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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 '교육 불안' 파고드는 불법 개인과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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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 '교육 불안' 파고드는 불법 개인과외

입력
2015.08.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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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송도ㆍ세종시 등 학부모들

"인프라 열악" "학원은 시간 제한"

아파트에 터 잡은 기업형 과외 의존

강사 고용 불법… 무자격자 판치고

기숙생활 학생들 탈선 등 부작용

인천 송도에서 중ㆍ고생을 가르치는 학원장 정모씨는 최근 한 학부모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학부모가 얼마 전 아파트 1층을 빌려 운영하는 기업형 개인과외를 받고 있는 고교생 아들을 만나러 갔더니 과외 강사가 없는 틈을 타 아들과 한 여학생이 부적절한 행위를 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25일 “불법 과외로 인한 탈선 사례는 종종 들어봤지만 상황이 이 정도로 심각한 줄은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인천 송도와 세종시, 부산 해운대, 경남 창원 등 인구가 급속하게 유입되고 있는 신도시를 중심으로 불법 기업형 개인과외가 폭증하면서 학생들의 탈선이 늘어나고 무자격 강사가 판을 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각 시도 교육청이 몇 년째 단속에 나서고 있으나 불법 과외는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기업형으로 진화하면서 교육당국의 통제망을 교묘하게 피하고 있다.

기업형 개인과외는 아파트 한 채를 빌려 강사 여럿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식이다. 방학기간은 물론 학기 중에도 기숙형태로 운영되는 곳이 적지 않지만 엄연한 불법이다. ‘학원의 설립 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에는 개인과외 교습자는 강사를 채용하지 못하게 돼 있다. 그러나 기업형 과외방은 열악한 교육 인프라에 불안해 하는 신도시 학부모들의 심리를 파고 들어 우후죽순처럼 번지는 추세다. 1년 전 세종시로 이사 온 안모(45ㆍ여)씨는 “세종시 학생들은 주로 서울이나 대도시에서 전학을 오는데 인근 학교의 교육 수준이 확인되지 않아 부모나 학생 모두가 불안해 하고 있다”며 “학교 수업만으로 따라가기 힘들어 불법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기업형 과외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인천 영종도에 사는 고3 학부모 하모(48ㆍ여)씨는 “일반 학원의 경우 교습시간이 오후 10시로 제한돼 있고 학원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시간을 낭비할 바에는 차라리 한 자리에서 다 해주는 과외를 선호하게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남녀 학생들이 길게는 24시간 한 집에서 함께 있지만 제대로 된 생활지도를 받지 않아 탈선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다. 고교 2년생 김모(17)군은 “시험기간에는 간혹 밤샘도 하는데 과외 선생님들은 수업이 끝나면 각자 집으로 퇴근해 친구들끼리 밤을 지새곤 한다”고 말했다. 신상 확인에 대한 검증 절차가 없다는 점을 노려 학벌을 속이거나 성범죄 전력으로 학원계를 떠난 부적격 강사들이 강의에 나서는 사례도 적지 않다. 실제 최근 송도에서 ‘○○○영어’라는 상호까지 달고 120여명의 수강생을 가르치던 기업형 과외업체 운영자가 학력을 위조한 것으로 드러나 문을 닫기도 했다.

기업형 개인과외는 탈세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기업형 과외방은 일반 학원 수강료에 비해 최소 2배 이상 금액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불법인 만큼 현금만 받고 세금도 전혀 내지 않는다. 학부모 하씨는 “과목당 100만~200만원을 호가한다는 얘기를 듣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 등록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기업형 개인과외가 범람하게 된 것은 허술한 규제 탓이 크다. 현행법상 개인과외 교습자는 등록이 아닌 신고 대상인 데다 운영 자격이나 교습 시간에도 제한이 없다. 때문에 개인과외 교습자로 신고만 해놓고 속칭 ‘새끼 강사’들을 고용해 돈벌이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단속 역시 쉽지 않다. 워낙 음성적으로 강의가 이뤄지고 설령 교육청이 단속을 나가도 사법권이 없어 문을 안 열어 주면 뾰족한 수가 없다. 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신고제이다 보니 제보에 의존해 단속할 수밖에 없고, 경찰처럼 상시단속 체제를 갖추는 것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회에는 과외 교습자 주거지의 교습 가능 인원을 1명으로 제한하는 등 개인과외에 대한 법적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이 5건 발의돼 있으나 아직 계류 중이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개인 불법과외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어 조속히 관련 규제 장치가 마련된 법안들이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환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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