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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남, 또 김치녀 타령이냐" 남녀 혐오戰 촉매 된 메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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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남, 또 김치녀 타령이냐" 남녀 혐오戰 촉매 된 메르스

입력
2015.06.1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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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격리 거부女 오해로 밝혀지자 여성들, 여혐 논리로 남성에 반격

소나기가 내리는 17일 오후 서울의 한 대학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학생들이 우산을 쓴 채 교정을 거닐고 있다. 연합뉴스
소나기가 내리는 17일 오후 서울의 한 대학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학생들이 우산을 쓴 채 교정을 거닐고 있다. 연합뉴스

“유영철, 강호순, 68세 1차 메르스 감염자 전부 다 김치남. 반면 한국 여자는 5만원권 신사임당. 요즘 범죄의 90%가 김치남 잘못.”

지난달 29일 한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이 커뮤니티에는 ‘메르스 갤러리’가 만들어져 한국 남성을 ‘김치남(한국 남성을 비하하는 속어)’으로 폄하하는 내용이 여럿 게시돼 있다. 어찌된 일일까.

발단은 지난달 말 메르스 확진자와 같은 비행기를 탄 한국 여성이 홍콩에서 격리 치료를 거부했다는 언론 보도에서 시작됐다. 보도 후 해당 여성을 ‘김치녀’로 칭하며 한국 여성 전체를 조롱하는 여성 혐오글이 한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 쇄도했다. 하지만 이 일이 단순한 의사소통 문제로 벌어진 해프닝이었다는 사실이 며칠 뒤 밝혀지자 이번엔 여성 네티즌들이 발끈했다. 또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에 메르스 갤러리를 만들어 남성 혐오 게시글을 잇따라 올린 것이다. 한국 사회를 강타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엉뚱하게도 사이버 공간에서 남녀 갈등을 일으킨 촉매가 된 셈이다.

메르스 갤러리에 올라온 글들은 그 동안 일부 커뮤니티에서 한국 여성의 신체적 특성을 희롱하며 모욕을 주던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한 남성의 잘못을 두고 전체 한국 남성을 김치남이라고 부르며 비난하는 것도 기존의 여성 혐오 논리와 같았다. 이달 19일까지 3주 만에 메르스 갤러리엔 메르스와 관계없는 남녀 비하 게시글이 무려 23만1,200여건 등록됐다.

싸움이 격화하자 커뮤니티 운영자는 갤러리 이용자들에게 “욕설이나 심한 성적 표현을 계속 하면 제재 조치를 취하겠다”며 경고하고 나섰다. 이에 여성 네티즌들은 “여혐 게시글이 올라올 땐 한번도 제재를 받은 적이 없는데 남혐만 안 되는 것이냐”고 반발하며 ‘메갈리아’, ‘메갤저장소’ 등 트위터 계정과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의 양성 갈등 수준이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고 진단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몇 년간 온ㆍ오프라인으로 지속돼 온 여성 혐오를 참다 못해 그 반작용으로 여성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라며 “이들은 그간 여성혐오주의자들이 썼던 극단적인 문장 구조와 방식을 그대로 차용해 되돌려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명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갈등을 겪고 있는 모든 집단은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자신의 목적에 유리하게 이를 이용한다”며 “이번에는 메르스를 활용해 싸움을 벌인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정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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