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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책임감 있는 한류를 기대하며

입력
2015.02.2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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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외국인 친구들이나 동료들을 만났을 때 이야기의 첫 주제가 ‘한류’인 경우를 많이 경험한다. 그들은 좋아하는 드라마 제목과 가수들의 이름을 마구 쏟아낸다. 개인적으로 대중문화를 잘 몰라서 적극적으로 대화를 이어나갈 수는 없지만 약간은 무심한 척하면서도 우쭐거리게 되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던 지난 11월 어느 방송에서 ‘국산무기, 신한류로 뜬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앵커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했다. “우리 손으로 만든 국산 무기들이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화면에는 화려한 전투기와 잠수함이 보여졌지만, 나에게는 “우리 손으로 만든 최루탄 165만발과 시위진압장비들이 집회를 진압하기 위한 폭력적인 도구로 인기입니다”라고 들렸다. 멋진 무기 뒤에 감추어진 무기의 잔인함을 알기에 ‘한류’가 처음으로 부끄러웠다.

최루탄은 흔히 비살상무기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얼마든지 살상무기로 돌변할 수 있다. 2013년 5월 말 터키 당국은 평화로운 시위대를 향해 직격으로 최루탄을 발포하여 최소 4명의 시위참가자들이 숨졌으며, 이 중 13세 소년과 22세 청년은 근거리에서 발사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았다. 얼굴에 최루탄을 맞아 시력을 영구 상실한 사람 등 8,000여명의 부상자가 속출했다. 2014년에도 이스탄불 탁심 광장 인근에서 노동자의 날을 맞아 평화적인 시위를 벌이던 시위대를 대상으로 과도한 무력을 행사했다.

국제앰네스티를 포함한 국제인권단체들이 한 목소리로 터키 당국이 과도하고 불필요한 방식으로 최루탄을 발포한 것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다.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고의적으로 최루탄을 직격으로 발포했을 뿐 아니라 밀폐되고 좁은 공간, 의료시설 등에 최루탄을 던져 넣기도 했다는 사실도 발견되었다. 하지만 터키 당국은 아직까지 이러한 행위에 대한 포괄적인 수사를 진행하거나 책임자를 처벌한 사례는 없다.

터키는 오는 5월 총선을 앞두고 있으며 현 대통령은 이번 총선을 통해 대통령 중심제 개헌을 추진할 것을 예고한 바 있어 선거를 앞두고 대규모 시위가 촉발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터키 당국은 최루탄이 5월까지 190만발 필요하다고 공고를 냈고 이를 한국의 최루탄 생산업체가 덥석 물었다. 아직 문제는 진행형인데 터키 정부가 한국산 최루탄을 ‘잘’ 써줄 것을 기대하며 수출이 허가되었다.

재래식 무기와 전략물자 및 기술의 수출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조직 바세나르 체제에는 최대의 무기수출국 41개국이 가입되어 있고 한국 역시 이 중 하나다. 가입국들은 체제의 기준과 원칙에 따를 것을 약속했고 그 약속에는 수출할 무기가 인권침해 행위를 저지르는데 이용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일 경우 무기수출의 허가를 삼가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또 지난 12월에 발효된 유엔의 무기거래조약은 재래식무기의 수출을 허가하기 이전에 철저한 위험평가 실시를 요구하고 있고 이전된 무기가 국제인권법이나 국제인도주의법을 위반하는데 사용될 상당한 위험이 있는 경우 수출 허가를 받을 수 없게 하고 있다. 한국은 이 조약에 서명을 한 상태다.

지난 10일 주 터키 한국대사관 앞에서 수출 승인을 취소해달라는 요구를 하는 터키 시민들의 시위가 있었다. 한국이 책임감 있는 국가로 터키 정부의 예상된 억압을 방조하지 않기를 바란 것이다.

‘한류’는 정부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 사이에서 퍼지는 것이다. 만약 ‘무기의 한류’가 되고자 한다면, 한국 당국은 시민들을 억압하는 도구가 될 수 있는 최루탄과 기타 진압장비가 수출되기 전에 터키 정부가 이러한 억압을 다시 반복하지 않을 것과 과거 경찰의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철저하고 공정하고 독립적인 조사를 진행할 것을 약속하게 하면 된다.

다가올 5월에 터키에서 또다시 한국산 최루탄으로 시민들이 다치고 죽게 된다면 국제적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을 것이다. 최루탄 수출을 중단시키기 위해 작은 행동이라도 해야 하는 것은 시위에 참여할 터키 시민들이 느낄 두려움에 우리가 조금이라도 공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희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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