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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면허로 광란의 자살비행… 구멍 뚫린 美 항공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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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면허로 광란의 자살비행… 구멍 뚫린 美 항공보안

입력
2018.08.12 18:05
수정
2018.08.15 16:50
12면
0 0

# 시애틀 공항 계류 소형 여객기에

항공사 직원 침입해 갑자기 이륙

균형 잃은 채 지그재그로 비행

전투기 띄워 추적… 결국 추락

# “난 부서진 사람” 불안정한 모습

美 정부 “테러와는 무관” 입장

광란의 자살비행 끝에 비행기가 추락하며 사망한 항공사 호라이즌 에어의 지상직원 리처드 러셀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 계정에 올린 셀카 사진. 자신이 근무하는 시애틀-타코마 국제공항에서 계류 중인 항공기를 배경으로 찍었다. AFP 연합뉴스
광란의 자살비행 끝에 비행기가 추락하며 사망한 항공사 호라이즌 에어의 지상직원 리처드 러셀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 계정에 올린 셀카 사진. 자신이 근무하는 시애틀-타코마 국제공항에서 계류 중인 항공기를 배경으로 찍었다. AFP 연합뉴스
그림 2 10일 미국 워싱턴주 상공에서 터보프롭 Q400 항공기가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고 있다. 조종사 면허가 없는 항공사 직원이 탈취한 이 비행기는 1시간 가량 곡예비행을 하다 인근 섬에 추락해 산산조각이 났다. 사진은 일반 시민이 휴대폰으로 촬영한 것이다. 시애틀=AFP 연합뉴스
그림 2 10일 미국 워싱턴주 상공에서 터보프롭 Q400 항공기가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고 있다. 조종사 면허가 없는 항공사 직원이 탈취한 이 비행기는 1시간 가량 곡예비행을 하다 인근 섬에 추락해 산산조각이 났다. 사진은 일반 시민이 휴대폰으로 촬영한 것이다. 시애틀=AFP 연합뉴스

미국 시애틀에서 조종사 면허가 없는 항공사 직원이 비행기를 훔쳐 광란의 비행을 벌이다 추락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승객이 없는 여객기라 이 직원 이외에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70만명 이상이 거주하는 대도시인 시애틀 도심에 떨어졌을 경우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정신 병력이 의심되는 이 직원이 통제 구역인 조종석에 들어가 버젓이 조종간을 잡을 때까지 어떠한 제지도 받지 않았을 만큼 미국 항공 보안에 심각한 구멍이 뚫렸다고 미 언론들은 일제히 경악했다. 미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9ㆍ11 테러 사건을 겪은 이후 겉으로 보이는 승객 감시는 강화됐을 지 모르지만, 정작 비행기 안전에 직결된 항공 보안은 여전히 허술하다는 민낯을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비판했다.

CNN 등 미 언론이 전한 자살 비행 사건의 전말은 미스터리투성이다. 10일(현지시간) 오후 7시 32분께 미국 워싱턴주의 시애틀-타코마 국제공항에 정비를 받기 위해 계류 중이던 터보프롭 Q400 기종 항공기 엔진이 갑자기 굉음을 뿜으며 이륙했다. 조종석에 앉은 이는 항공사 ‘호라이즌 에어’에서 지상직 직원으로 근무하던 리처드 러셀(29). 76명을 태울 수 있는 여객기에 탑승자는 러셀 한 사람뿐이었다. 비행기는 균형을 잃은 채 지그재그로 날거나, 거꾸로 고꾸라지는 등 곡예 비행을 이어갔다. 미 당국은 즉각 F-15 전투기 2대를 띄워 추적에 나섰다. 러셀은 교신을 시도하는 관제탑 직원들과 1시간가량 횡설수설 대화를 이어가다 결국 공항에서 64km 떨어진 케트런섬 숲에 비행기가 추락하며 사망했다.

미 수사 당국은 일단 이번 사건이 테러 조직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으며 자살 충동을 느낀 한 개인의 일탈 행위로 잠정 결론 내렸다. 러셀은 교신 과정에서 스스로를 “지금까지 몰랐는데, (나는) 나사가 몇 개 풀린 부서진 사람”이라고 표현하면서 “나를 돌봐준 많은 사람에게 사과한다”고 말하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호라이즌 에어는 러셀이 채용 당시 범죄 경력도 없었고, 3년 반 동안 근무하는 기간에 비행기 이륙을 도왔으며 수하물 처리 등을 담당해 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언론들은 이번 사건으로 미국 항공사의 취약한 보안 시스템에 경고등이 들어왔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일단 미국 항공 보안 규정상 비행기가 이륙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두 사람이 견인 작업에 투입돼야 하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항공사 측은 또 러셀이 비행기에 합법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전문가들은 지상 직원의 비행기 조종석 출입은 불허하는 게 원칙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전문 지식이 없는 지상 직원이 비행기를 작동시킨 점도 의문이다. 한 항공전문가는 CNN방송에 “전문적인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러셀은 엔진을 만질 수 있는 등 기본적으로 비행기를 날게 하는 기술은 알고 있는 듯 하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조종사들과 달리 비행 정비사 및 항공사 지상 직원들의 정신 건강 상태가 전혀 체크되지 않고 있다며 정기적인 검진 시스템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각에선 비행기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전투기가 동원된 점이 추락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그는 교신 과정에서 처음에는 “비디오 게임을 해 봐서 잘 몰 수 있다”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다가, 자동항법장치가 고장 나자 관제탑에 구체적인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비행기 연료가 빠른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하자 당황하며 “어차피 이대로 내리면 종신형 아니냐”며 자포자기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해 미 공군은 “전투기 추격과 충돌과는 무관하다. 비행기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도록 하는 임무를 수행했다”고 밝혔다.

강윤주 기자 kkna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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