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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캠퍼스 열병 앓는 대학가… 대화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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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캠퍼스 열병 앓는 대학가… 대화가 필요해

입력
2016.10.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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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발전 명분에 ‘탈 서울’ 바람

비밀 추진ㆍ이사회 흔들기에 반발

곳곳서 학생 농성ㆍ시위 불붙어

학교 측이 먼저 우려 해소 나서야

인천 연수구에 위치한 연세대 송도캠퍼스 전경. 2011년 3월 송도캠퍼스가 개교하면서 일부 학과들이 이전했고, 2013년부터 신입생 전원이 캠퍼스 내 기숙사에 입소해 강의를 듣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인천 연수구에 위치한 연세대 송도캠퍼스 전경. 2011년 3월 송도캠퍼스가 개교하면서 일부 학과들이 이전했고, 2013년부터 신입생 전원이 캠퍼스 내 기숙사에 입소해 강의를 듣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학교가 소통에 나서지 않는다면 절대 점거농성을 풀 수 없습니다.”

12일 오후 서울대 관악캠퍼스 본관 앞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본관으로 모여든 재학생 100여명은 이날 성낙인 총장에게 교육시스템을 지방으로 옮기는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체결을 철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교 측이 수용불가 입장을 밝히자 일부 학생은 10일 시작된 점거농성을 이어가겠다고 맞받았다. 농성에 참여한 한 학생은 “지방캠퍼스 건립이 타당하느냐 아니냐를 떠나 대학의 주인인 학생들 삶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 올 핵심 사업을 한마디 상의도 없이 밀어붙이는 학교 측 태도에 실망했다”고 성토했다.

대학가가 ‘제2캠퍼스’ 추진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학들은 캠퍼스 포화, 민간자본 유치, 학교 발전 등 각기 다른 이유를 내세워 ‘탈(脫) 서울’을 외치고 있지만 설익은 추진 계획 탓에 구성원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상황이다.

서울 주요 대학들은 10여년 전부터 제2캠퍼스 논의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서울대 시흥캠퍼스 청사진도 2007년 학교가 장기발전 계획으로 내놓은 ‘글로벌리더십 캠퍼스’에서 나왔다. 이후 부지공모와 민간사업자 선정을 거쳐 마침내 지난 8월 시흥시와 사업 개시 직전 단계인 실시협약을 맺었다. 서강대는 2009년부터 경기 남양주시에 제2캠퍼스 조성을 추진했다. 2014년 12월 부지 개발제한구역이 해제되면서 교육부 승인만 남은 상태였지만 5월과 7월 법인 이사회가 잇따라 이전안에 퇴짜를 놓으면서 좌초 위기에 처했다.

대학들은 ‘학교 발전’을 이유로 캠퍼스 이전을 서두르고 있다. 서울대 관계자는 “관악캠퍼스뿐 아니라 의과대가 있는 연건캠퍼스 및 평창과 수원에도 교육시설이 있어 시흥캠퍼스 역시 대학 기능을 보완하는 차원”이라며 “세계적 수준의 학교로 키우려면 기능을 분산해 집중 육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강대 관계자도 “신촌캠퍼스에는 더 이상 인프라 개선을 위해 쓸 수 있는 공간이 없다”며 “매년 대학순위가 하락하는 현실에서 투자와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방 소재 대학들은 정부 대학구조개혁을 피하기 위해 거꾸로 수도권 진출을 꾀한다. 충북 제천시에 본교가 있는 세명대는 2014년 경기 하남시의 대학유치사업자공고에 선정되면서 인문ㆍ사회계열을 중심으로 일부 학과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학교 관계자는 “지방대는 정부의 재정지원 없이 학교 운영이 어려워 대학구조개혁 과정에서 퇴출되지 않으려면 수도권을 거점 삼아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저마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제2캠퍼스를 추진하지만 관건은 결국 돈이다. 명문대를 유치해 지명도를 높이려는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 구애와 지자체의 막대한 재정지원을 염두에 둔 대학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질 경우 사업이 급물살을 타는 식이다. 시흥시는 서울대에 캠퍼스 부지 66만2,009㎡를 무상 제공하고 시공사도 시설지원금 3,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반면 이화여대는 2006년 경기 파주시 미군 반환공여지에 캠퍼스 설립을 추진하다 토지 가격이 2배 이상 오르면서 5년 만에 사업을 접어야 했다. 한 대학 관계자는 “대학 개혁을 요구하는 정부와 여론의 압박 속에서 지방캠퍼스는 안정적인 재정을 담보할 수 있는 최적의 아이템”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대부분 사업 계획이 비밀리에 추진되다 보니 뒤늦은 반발을 부르고 그 과정에서 누적된 학내 갈등이 폭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숙형 대학’을 표방한 서울대 시흥캠퍼스안이 처음 공론화된 건 사업 추진 6년이 지난 2013년이었다. 학생들은 강제 기숙사 생활은 없을 것이란 학교 측의 거듭된 해명에도 설득 노력이 없었다며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총학생회 관계자는 “당장 교통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기업 자본이 기반이 된 하는 캠퍼스 운영으로 연구 활동이 훼손되지 않을지 등 학생들이 제기하는 다양한 우려에 학교는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대와 달리 서강대는 캠퍼스 이전에 구성원들이 어느 정도 동의한 상태다. 학교 본부 관계자는 “남양주캠퍼스 아이디어를 받는 공모전을 진행하는 등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내부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60년 넘게 학교 운영을 좌지우지한 예수회 중심의 이사회가 제동을 걸면서 엉뚱하게도 쟁점이 ‘예수회 개혁’으로 옮겨 갔다.

앞선 사례를 보면 대학 제2캠퍼스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2011년 서울대 시흥캠퍼스와 유사한 국제캠퍼스를 인천 송도에 연 연세대도 초반에는 신입생 전원을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하는 새 시스템에 반대가 많았다. 그러나 신촌과 송도를 오가는 셔틀버스를 운영하는 등 학생들이 제기한 걸림돌을 많이 제거한 덕분에 만족도가 크게 올랐다는 평가다. 같은 해 동국대는 경기 고양시에 ‘바이오메디캠퍼스’를 설립하고 바이오기술(BT) 개발에 집중했지만 학생들의 불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재학생 심모(26)씨는 “장학금 신청 등 행정처리를 하려면 지금도 서울캠퍼스로 가야 한다”며 “학교의 특성화 육성 계획에는 찬성하지만 학생복지 부분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제2캠퍼스를 바라보는 여론도 양적 팽창과 질적 향상이라는 두 가지 시각이 공존한다. 교육부 사립대학제도과 관계자는 “캠퍼스 이전은 더 나은 교육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대학의 노력이 반영된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에 반해 이수연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충분한 준비 과정 없이 캠퍼스 규모 확대에만 매달릴 경우 교육의 질적 하락을 가져 오는 등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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