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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시집 장가가는 날

입력
2018.01.25 13:0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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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의 울음소리는 생동하는 나팔소리다. 고령화 사회를 넘어 이제 고령사회로 고착화되는 지금 희망의 축포(祝砲)이다. 인구절벽의 대란은 아주 가까운 미래에 닥칠 재앙이다. 인구감소로 10년 후면 8할의 빈집을 예고하는 일본의 우울한 모습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만은 없다. 또 한 세대 후 우리 손자들이 살아갈 사회는 어떠할지 두려움이 앞선다. 아기의 포효하는 울음소리만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다.

마흔 가까운 아들이 늦장가를 간다. 원만한 가정의 성품 좋은 규수를 찾았다. 여성의 사회참여 성취를 넘어선 가정의 행복을 가꾸는 동반자였으면 좋겠다. 10년 가까이 혼자 밥을 끓여 먹는 미국 유학생활의 삶이 안쓰러웠다. 여기서도 행복할 수 있는데 아버지의 둥지를 탈출하는 모험을 감행하지 않고서는 한 단계 도약을 꿈꿀 수 없어서일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학문의 꿈을 꽃피우는 도전에 몸부림치는 청년의 모습에 “우리 아들 용감하다, 사랑한다”는 응원밖에 더 보탤 말이 없었다. 이제 주립대학에 자리 잡고 가정을 꾸린다.

전통적으로 혼사(婚事)는 당사자인 신랑 신부나 그 친구들의 축제보다는 혼주인 부모의 하객들이 축하하는 사회적 관계의 마당이다. 대체로 신랑이 신혼집을 마련하고 신부가 살림살이를 준비하는 일이 부모의 몫이다. 풍속이 변해서인지 젊은 그들 방식대로 혼례준비를 한다면서 부모는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혼주는 하릴없이 계면쩍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청첩장을 내는 일은 내 몫이다. 청첩장을 덜렁 보내기 쑥스러워 공들여 만든 수목원 새해 달력 사이에 ‘모시는 글’을 끼워 넣었다. 10년 전 딸아이를 시집 보내면서 박경리 시집 안에 ‘모시는 글’을 함께 보냈던 일도 기억이 새롭다. 보낼 사람을 선택하는 일은 그이들과의 인연을 되새겨 보는 행복한 시간이기도 하다. 친인척과 아들의 성장과정을 잘 아는 사람들이 축하객 일순위이다. 내 일처럼 반가울 것이다. 예전에 혼사를 챙겼던 사람들에게는 기쁜 마음으로 모시는 글을 보낸다. 주고받으면서 더욱 돈독한 관계가 생기는 편한 사람들이다. 아는 사이 같지만 소식을 알려 결례가 되는지 멈칫거리게 되는 사람도 있다. 그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자신이 없는 어중간한 경우이다. 새삼스럽게 연을 맺어 갚아야 할 자연채무(自然債務)가 부담스러우면 건너뛰기도 했다.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의무는 상부상조의 전통적 민간보험일 수도 있다. 축의금, 부조금은 준 대로 다시 받는다기보다 열을 하면 넷 정도 되돌아오는 것 같다. 사람들은 넷을 주고 열을 기대하는지 섭섭한 속내를 감추지 못한다.

명동대성당에서 혼례를 치르기로 했다. 양가가 가톨릭 집안이라 편하게 결정했다. 수목원의 넓은 잔디밭에서 며느리를 맞는 숲속 혼인식을 꿈꾸기도 했다. 빠듯한 대학강의 일정으로 꽃피는 봄날을 기다릴 수 없다니 어찌할 수 없다. 박선용 신부님이 집전한 혼배미사는 하느님의 축복으로 경건했다. 명동대성당 스테인드 글라스의 후광이 아니더라도 그 동안 세상잡사의 욕망을 핑계 삼은 냉담도 속죄해야 했다. 젊은이들이 사랑으로 맺어졌지만 소소한 갈등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서로간의 접점을 넓히며 조율해 줄 어른 역할은 박 신부님의 몫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미국으로 떠났다. 죄송하게도 엄동설한의 대성당 광장에 줄을 세웠던 축하객들의 모습을 일일이 사진에 담았다. 우선 스마트폰으로 몇 백 명의 환한 모습과 짧은 감사 글을 한 분 한 분 메시지로 보냈다. 침침한 눈과 서툰 손놀림이었지만 정성이 배어난 뜻 깊은 시간이었다. 내 삶의 수호천사인 그분들에게 예를 갖춰 자연채무를 갚는 제1과 제1장의 시작이다.

조상호 나남출판ㆍ나남수목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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