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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우 기자

등록 : 2018.03.13 16:24
수정 : 2018.03.14 01:24

이중간첩 독살 싸고 더 심각해지는 신냉전

등록 : 2018.03.13 16:24
수정 : 2018.03.14 01:24

“해명 없으면 불법 공격 간주”

메이 영국 총리, 러시아 배후 지목

금융제재ㆍ외교관 추방 등 전망

러시아는 “서커스 쇼” 정면 반박

미국은 “분노 일으켜…영국 지지”

EU 추가 제재 가능성까지 제기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12일 영국 의회에서 전직 첩보원 중독사건의 배후로 러시아를 암시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런던=AP 연합뉴스

영국 정부가 자국 내 러시아 출신 전직 첩보원 중독사건의 배후로 러시아를 사실상 지목하면서 양국 간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미국마저 영국에 보조를 맞추면서 러시아를 향한 서구의 새로운 제재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마저 나온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12일(현지시간) 의회에 출석, 국방부 산하 과학연구소의 조사 결과를 인용해 러시아ㆍ영국 사이 이중 첩보원 역할을 했던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그 딸 율리아가 러시아로부터 공격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두 인물을 중독시킨 물질인 ‘노비초크’가 구 소련과 러시아에서 제조한 독극물이기 때문이다. 메이 총리는 “러시아가 13일 자정까지 해명에 응하지 않으면 영국에 불법적 공격을 가한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최후 통첩까지 날렸다.

그러나 러시아의 입장은 강경했다. 크렘린궁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해당 사건은 영국 영토에서 일어났으며 러시아 혹은 그 지도부와 전혀 관계 없다”고 밝혔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도 메이 총리 연설을 “서커스 쇼”라고 비난했다. 러시아 외교부는 “서구 언론이 러시아 월드컵 개최에 앞서 반(反) 러시아 감정을 조장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2일 크라스노다르 쿠반농업대학에서 열린 전러시아 곡물생산자포럼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크라스노다르=타스 연합뉴스

두 나라가 정면 충돌함에 따라 영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러시아에 제재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가디언과 파이낸셜타임스 등은 영국이 단독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로 ▦자국 내 러시아 외교관 추방 ▦RT 등 러시아 국영언론의 방송 라이선스 중단 ▦러시아 월드컵 보이콧 ▦러시아를 겨냥한 인권 침해 혐의 연루자에 대한 금융제재 입법, 이른바 ‘마그니츠키법’ 제정 등을 거론했다. 마그니츠키법은 미국에서 2013년 제정됐다. 영국 허미티지 캐피털을 대변했던 러시아인 변호사 세르게이 마그니츠키가 모스크바 감옥에서 의문사한 뒤, 관련자를 제재하는 법이다.

러시아와의 대립 구도에서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영국에 가담할 경우 ‘신냉전’ 구도가 심화할 가능성도 있다. 이미 우크라이나 문제로 러시아를 제재 중인 EU가 추가 제재를 할 수도 있고, 영국과 ‘특수관계’인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의 러시아 국경 지대에 병력 증강할 수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영국이 ‘심각한 안보위협’을 구실로 나토 조약 4조를 발동해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공동 대응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아프리카 순방에 나선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12일 조프리 온예아마 나이지리아 외교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아부자=로이터 연합뉴스

이미 미국은 전략적 이해가 일치하는 영국을 지원하고 나섰다. 백악관은 “영국 땅에서 영국 시민에게 치명적인 신경작용제를 사용한 것은 분노를 일으키는 일“이라며 “우리는 영국 정부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군사력 상으로는 러시아가 영국을 압도하지만, 시리아 내전과 선거개입 문제 등으로 러시아와 마찰을 빚고 있는 미국이 가세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메이 정부는 EU탈퇴(브렉시트) 이래 외교 고립을 우려하며 러시아에 다소 느슨한 태도를 취해 왔다. 지난해 12월 보리스 존슨 외교장관이 영국 고위관리로서는 약 5년 만에 모스크바를 방문하기도 했다. 반면 유럽과는 브렉시트 협상, 미국과는 통상 마찰 등 최근 분쟁 이슈가 적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스크리팔 사건은 영국이 전통적인 대(對) 러시아 강경 노선으로 회귀하고, 영국에 대한 ‘서구 동맹’의 지지를 확인하는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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