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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조선산업은 하청 노동자에 빚이 있다

입력
2016.05.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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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산업의 주역은 하청 노동자

구조조정으로 실직 가능성 높아

이들의 목소리 외면하지 말아야

어쩌다 보니 조선산업이 애물단지가 돼서 그렇지, 사실 선박은 중후장대 기술력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에는 철강, 기계, 전자, 통신, 에너지, 엔진 등의 기술이 모두 들어간다. 거기에 용접이나 페인트칠 같은 아날로그 작업이 더해져 사람 냄새 또한 물씬 풍긴다.

그런 조선 산업의 주역은 사내 하청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다. 비정규직이 유독 많은 한국이지만 개중에서도 조선산업은 그 비율이 특히 높다. 연구, 설계, 영업 등 정규직 중심 부서를 포함해도 60%가 넘고 작업 현장은 70~80%나 된다. 조선산업 부실의 주범으로 지목된 해양플랜트는 사내하청 비율이 90%를 웃돈다. 사내하청의 한쪽 끝에는 물량 팀이라는 낯선 이름의 조직이 있다. 사내하청만으로는 기한 내에 작업을 다 할 수 없을 때 투입되는 전문 외주 인력으로 하청의 하청이다.

한국 조선업은 이렇듯 소수의 정규직과 다수의 사내하청, 그리고 필요할 때 투입되는 물량팀으로 유지돼 왔다. 인력 규모로나 하는 일로 보아 가장 압도적으로 많은 작업자는 사내하청 노동자다. 그러나 이들이 제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거나 합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정규직보다 임금이 적다. 고용도 늘 불안하고 안전망 또한 부실하다. 한번 일자리를 잃으면 재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도 위험한 일은 이들 몫이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지난해 작업 도중 숨진 3명이 모두 하청 노동자였고 올해 숨진 5명 중 3명이 하청 노동자였다. 사내하청 노조도 현대중공업에만 있다. 대형 조선사들이 2, 3년 전까지 큰 이익을 낸 데는 하청 노동자의 노고와 희생이 컸다.

이들이 지금 삶의 기로에 놓여있다.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3,000명, 대우조선해양 3,000명 이상 등 정규직 감원 소문도 돌고 있지만 결국에는 하청 노동자에 가장 큰 피해가 집중되리라는 게 대체적 전망이다. 물량팀에서는 이미 대량 실직이 발생했는데 이제 그 불똥이 사내하청으로 튀기 시작했다. 현재 추세라면 올해에만 하청 노동자 2만명 이상이 해고될 가능성이 있다.

최근 만난 한 노동계 인사의 전언은 하청 노동자의 불안한 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거제의 하청 노동자 중 일부가 서비스업 일자리를 구하겠다는 기대감을 품고 부산 지역을 기웃거리고 있다고 합니다.” 조선에서 서비스업으로, 거제에서 부산으로, 하는 일과 생활 지역을 모두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을 테지만 어떻게든 일을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이들을 움직였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조선 산업의 어려움은 결국 경영의 잘못 때문이다.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미래를 잘못 내다보고 그에 대한 대비 또한 그르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을 제대로 하라고 노동자와 비교조차 안 되는 많은 임금과 권한을 경영자에게 주는 것이다. 구조조정으로 경영자와 대주주도 큰 손해를 보지만 일자리를 잃고 삶이 무너지는 노동자와는 고통의 무게가 다르다.

지금 조선 구조조정과 관련해 조선산업의 미래에 대한 전망,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과 기술력에 대한 판단 등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당장에는 조선업체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테지만 결코 빠뜨려서는 안 되는 일이 바로 하청 노동자 보호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구조조정의 컨트롤타워로 여ㆍ야ㆍ정 협의체를 제안했지만 거기에 하청 노동자의 생각을 전달할 통로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최근 만난 노동계 인사들은 조선 산업이 어렵다는 것을 대부분 인정했다.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원칙에도 대체로 동의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한결 같이 한 이야기가 있다.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붓고도 하청 노동자들을 대거 거리로 내몬다면 그것은 성공한 구조조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책임에 맞춰 고통을 나누고, 하청 구조 말단의 힘 없는 노동자에게 피해가 집중되지 않아야 국민 혈세를 투입한 명분도 살릴 수 있다.

/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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