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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엄마와 이별하는 시간

입력
2017.01.17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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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전, 엄마를 여의었다.

오래도록 곁에 머물기 원하는 가족의 소망을 뒤로 한 채 여든넷이 되는 새해 첫 일주일을 생의 마지막 주간으로 삼아 고이 떠나셨다. 허나 아직 믿을 수가 없다. 두 눈으로 당신의 끝 숨을 보고 경황없이 상을 치른 뒤 기어이 흙으로 돌아가는 모습까지 지켜봤는데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지금도 “밥 먹어야지” 하시며 불쑥 밥상을 들이미실 것만 같다. 차라리 깨어야 할 헛된 꿈속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어머니라는 존칭보다는 늘 ‘엄마’라 부르며 지천명이 된 지금껏 당신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살아왔다. 엄마도 그리 불러주는 걸 한결 좋아하셨다. 이제 그 치맛자락도, 당신의 따사로운 체취도 다시 느낄 수 없는 이 현실이 무척이나 야속하고 원망스럽다. 그러나 무엇을 해도 후회될 일 또한 온통 머리를 쥐고 흔드는 걸 보니, 역시나 불효자를 면키 어려운 자식으로서 지난 무심함 들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며칠 전 무심코 자동차 트렁크를 열었다가 울컥 눈물을 쏟을 뻔했다.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엄마의 신발 때문이었다. 지난해 초가을 경 집을 나오셨다가 병 진단 후 바로 입원하셔야만 했던 엄마는 10월 중순 어느 날 일시적으로 퇴원하셨다. 그때 내 차에 신발을 포함한 당신의 짐들을 넣어두었다. 그러나 한 달 만에 병원을 나서면서 들뜬 기분을 감추지 않으셨던 엄마는 당일 저녁에 뇌졸중이 오면서 급히 119 구급차를 타고 재입원을 하셔야 했다. 그날 이후 엄마의 신발을 차 트렁크에서 내놓을 수 없었다. 다시 그 신발을 신겨드릴 날이 오기를 바랐다. 내 가슴에 품듯 내어놓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결국 엄마는 그 신발을 더 이상 신지 못하셨다. 엄마와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은 그렇게 다가왔다.

지난 해 가을, 엄마 온몸에 퍼진 암 덩어리와 동시다발적으로 찾아온 동맥박리, 뇌졸중 등 여러 합병증을 확인한 순간부터 이제 눈앞에 펼쳐질 상황을 인정해야만 했다. 결코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이승의 연이 다 했음을 거부할 도리가 없었다. 생명연장을 위한 무리한 의료행위는 엄마의 고통만 가중시킬 뿐 의미가 없었다. 우리가 할 최선의 방편으로 가족들 모두 수다스러울 정도로 많은 얘기를 건넸다. 너무 애쓰셨다고, 너무 사랑한다고 끝없이 속삭이는 시간도 뒤를 이었다. 그와 더불어 나는 한없이 엄마의 눈빛과 온몸을 살폈다. 점점 흐릿해지는 눈동자를 보며 여전히 자식의 얼굴을 봐 주시니 슬픔보다는 그저 고마운 마음에 웃으려 애를 썼다. 퉁퉁 부은 손과 발등, 창백한 살갗에 눈을 두기보다는 여전히 유지되는 체온에 기뻐하며 매만지기를 반복했다. 아직 살아 숨 쉬고 계시다는 것에, 엄마의 온기가 남아 있음에 늘 감사해 했고 울컥거리는 심정의 일부나마 누를 수 있었다. 하루하루가 소중했던 그 시간 동안 나의 카메라에는 엄마의 모습들이 귀하게 담겼다. 당신의 온몸을 살피며 만지는 그 시간들은 나의 이별의식이었고 엄마의 존재의미를 깊이 되새기는 제례의 과정이었다. 사진을 찍는 시간이 아닌 엄마와의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이제 엄마의 영정사진 앞에 아침저녁으로 생전에 좋아하셨던 숭늉과 보리차를 번갈아 올려드리며 사진 속 엄마의 뺨을 두어 번 매만진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가 직접 찍은 사진 속 엄마의 표정은 한없이 자애롭고 평온하기만 하다. 평생 우리 남매들을 향해 주셨던 그 표정 그대로다. 병상을 지키던 지난 3개월의 틈새에서 아직 헤매고는 있지만, 당분간 훨씬 이전으로 돌아가 엄마와의 아름다웠던 지난 기억들을 하나하나 들추어보려 한다. 엄마와 이별을 준비했던 시간은 당신의 삶이 내게 가장 귀하고 아름다웠음을 증명하는 여정이기도 했던 탓이다. 무에 그리 서둘러 가셨느냐고 부질없이 들던 생각의 한 조각 정도는 이제 걷어내고 싶다. 엄마와 마주하는 또 다른 시간이다.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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