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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국민이 멀미가 날 때

입력
2017.06.04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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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게서는 잡티의 향기가 난다. 국민 공분을 살만한 대단한 위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낙마했던 장관 후보자들이 안고 있던 도덕적 결함을 고루 갖고 있다는 얘기다. 자녀 교육을 위한 위장전입과 거짓말 논란에 자녀의 해외국적 취득에 따른 이해상충 문제, 여기에 본인과 자녀의 건강보험법 위반까지 제기됐다. 장녀가 국적 상실로 건강보험 자격을 상실했음에도 강 후보자 남편의 피부양자로 등록, 건강보험 혜택을 받았다는 것이다. 강 후보자 역시 유엔기구에 근무하고 있음에도 8년간 남편의 피부양자로 등록돼 부당한 혜택을 누렸다고 한다. 강 후보자는 “건강보험과 관련한 구체적인 신고와 자격요건에 대해 숙지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송구하다”고 외교부를 통해 전했다.

알만한 사람으로서 위법이 될만한 일을 방치해 둔 점은 자기 관리가 부족하다는 인상이 짙다. 대학에 안주하면서 권력과 사회에 대한 비판을 지식인의 사명으로 여겼던 학자가 느닷없이 장관 후보에 올라 뒤늦게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게 된 경우와는 달라서 더 그렇다. 매년 재산 신고를 하고, 검증을 받아야 하는 외교부의 고위 공직자 생활을 7년간 경험했고,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 등 국제기구에서도 고위직을 맡아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여성지도자 반열에 올라있던 강 후보자다. ’유리천장’을 앞장서 뚫고 있는 개척자로서 마땅히 국가의 부름에 부끄러움 없이 응할 준비가 돼 있어야 했다.

청와대는 지난달 강 후보자 내정 발표에서 위장전입 등 도덕성 문제를 미리 공개하면서 “외교역량을 높이 평가했다”고 했다. 다자외교 전문으로서 강대국 외교가 우선시 되는 우리 외교환경에 적합하냐는 논란은 차치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5대 배제 원칙(병역면탈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논문표절)까지 뛰어넘은 인사에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냉소가 벌써부터 유행어가 됐다. 이낙연 총리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까지 위장전입에 엮이자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국민 눈높이에 맞추지 못해 죄송하다”며 현실론을 폈고, 총리 인준을 앞두고 들끓는 야당 분위기에 문 대통령은 마지 못해 양해를 구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비롯해 청와대 스텝이 꼬이고, 여당은 야당 시절 언행이 발목을 잡는 형국이라 인사기준과 검증이 ‘과거와 다른 게 뭔가’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생겼다. 시작에 불과한 장관 인사와 야당과 언론의 불 붙은 검증 공세에 비춰 10년만의 진보정권이 온전히 출범하는 날이 언제일지 가늠하기 어렵다.

강 후보자야말로 이 정부가 도덕성 문제를 파악했다면 보다 적절한 자리에서 그 역량과 사람을 키웠어야 할 일이었다. 탕평과 여성 인재 등용의 대의를 자락에 깔았다 해서 이만한 인물이 없으니 결함을 대놓고 눈 감아달라는 얘기는 어설픈 독선(獨善)에 불과하다. 이 상태라면 강 후보자가 며칠 남지 않은 인사청문회에서 또 무슨 새로운 의혹제기에 어떤 생채기가 날지 알기 어렵다.

아쉬운 대목은 문 대통령이 후보시절 내세웠던 인사 원칙의 손쉬운 이탈에 있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1993년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 때부터 인사 검증이 이뤄져 지금의 5가지 도덕성 문제가 마찬가지로 도마에 올랐다. 이런 일이 그간 국민 감정에 부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증명이 되고도 남았다. 길게는 24년, 적게는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17년 동안 숱했던 반면교사를 외면한 채 장관 후보에 오른 이들이 자기 관리에 소홀했다면 국가의 책임 있는 자리에도 뜻을 두지 않았다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

흔히 말하는 패러다임의 전환, 생각과 행동의 전환이 관행과의 엄격한 단절에 있을 터인데 고통을 감내하기보다 너무 손쉽게 편의주의에 기댔다. 이런 일이 비단 인사만이 아니라 모든 국가적 정책에서 춤을 추고 오락가락 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운전 기술이 안정적이지 않으면 국민은 멀미에 시달리게 된다.

정진황 사회부장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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