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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동성애 장교 처벌

입력
2017.05.25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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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지휘관의 권한은 절대적이다. 엄격한 상명하복에 폐쇄적 특성이 더해져 지휘관의 지시는 법 이상의 효력을 갖는다. 지휘관이 종교적 신념에 빠져 월권을 행사할 경우 예기치 않은 일도 벌어진다. 1993년 육군 모 사단 전차대대에서 일어난 불상 훼손 사건이 그런 예다. 광신적 개신교 신자인 대대장이 부대 법당에 있던 불상을 야산에 버리고 천주교 공소의 마리아상은 창고에 처박은 사실이 드러나 종교계가 발칵 뒤집혔다. 결국 당시 김영삼 대통령까지 나서서 관련자를 해임하고 유감을 표시해 가까스로 진정됐다.

▦ 동성 군인과 성관계를 했다는 이유로 24일 군사법원에서 유죄가 선고된 이모 대위 사건도 특정 종교를 신봉한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의 지시가 발단으로 알려져 있다. 개신교 장로이자 한국기독군인연합회 회장을 맡은 장 총장이 올해 초 “동성애 군인을 색출ㆍ처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그 후 육군 중앙수사단이 전 부대를 대상으로 수사를 벌여 30여명을 입건해 군 검찰에 넘겼다. 압수영장도 없이 휴대전화를 빼앗는 등 반인권적 수사기법을 총동원했다니, 간첩 색출작전을 떠올리게 한다. 앞으로 동성애 군인 단죄 판결이 줄줄이 이어지는 시대착오적 장면이 연출되게 됐다.

▦ 동성애 장교 유죄선고의 법적 근거는 군형법 제92조6항 ‘항문 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는 규정이다. 강제 성행위는 군형법의 강간죄나 강제추행죄로 처벌할 수 있다. 92조6항의 맹점은 강제성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성행위를 문제 삼는 데 있다. 합의를 했거나, 이성 간이거나, 영외에서 이뤄진 행위조차 오직 체위를 이유로 처벌을 정당화했다.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5대 4로 합헌 결정을 했지만 네 명의 재판관은 “조항이 추상적이고 모호해 자의적 법 해석 가능성을 초래한다”고 우려했다.

▦ 유엔은 2015년 동성애 색출을 목적으로 한 이 조항의 폐지를 우리 정부에 권고했다. 누구나 군대에 가야 하는 징병제 국가에서 동성애를 범죄시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어떤 행위가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해악을 끼치지 않는 한 그 행위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는 ‘해악의 원리’를 자유의 기본 원칙으로 제시했다. 타인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동성애를 처벌하는 것은 국가의 폭력일 뿐이다.

이충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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