이어간다. 당신이 터널에 갇혔는데 자신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인 누군가를 만난다면, 세상이 당신의 목숨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면, 당신의 가족이 생사불명인데 사람들은 돈의 논리를 끌어들여 이제 그만하자고 주장한다면 등의 질문이 이어진다. 관객은 자연스레 정수의 입장에 놓이고, 정수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영화의 활기는 배우 하정우의 개인기를 통해서도 발생한다.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정수의 낙관적인 모습은 하정우가 그동안 구축해 낸 긍정의 에너지에 많이 기댄다. 분노했다가 현실에 적응하며 웃음을 되찾고, 누군가의 죽음에 슬퍼했다가 집에 돌아갈 희망을 얻고 다시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되는 정수의 다채로운 모습을 한정된 공간에서 파노라마로 펼쳐낸다.(라제기 기자)

재난현장에선 정수의 아내(배두나)가 구조를 도우나 갈수록 사람들의 시선은 차가워진다. 쇼박스 제공
재난현장에선 정수의 아내(배두나)가 구조를 도우나 갈수록 사람들의 시선은 차가워진다. 쇼박스 제공

지극히 현실적인, 그래서 가슴 아픈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아프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터널 안에서 홀로 고독한 사투를 벌이는 주인공의 모습은 세월호의 아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오매불망 구조를 기다리지만 세상의 버림 속에 차갑게 희망을 잃어갔을 희생자들의 고통이 눈에 선하기만 하다.

그래서 ‘터널’은 지독히도 현실적이다. 일상의 한 가운데에서 정수는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는다. 다른 게 있다면 할아버지 아르바이트생의 느린 행동에 답답함을 느낄 뿐. 그래도 정수는 “천천히 하세요”라고 말하는 착한 사람이다. 착함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할아버지가 건넨 500㎖짜리 물 두 병이 생명줄이 될 줄이야.

영화는 시작한 지 5분도 안 돼 터널을 향해 질주하는 정수를 비춘다. ‘설마’ 하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터널에 숨을 멈추게 된다. 먼지에 뒤덮인 얼굴로 지그시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하정우는 충혈된 눈까지 연기를 했다. 하지만 영화는 정수의 구조에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가 처음으로 통화하는 이는 방송사 기자이고, 그의 구조 계획에 대한 설명을 듣는 첫 인물은 장관이다. 현실과 너무도 맞닿아 있는 풍자에 속 시원히 웃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재난영화의 뻔한 공식은 어쩔 수 없다. 126분의 상영시간은 너무 긴 여행처럼 느껴진다. ‘터널’은 오로지 하나의 메시지를 전할 뿐이다. “우리는 과연 안전합니까? 안전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까?”(강은영 기자)

버릴 수 없는 삶의 희망 비춰

재난 영화보다 ‘조난’ 영화라는 설명이 알맞겠다. 재난 상황이 주는 공포감 대신 재난에 맞닥뜨린 인간의 고립감과 무력함에 집중한다. 주인공이 붕괴된 터널 밖으로 나오는 과정은 사투기가 아닌 생존기에 가깝다.

그런데 뜻밖에도 낙천적이다. 어찌됐든 구조의 손길이 있고, 생환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너진 콘크리트와 철근에 뒤덮인 자동차 안 좁디 좁은 공간에서 하루하루 버텨 나가는 주인공의 일상은 때때로 웃음을 안기기도 한다. 삶의 희망은 이토록 위대한 것이다.

하지만 국가는 너무나 손쉽게 삶의 의지를 꺾어버린다. 때때로 ‘포기’를 종용하기도 한다. 사람의 목숨과 몇 백억 숫자를 양팔저울에 올려놓고 무게를 잰다. 생명보다 고위 공직자의 인증사진이 우선인 한국사회의 자화상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긴다. 풍자가 가미됐지만 통쾌하기보단 씁쓸하다. 생생한 현실감 때문이다.

유일한 희망은 피 같은 물 한 모금도 서로 나누는 아주 작은 '선의'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선의를 터널 밖 사람들에게도 기대해 보고 싶어진다. 폐쇄된 공간을 구석구석 담아내며 먼지로 텁텁해진 공기의 질감까지 전달하는 카메라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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