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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 결말 고심... 모두 만족할까?"

입력
2016.03.1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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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 포스터
‘시그널’ 포스터
tvN 드라마 '시그널'의 작가 김은희. 이정현 인턴기자
tvN 드라마 '시그널'의 작가 김은희. 이정현 인턴기자

박신양, 소지섭, 조진웅, 김혜수. 김은희(42)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서 죽인 주인공들이다. 가수 겸 배우 박유천이 주인공으로 나온 SBS ‘쓰리데이즈’(2014)를 제외하곤 ‘싸인’(2011), ‘유령’(2012), ‘시그널’(2016)에서 모두 주인공이 죽었다. 주인공 죽이기가 김 작가의 ‘전매 특허’란 농담까지 나올 정도다. “많은 분들이 너무 많이 죽인다고 하시는데, 개연성 때문에…. 근데 저도 해피엔딩 좋아해요.” 지난 9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난 김 작가가 쑥스러운 듯 웃었다.

다만 ‘시그널’의 ‘살생부’는 전작들과 조금은 다르다. 김혜수는 차 폭발 사고로 죽었다가 살아났다. 드라마는 ‘과거가 바뀌면 현재도 바뀐다’라는 주제로 굴러간다. 이 틀 안에서 과거의 이재한(조진웅)형사와 현재의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 박해영(이제훈)이 시간을 초월해 무전기로 소통하며 미제 사건을 해결한다. 이 과정을 통해 두 사람이 김혜수가 수사하다 죽은 사건의 진범을 잡아 사건의 방향을 틀어 김혜수가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극 초반에 죽었던 이 형사를 살려달라는 네티즌의 목소리가 뜨겁다. 정의로운 이 형사를 살려 드라마를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해달라는 바람이다. 김 작가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감독(김원석 PD)님과 정말 고민 끝에 결말을 정리했어요. 그런데 모두 만족할 좋은 결말일지는 모르겠어요.” 결말의 시청자 반응을 무척이나 걱정하는 그를 만나 ‘시그널’ 제작 뒷얘기를 들었다. ‘시그널’은 12일 종방한다.

-생각보다 반응이 뜨겁다. 소재가 무거워 시청률 걱정을 많이 했을 것 같은데. (‘시그널’은 지난 5일 11.1%(닐슨코리아)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2014년 방송된 tvN 드라마 ‘미생’의 최고시청률 8.3%를 웃도는 수치다.)

“목표는 3%였다. 처음엔 방송사에 시청률 크게 기대하지 마라고 했다. 그런데 1~2부를 찍고 나니 감독의 반응이 달라지더라. 정통 수사 장르물도 될 수(흥행)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 속에 사람이 살아있다며 한 소린데 그 때까지만 해도 난 그냥 넘겼다.”

-반 정도 사전 제작이라 주위 반응을 살폈을 거 같은데, 기억에 남는 반응은?

“솔직히 시청자 반응을 바로 확인하진 못한다. 악평이 무서워서. 한 번은 기사 댓글에 미제 사건 실제 유족 분인 듯한데 ‘찡하고 뭉클하게 봤다’는 내용을 봐 감사했다. 한편으론 옛 아픔을 다시 들춘 게 아닐까 죄송하기도 했고. 남편(‘라이터를 켜라’ 장항준 감독)은 ‘장 감독님 행복하시겠어요’란 댓글을 내게 보여주더라. 그 분(네티즌)말이 맞다. 남편이 내 명의의 신용카드를 쓰고 있으니. 돈을 쓰면 쓰는 대로 내 휴대폰에 사용 내용이 뜬다. 남편도 맞다더라.”

-무전기로 과거와 현재가 연결된다는 게 자칫하면 허황돼 보일 수도 있다.

“물론이다. 고민했던 지점이다. 논리적으론 설명 할 수도 없는 요소다. 태양 흑점 변화와 오로라를 통한 기상 이변으로 인한 연결로 풀 수도 없는 거고. 그래서 조진웅도 처음엔 무전기 때문에 출연을 고사했다. 말이 되냐고. 그래서 감독이 직접 찾아가 설명하고 캐스팅했다. 제작단계에서도 무전기를 빼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무전기 없이 ‘시그널’을 끌어갈 수 없었다. 무전기가 이 드라마에서 새로운 포인트잖나. 그리고 환상일 수 있지만 무전기를 통해 미제 사건 실제 유족들에 희망을 주고 싶었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건의 실체를 알려줄 수 있는 매개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무전이 이뤄지는 시간이 오후 11시23분으로 정해져 있다.

“이재한 형사가 죽는 시간이다.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죽은 그의 한을 무전이 시작되는 계기로 삼았다.”

-왜 미제 사건을 드라마 소재로 잡았나?

“수사물을 워낙 좋아하고 많이 하다 보니 예전부터 미제사건을 드라마로 한 번 다뤄야겠다고 생각해왔다. 신문의 정치·사회면을 볼 때 보도된 사건의 이유 등을 봤을 때 평범한 국민으로서 ‘이건 아닌 거 같은데’란 생각을 다들 한 번쯤은 해 봤을 거다.”

-실제 미제 사건을 끌어오는 데 부담은 없었나?

“컸다. 그래서 대부분 각색한 거다. 사건 명부터 범인 및 피해자 이름까지. 피해자 분들이 2차적으로 정신적 피해를 볼까 정말 조심스러워했다. 첫 회에 ‘김윤정 유괴 사건’(1997년 ‘박초롱 유괴사건’ 모티프)을 다뤘는데, 주위에서 빼란 얘기도 많이 들었다. 시청자들이 힘들어 해 채널 돌린다고. 그런데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유괴 사건이야 말로 미제 사건이 되면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룬 거다.”

-세월호 참사가 직접 언급되진 않았는데, 많은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보면서 세월호 유족의 아픔을 떠올리더라.(죽은 이재한 형사의 유골을 15년 만에 찾은 이 형사의 아버지가 “죽기 전에 제삿밥은 지어 먹일 수 있겠다”며 우는 장면이 방송됐을 때는, 시청자들이 “세월호 참사 유족 생각이 나서 같이 울었다”며 공감을 표했다.)

“세월호 사건도 하나의 미제 사건이잖나. 난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사건은 모두 미제 사건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시청자 분들도 세월호 사건도 미제 사건으로 보고, 그 슬픔과 위로를 드라마에서 찾는 게 아닐까 싶다. 꼭 세월호 사건이 아니더라도 삼풍백화점 붕괴나 대구 지하철 참사 등 시대를 관통하는 아픔을 우린 많이 지녔다. 그런데 과연 그 상처들이 제대로 치유됐을까란 생각을 하게 됐다. 다만, 너무 큰 미제 사건은 내 역량이 안 돼 다룰 엄두가 안 나더라.”(‘시그널’에서는 1987년 벌어진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 등이 언급됐지만, 실제로 이 사건 재수사 과정이 다뤄지진 않았다.)

-준비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것 같다.

“2년 걸렸다. 직접 경찰 강력계 광역수사대 등 찾아가 취재했다. 전 프로파일러 출신 배우 지망생이 큰 도움을 줬다. 2년이 드라마 준비하기 딱 좋은 기간인 것 같더라. 전작인 ‘유령’은 1년 반 정도 준비했는데, 사이버 수사 관련에 대해 너무 몰라 이야기를 펼치는 데 애를 먹었다. 난 트위터도 못할 정도로 컴맹이다. 이번에 제작 기간이 충분해 계속 추가 조사해가며 대본을 수정했다.”

-방송 되기 까지 진통도 많았다.(‘시그널’은 SBS 등 지상파에서 편성을 논의하다 무산돼 케이블채널인 tvN에 편성됐다.)

“편성이 어긋나 속이 편하진 않았다. 이렇게 좋게 끝을 내게 돼 다행일 뿐이다.”

-지상파 편성이 안 돼 여러 배우들이 손을 놓은 걸로 안다.

“여경인 차수현(김혜수)캐릭터 섭외가 어려웠다. 두 남자 형사가 극을 이끌어가는 걸로 생각해 분량 문제로 여러 여배우가 고사했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 생각하던 ‘1순위 김혜수’가 이뤄져 다행이라 생각했다. 김혜수만큼 카리스마 있게 여경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는 없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솔직히 안 될 줄 알았는데 시나리오 좋다며 분량 신경도 안 쓰고 출연해 줘 정말 고마웠다. 알고 보니 김혜수가 고등학교 1년 선배더라. 그리고 실제 강력계 여경을 만나보니 감성적인 분들도 여럿 있더라. 이 인간적인 면을 김혜수가 정말 잘 살려줬다. 김혜수와 조진웅의 옛 모습은 특히 보기 좋아 5부 이후 더 많이 집어 넣기도 했다. 둘이 경찰 홍보 사진을 찍고, 계단에서 조진웅이 김혜수를 위로하는 장면은 다 추가로 들어간 것이다.”

-그런 김혜수를 6회 때 죽였다.

“어쩔 수 없었다. 무전기가 희망의 상징이지만, 대가 없는 희망은 없잖나. 세상 사는 일이 다 그렇고. 그래서 그걸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이 주인공인 차수현을 죽이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김혜수가 9회부터 분량이 많아졌는데, 그 때 ‘괜찮아요. 6부에 죽었잖아요’라며 휴대폰 문자로 농담하더라.”

-이제훈은 초반에 연기력 논란이 일었다.

“이제훈이 맡은 박해영은 부패한 공권력으로 형을 잃은 분노에 찬 워낙 복잡한 캐릭터라 연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방송 초반 연기력 논란을 겪어 작가로서 오히려 미안했다.”

-오연아(빨간구두 살인범)와 한세규(대도 사건 범인)등 낯선 배우들의 범죄자 활약이 인상적이었다.

“오연아는 영화 ‘소수의견’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검사 역으로 나왔는데 정말 잘하더라. 한세규는 극에서와 달리 정말 여린 배우다. 회식 때 만나보니 극중 강간 장면 찍다 스트레스 받아 실신했다고 하더라. 정말 미안했다.”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채널에서 작품을 만들어 더 좋은 점은?

“방송 편성이 여유로워 좋더라. 지상파는 회마다 방송 분량이 딱 정해져 있는데, 케이블채널은 회 특성에 맞게 분량을 조금 더 늘릴 수 있고, 때론 뺄 수도 있다. 회마다 더 완성도 있게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제작 시스템도 물론 자유로웠고.”

-사전 제작으로 만들어 좋았던 점과 불편했던 점은?(16부작인 ‘시그널’은 방송 전 8회의 촬영이 이미 완료됐다. 마지막 회 대본도 이미 지난 1월 나왔다.)

“사전 제작을 해보니 이렇게 작업하는 게 맞는 것 같더라. 로맨틱 코미디 장르라면 배우들끼리 합을 봐야 해 사전 제작이 득이 될 수 만은 없지만, 수사물 같이 장르물은 장점이 훨씬 많았다. 빠트린 내용이 있으면 여유롭게 준비할 수도 있었고.”

- ‘시그널’ 뿐 아니라 ‘유령’에도 인주시가 범죄 도시로 나온다.

“범죄 관련 내용이라 실제 지명을 쓸 수 없어 가상의 도시를 만든 거다. 영화 ‘배트맨’의 고담시티처럼. 수사물을 하다 보니 하다못해 저수지 이름까지 다 새로 만들어야 해 어느 순간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더라. 인주시는 김은숙 작가한테 전화해서 지명 좀 가져다 쓰자고 해 붙인 이름이다(김은숙 작가는 ‘시티홀’에서 인주시란 지명을 썼다.). ‘시그널’ 속 장영철 의원 등 극중 이름은 그래서 평소 친분 있는 지인들 이름을 사용했다. ‘시그널’을 보면 버스 안내양 이름으로 정경순을 썼는데, 정 작가 ‘나는 왜 버스 안내양’이냐며 묻더라.”(장영철과 정경순은 MBC ‘기황후’ 를 함께 쓴 부부 드라마 작가다.)

-KBS2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쓴 김은숙 작가와 친하다고 들었다.

“나이도, 심지어 딸 아이 나이까지 같다. 2011년 SBS 시상식에 가서 친해졌다. 그 때 김은숙은 ‘시크릿가든’으로, 난 ‘싸인’으로 상을 받아 처음 만났다. 서로 직업이 비슷하다 보니 말이 잘 통했다. 내 남편이 감독이긴 하지만, 드라마 작가로서의 고충은 따로 있는 거니까. 4월엔 따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다만, 김은숙이 특정 사건이 터질 때 사랑을 찾는 반면, 난 그 안에서 누군가 죽으면 재미 있겠네란 생각을 하는 게 다르다.”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 에 출연하는 이제한(왼쪽부터)과 김혜수 그리고 조진웅. tvN 제공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 에 출연하는 이제한(왼쪽부터)과 김혜수 그리고 조진웅. tvN 제공

-수사물을 주로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긴장감 있는 얘기를 원래 좋아한다. 특히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미국드라마 ‘엑스파일’을 참 좋아했다. 로맨틱 코미디는 자신이 없다.”

-학생 때 운동권이었나?

“전혀. 대학생 때 정말 놀기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술 좋아하고. 그래서 대학동기들이 ‘네가 어떻게 드라마를 쓰냐’며 놀랄 정도니까. 남편 만나서 변한 것도 있다. 장 감독이 겉으로 보기엔 가벼워 보이는데, 정치·사회적 시선에 대해선 엄청 진지한 측면이 있다.”

-드라마 작가는 어떻게 꿈꿨나?

“남편 시나리오(미발표)를 컴퓨터로 타이핑하면서 이야기를 펼치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아 나도 한 번 해볼까’하며 내 얘기를 써보고 싶더라. 그렇게 예능 작가를 시작했고, 드라마까지 쓰게 된 거다.”

-요즘 장 감독과의 사이에서 최대 화두는?

“남편 시나리오다. 초고가 나왔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더라. 장르는 스릴러다.”

-‘위기일발 풍년빌라’때처럼 두 사람이 다시 드라마를 쓸 계획은 없나?

“절대 없다. 장 감독이 작가는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못하겠다더라.”

-생각해 둔 차기작은?

“아직은 없다. 또 수사물하지 않을까?”

-‘시그널’시즌2 요구가 많다.

“하고 싶다. 내 딸도 내 작품 중 유일하게 보는 게 ‘시그널’이다. 다만, 시즌제를 생각하고 기획한 게 아니라 완성도가 문제다. 시즌2를 제작해 원작보다 못하다는 얘기 듣긴 싫다. 고민을 많이 해 봐야 할 것 같다.”

-요즘 읽는 책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다. 요즘 소설은 통 손에 안 잡힌다. 대신 인문 서적이 끌린다. 특히 인류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다루는 내용에. 빌 브라이슨의 여행책도 좋아한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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