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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점철 기무 개혁史, 문재인 정부에선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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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점철 기무 개혁史, 문재인 정부에선 다를까

입력
2018.07.28 11:00
수정
2018.07.28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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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전수전 기무사와 진흙탕 싸움 

 靑 리더십 신뢰까지 잃은 宋국방 

 “자리 연연 안해” 의지 확고해도 

 정권 수요 지속 땐 역부족일 듯 

송영무(앞쪽) 국방부 장관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석구 국군기무사령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배우한 기자
송영무(앞쪽) 국방부 장관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석구 국군기무사령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배우한 기자

국방부와 국군기무사령부가 연일 난타전이다. 상명하복 질서와 기강을 목숨처럼 여기는 군(軍)의 모습이 아니다.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연출된 장면이 압권이다. 국방부를 담당하는 100기무부대의 부대장 민병삼 대령이 “7월 9일 오전 간담회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위수령 검토 문건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폭로하자, 송 장관이 “완벽한 거짓말”이라고 거칠게 반박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공교롭게 이튿날 국방부 감사관실은 민 대령의 업무용 개인용컴퓨터(PC)를 조사했다. ‘보복’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기무사의 ‘촛불집회 계엄령 검토 문건’에 대한 특별수사단의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다. 사실 국방부가 일개 군부대와 치고 받고, 하극상이냐 리더십 부재냐가 논란이 되는 상황 자체가 이미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왜 기무사는 국방장관에게 조아리지 않는가. 이 범상찮은 군대의 충성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경기 과천시 국군기무사령부 건물 벽면에 문재인 정부 국방 비전인 '유능한 안보, 튼튼한 국방'이라는 문구가 기무사 표식과 함께 붙어 있다. 배우한 기자
경기 과천시 국군기무사령부 건물 벽면에 문재인 정부 국방 비전인 '유능한 안보, 튼튼한 국방'이라는 문구가 기무사 표식과 함께 붙어 있다. 배우한 기자

 계엄사령관 끌어내린 보안사령관 

기무사 역사의 시작은 광복 이후 좌ㆍ우익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회 혼란 속에서 대공(對共) 업무 전담 기구 필요성이 대두됐고, 정부는 조선 경비대 정보처 내에 기무사 모체라 할 수 있는 특별조사과를 설치한다. 특별조사과는 이듬해 정보국 특무대로 명칭을 바꾼다. 다시 이듬해인 1950년 대공 업무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입어 육ㆍ해ㆍ공군이 각각 별도 기구를 설치해 독립적이고 입체적인 방첩 태세를 갖춘다.

방첩부대, 보안부대로 개칭한 육ㆍ해ㆍ공군 각 기구는 1977년 기능이 합쳐지면서 국군보안사령부로 다시 태어났고, 군 내부의 모든 주요 정보를 손에 쥘 수 있게 된 보안사 권력은 막강해진다. 급기야 1979년 육군 소장이던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 겸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이 직속 상관이자 대장인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끌어내리고 정권을 장악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12ㆍ12 사태다. 보안사 권력은 정점에 이른다.

기세가 꺾인 건 1990년대 들어서다. ‘보안사가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윤석양 이병의 폭로를 계기로 노태우 정부는 군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 금지를 약속해야 했고 1991년 보안사 이름이 국군기무사령부로 바뀌었다. 현재 기무사가 홈페이지에 소개하고 있는 업무는 크게 ▦군사 보안 및 군 방첩 업무 ▦군 및 군 관련 첩보의 수집ㆍ처리 ▦정보 작전 방호 태세 및 정보전 지원 ▦군사법원법(제44조 2호)에 규정된 특정 범죄 수사 ▦국방 정보통신 기반 체계 보호 지원 등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정권마다 기무사 개혁 시도… 결과는 실패로 

‘기무’는 ‘근본이 되는 중요한 일’, ‘중요하고 기밀한 정무’ 등을 뜻한다. 문제는 누구에게 중요하냐였는데, 박근혜 정부 당시 기무사가 저지른 민간인 사찰과 정치 개입 등 월권은 철저히 정권에 복무한 결과였다. 현재 특별수사단이 혐의를 잡고 수사 중인 세월호 유가족 사찰, 계엄령 검토 문건 작성 등이 대표적 사례다.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무사는 수술 대상 명단에 올랐다. 기무사 계엄령 문건 작성 지시자로 의심되고 있는 김관진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2013년 국방장관을 맡았을 때에는 ‘고강도 기무사 개혁’을 주문했었다. ‘장관 인사권에 문제가 있다’고 청와대에 직접 보고한 장경욱 당시 기무사령관을 기용한 지 6개월 만에 전격 경질하고, 기무사에는 “특권의식과 낡은 관행을 없애고 본연의 모습에 충실하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그리고 이듬해 다양한 개혁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이때뿐 아니다. 기무사 개혁사(史)는 실패로 점철돼 있다. 김영삼 정부는 1993년 군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척결하고 본산인 기무사 개혁에 착수했다. 장성 수가 대폭 줄어드는 듯했지만 1년 만에 원상 복구됐다. 김대중 정부는 방첩 기능을 제외한 일반 정보, ‘대전복 임무’(쿠데타 방지) 등 나머지 기능을 해체한 뒤 기무사를 국방부 정보본부 산하로 통폐합하는 개혁 방안을 추진했지만 불발했다. 노무현 정부도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보고를 폐지하면서 기무사 개혁을 외쳤으나, 기무사는 오히려 군 사이버사령부를 창설하겠다고 나서며 조직 확장을 시도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국방개혁안 '국방개혁 2.0'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국방개혁안 '국방개혁 2.0'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송영무標 개혁은 성공할까 

2018년, 대한민국에서 기무사 개혁이 다시 화두가 됐다는 건 곧 그간의 개혁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는 의미다. 동시에 기무사는 모든 시련을 극복하며 살아남아 더 강한 조직으로 거듭났다는 것을 뜻한다. 경직된 군 조직에 어울리지 않는 특유의 기민함과 군 내ㆍ외부를 가리지 않는 폭넓은 정보력으로 기무사는 늘 정치 권력 가까이에 있었고, 또 스스로 정치 권력이 됐다.

송 장관은 27일 ‘국방개혁 2.0’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기무 개혁은 정치 개입 금지와 민간 사찰 금지, 특권의식 내려놓기 등 3가지를 주축으로 하는 국방개혁의 정점”이라고 강조했다. 기무사가 생존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는 만큼 기무사에 손을 댈수록 자기 역시 상처 입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그는 “장관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국방개혁을 성공시키고 기무 개혁도 성공시키는 데 제 소임을 다할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기무 개혁은 기무사만 개혁한다고 완수되는 게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껏 반복돼 온 기무사의 일탈은 군 통수권을 사유화하려는 정치 권력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최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것”이라며 “‘대통령을 잘 모시기 위해 기무는 그대로 존치시킨다’는 게 청와대 입장이라면 그건 개혁이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일단 청와대가 ‘대통령 보좌를 위해 기무사를 활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리면 수요가 없어지는 셈이어서 개혁은 절반 이상 성공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러 정권을 거치며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기무사 개혁을 이미 진흙탕 싸움 속에서 흠집이 날 대로 난 송 장관이 사실상 정권의 조력커녕 신뢰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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