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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쇼비즈니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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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쇼비즈니스가 아니다"

입력
2014.10.0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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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영화 34년 외길...9편 만들어

'토리노의 말' 유일한 국내 개봉작

"삶이 없는 가짜ㆍ엉터리 영화 보고 화가 나서 영화 만들기 시작했죠"

영화 현장을 은퇴한 벨라 타르 감독은 “새로운 언어, 신선하고 획기적인 사고, 나보다 급진적이고 용감한 사람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부산=연합뉴스
영화 현장을 은퇴한 벨라 타르 감독은 “새로운 언어, 신선하고 획기적인 사고, 나보다 급진적이고 용감한 사람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부산=연합뉴스

타르라는 이름처럼 그의 영화는 목탄으로 그린 듯 잿빛에 가까운 탁한 회색을 띤다. 거북이처럼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카메라가 천천히 그려내는 흑백 영상 속의 인물들 표정은 삶의 고단한 무게를 이고 가는 듯 묵직하다.

헝가리의 거장 감독 벨라 타르(59)가 부산국제영화제의 영화 교육 프로그램인 아시아영화학교 교장을 맡아 부산을 찾았다. 17일간의 짧은 교육 일정 중 만난 타르 감독은 낮고 울림 있는 말투로 진중한 언어와 ‘F’로 시작하는 욕설을 섞어가며 3년 전 스스로 자신의 영화 세계에 마침표를 찍은 이유부터 이야기했다.

“34년간 영화를 만들어 왔는데 굉장히 오랜 여정이었습니다. 그간 만든 영화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모두 했어요. 그 영화들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의 요약 같은 건데 굳이 내가 한 걸 반복하고 복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16세에 연출을 시작해 22세에 데뷔작을 발표한 벨라 타르는 은퇴를 선언한 2011년까지 34년간 단편과 TV영화 등을 제외하고 단 9편의 영화만 만들며 고독한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

“어릴 때 극장을 좋아해서 자주 갔어요. 그런데 영화를 보면 삶과 전혀 연결되지 않고 가짜, 엉터리뿐이더군요. 화가 나서 삶에 대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사회적인 예민성과 분노가 영화를 만드는 기초가 됐다면 점점 많은 것을 알게 되면서 사회적인 것에서 존재론적인 것으로 바뀌었고 그 다음엔 우주적인 것으로 옮겨갔습니다.”

작가 겸 인권운동가 수전 손탁이 “현대 영화의 구세주”라고 치켜세운 벨라 타르의 영화는 상영 시간에 비해 서사의 정보량이 굉장히 적고 단일 장면을 단절 없이 길게 이어 찍는 롱테이크 기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때로 명상적인 철학서 같고 시집 같다. 대표작인 ‘사탄탱고’(1994)는 무려 7시간 30분에 이르는 대작인데 한 쇼트가 5~10분 정도 되는 롱테이크가 부지기수다. 그는 “한 장면을 몇 개의 컷으로 잘라 이어 붙이는 것과 롱테이크로 보여주는 건 긴장감이나 존재감이 전혀 다르다”며 “롱테이크는 가장 인간적인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 개봉한 그의 영화는 단 한 편, 2011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수상작인 은퇴작 ‘토리노의 말’이다. 말과 말 주인의 반복적인 일상을 매우 느리고 사색적으로 바라보는 이 영화 역시 벨라 타르만이 그릴 수 있는 세계를 보여준다. 영화를 연출할 때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영화 감독은 서로 전혀 다릅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스타일,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어요. 만드는 사람만이 갖고 있는 고유의 개성, 스타일, 언어가 들어 있어야 합니다. 누가 봐도 그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여야 해요.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정직함이죠.”

아시아영화학교는 11일 수료식을 한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쇼 비즈니스로서의 영화를 하고 싶다면 그저 ‘행운을 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영화는 쇼 비즈니스가 아니라 또 하나의 예술입니다. 우리 감독들은 우리가 본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진실하고 분명하게 말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

부산=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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