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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못했다는 절망이 만들어 낸 슬픈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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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못했다는 절망이 만들어 낸 슬픈 외침

입력
2014.10.0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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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ㆍ박현주 옮김

포레 발행ㆍ464쪽ㆍ1만5,000원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오츠의 중ㆍ단편 7편 묶은 자선집

사랑의 교환 붕괴된 현실 꼬집어

조이스 캐롤 오츠(76)의 소설은 언제나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세계는 도처에 악마들이 잠복해 있는 공간이며 인물들은-설령 그가 선량하고 호의적일지라도-기어이 그 악마와 조우하고 만다. 영미권의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매년 거론되는 이 여성 작가는, 흡사 솜씨 좋은 의사처럼, 문장이라는 내시경으로 세계의 악마성을 치밀하게 재현해내고, 독자는 종종 동반되는 신체적 긴장과 피로 속에서 인간과 세계의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보는 격통을 겪어야 한다.

2011년 출간돼 최고의 공포소설에 주어지는 브램스토커상을 받은 오츠의 소설집 ‘악몽’은 작가가 1995년부터 15년간 쓴 작품 중 여섯 편의 단편과 한 편의 중편을 직접 골라 묶은 자선집이다. 팽팽한 긴장과 불안, 잔혹한 가학과 악의가 오츠의 낙관처럼 작품 전편에 선연하지만, 그 악마성은 슬프게도 사랑 받지 못했다는 절망과 사랑 받고 싶다는 갈망에서 연원한다. 그러므로 이 공포에는 슬픔이 흥건하다.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소설가 조이스 캐롤 오츠는 1964년 등단한 이후 50년 동안 50편이 넘는 장편소설과 1,000편이 넘는 단편소설, 시, 산문, 비평 등을 발표한 왕성한 생산력의 작가다. 포레 제공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소설가 조이스 캐롤 오츠는 1964년 등단한 이후 50년 동안 50편이 넘는 장편소설과 1,000편이 넘는 단편소설, 시, 산문, 비평 등을 발표한 왕성한 생산력의 작가다. 포레 제공

첫 수록작 ‘베르셰바’는 오츠의 고딕 스타일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복수극이다. 당뇨병으로 고생하는 중년 남자 브래드에게 어느 날 “나를 모르겠어요, 브래드?”라고 유혹하듯 되묻는 젊은 여자의 전화가 걸려온다. 성적으로 자극 받은 브래드는 즉시 여자와 만나 낯설고 외딴 곳의 공동묘지로 드라이브를 가지만, 여자는 오래 전 헤어진 두 번째 부인의 딸. 의붓딸은 어린 시절 자신을 성적으로 학대하고 어머니를 버림으로써 자살에 이르게 만든 의붓아버지의 아킬레스건을 날렵한 솜씨로 절단하고, 잔인하게 죽음의 구덩이로 몰아넣는다.

이 의붓딸의 복수가 나름의 도덕적 근거를 확보하고 있는 것과 달리 ‘도움의 손길’과 ‘옥수수 소녀’의 선한 주인공들은 바로 그 선량함으로 인해 악의 집행대상으로 선택된다. ‘도움의 손길’의 헐린은 남편을 잃고 생이 송두리째 흔들려버린 부유한 과부. 그녀는 남편의 물건들을 상이군인들을 위한 자선단체 ‘도움의 손길’에 기부하러 갔다가 자신을 따스하게 환대하는 젊은 상이군인에게서 연민과 공감이 뒤섞인 애정을 느낀다. 헐린은 물질적 호의와 애정 어린 관심을 퍼부으며 그와 ‘친구, 동반자, 사랑하는 연인’의 관계를 맺을 수 있으리라 순진하게 기대하지만, 전쟁으로 육체와 영혼이 모두 망가진 남자는 포악한 언행으로 그녀를 겁박한다. 선의는 그렇게 손쉽게 설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편 ‘옥수수 소녀’의 주인공인 열한 살 소녀 머리사는 가난한 싱글맘으로부터 따스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부유하지만 정서적으로는 유기된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상급생 소녀 주드에게 납치된다. 주드가 옥수수 소녀를 신에게 제물로 바쳤던 인디언 부족의 전통을 흉내내며 머리사를 죽음 직전까지로 몰고 갔던 것은 “그 엄마가 몸을 숙여서 그 여자애한테 뽀뽀하는 걸 봤”고, “그 화살이 내 심장을 찔렀”기 때문. “난 생각했어. 당신이 날 바라보게 만들겠어. 난 용서하지 않을 거야.” 소설은 누구나 손쉽게 용의자로 만들어 만신창이로 내팽개치는 미디어의 천박함, 싱글맘에 대한 편견과 차별, 아이들의 황폐한 내면이 만들어낸 학교폭력과 왕따 문화 등 미국 사회의 다양한 환부를 폭로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정당한 사랑의 교환이라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 생리법칙이 붕괴된 현대사회의 병리를 꼬집는다. 그래서 소설의 부제가 ‘사랑 이야기’다.

세계환상문학대상 단편상 수상작인 ‘화석 형상’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섬뜩하고도 아름다운 작품이다. 쌍둥이 형제의 증오와 애착을 그린 ‘알광대버섯’과 한 쌍처럼 읽히는 이 단편은 존재의 기반을 잠식하는 동시에 공유하는 쌍둥이라는 관계를 통해 인간 본연의 애정 쟁취와 인정 투쟁 욕망을 해부한다. 자궁에서부터 동생의 모든 것을 빼앗아 빨아들였던 강건하고 총명한 악마 형과, 형의 배설물처럼 자궁에 남겨져 있다 가까스로 적출된 불구의 나약한 동생. 젊고 유능한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하던 형은 끝내 부정부패 혐의로 몰락해 동생 홀로 유폐돼 있는 옛집으로 돌아오고, 형의 혐오와 학대에도 언제나 형을 갈망했던 늙은 동생은 울먹이며 형을 맞는다.

망막에 화인처럼 찍히는 소설의 마지막은 여든 일곱의 노인이 된 두 형제가 “돌로 굳어진 혹투성이 유기체처럼 서로를 감싸 안은” 채 동사한 모습. 목격자의 진술에 따르면 생의 대부분을 악마로 살아온 형이 불구의 동생을 보호하려는 듯 뒤에서 껴안은 채 다정하게 동생의 뒤통수에 이마를 대고 있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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