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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착륙 6개월간 업종별 핀셋전략 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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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착륙 6개월간 업종별 핀셋전략 세워라

입력
2018.06.21 18:00
수정
2018.06.21 20:29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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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2시간 유예, 이것만은 해결을
[저작권 한국일보]주 52시간 근로시간제 시행 시기. 김경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주 52시간 근로시간제 시행 시기. 김경진기자
#건설ㆍ석유화학 등 현실적 충돌 버스 대란 우려 등 혼선 불 보듯 처벌 대신 단속 철저히 하고 기업 정규직 쓰도록 유도해야 #제조업이나 사무직 똑같이 적용 정부 가이드라인이 혼란 부추겨 지금이라도 외국사례 연구하고 세세한 개별 지원방안 내놔야

정부가 주 52시간 근로시간제 시행을 불과 열흘 앞두고 사실상 6개월 유예라는 결정을 내린 것을 두고 그 가장 큰 원인을 정부의 ‘준비 부족’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 법 개정 이후 4개월 동안 현장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문제 없다”는 얘기만 반복하다 스스로 법 취지를 훼손하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6개월이라는 연착륙 기간이 부여됐지만, 정부가 또 다시 안일한 대응을 한다면 시정기간이 끝나는 내년 이후에도 상황은 달라질 것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주 52시간제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 6개월 동안 어떤 준비가 이뤄져야 하는지 전문가들의 제언을 들어봤다.

①처벌은 유예돼도 감독은 유예 안돼

전문가들은 우선 시정기간 동안 정부가 처벌은 않더라도 지속적인 감독을 통해 기업이 근로시간 단축을 법 취지에 맞게 시행하도록 독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정부가 6개월 후에는 강력한 단속을 통해 반드시 처벌하겠다는 경고를 해줘야 한다”며 “기업이 시정기간 동안 충분히 준비할 수 있게 필요한 인력을 더 고용하고,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을 쓰도록 유도하는 것도 정부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도 “법 시행에서 가장 중요한 근로감독 강화에서 정부가 물러서는 것이 아쉽지만 처벌이 어렵다면 단속이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고 전했다.

②취약업종 핀셋 지원안 마련해야

노선버스와 정보통신(ICT) 등 특례에서 제외되면서 현장의 혼란이 큰 업종에 대해서는 보다 면밀한 ‘핀셋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소득이 급감하게 된 운수업계에서는 7월부터 노선버스 운행이 갑자기 줄어 전국에 ‘버스대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을 정도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운수업이나 조선업의 시운전처럼 사람을 더 쓰고 싶어도 숙련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정부가 6개월 동안 특단의 직업훈련을 비롯한 지원책을 동원해 인력을 충원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근로시간 단축을 시행하면서 현장에서 법 준수가 불가능한 부분을 재정리하고 보완을 모색하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예를 들어 기상악화로 공기(工期)가 지연되면 날 갤 때를 기다려 작업해야 하는 건설업이나, 1~2개월이 소요되는 석유화학업계의 ‘대정비 공사’ 등은 현실적으로 주 52시간 근로시간제와 충돌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는 정책적인 고민도 시정기간 동안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③탄력근로제 확대 면밀히 검토해야

고용부가 “개정안 부칙대로 2020년 시한 전에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다소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도 대대적인 손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권 교수는 “현행 탄력근로제는 이름과 달리 가장 비탄력적인 구조”라고 꼬집었다. 탄력근로제를 도입하려면 노사의 합의가 필요한데, 이를 적용하면 연장가산수당이 감소하는 등 임금구성에 변경이 생겨 임금수준이 낮아질 수 밖에 없어 근로자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탄력근로제를 도입해도 기업과 근로자 모두 손해를 보지 않도록 법을 고쳐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탄력근로제는 주 52시간 근로시간제를 일정기간 시행해보고 향후 필요한 업종에 한해 확대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있다. 박수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금 당장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면 근로시간 단축의 의미가 사라진다”며 “근로시간을 줄이는 동시에 바로 탄력근로제를 풀어버리면 기업들은 이것만 활용하고 근로시단 단축에 대한 노력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도 “사업장 실태조사가 안 된 상태에서 탄력근로제를 어설프게 손대기 보다는 2~3년 동안 제대로 된 조사를 하는 것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④실질적인 가이드라인 내놓아야

정부가 지난 11일 뒤늦게 내놓은 직장 내 회식과 거래처 접대, 출장 등 근로시간 기준과 사례를 담은 ‘근로시간 단축 가이드라인’의 보완도 필요하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근로시간의 기준을 제조업이든 서비스업, 사무직에 똑같이 적용하다 보니까 근로시간 해당여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발표됐는데도 혼란만 키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금이라도 관련 가이드라인에 외국이나 개별 기업의 세세한 사례 더 반영할 수 있도록 용역을 맡기든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⑤도미노 시행 연기는 막아야

2020년부터 순차적으로 개정된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 30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도 미리 지원책을 마련해둬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이번 유예 조치가 도미노식 연기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성희 교수는 “300인 미만 사업장들에게서도 ‘우리도 계도기간 달라’는 요구가 나올 수 있다”며 “단속과 사업장 실태조사를 통해 법 시행이 미뤄지지 않도록 지금부터 주시해야 한다”고 했다. 권혁 교수는 “300인 미만 사업장은 열악한 근로조건을 이유로 구직자들이 기피해 아예 인력을 구할 수 없는 영세사업장이 있을 수 있다”며 “이런 곳은 기업과 근로자에 대한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포함한 사회안전망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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