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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누가 잡든 ‘징벌적 손해배상’ 강화… 재계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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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누가 잡든 ‘징벌적 손해배상’ 강화… 재계 비상

입력
2017.04.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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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손해배상 한도 최대 3배

피해자 입은 손해 보전하는 수준

“배상액 너무 작아 실효성 없다”

대선 주자들 고강도 공약 내세워

“과도한 배상금 노린 줄소송” 우려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대폭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유력 대선 주자들이 모두 공정경쟁 확보와 중소기업 보호 차원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폭 넓게 시행하겠다고 공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와 전문가들은 대체로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대기업들에겐 비상이 걸렸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11일 ‘대선후보 강연회’에서 “재벌의 ‘갑질’이 더 이상 시장에 발 붙이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며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를 현행 3배에서 10배로 높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전날 경제사범 불법 행위의 ‘일벌백계’ 방안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꼽았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란 기업이 악의로 불법 행위를 저지른 경우 피해자에게 실제 끼친 손해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배상하도록 한 제도다. 막대한 금전적 ‘불이익’을 줘 불법행위의 재발을 막자는 취지다. 우리나라에는 2011년 3월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개정 때 처음 도입됐다. 개정안은 대기업(원청)이 중소기업(하청)의 기술을 가로채면 그에 따른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하게 했다. 이후 2013년 징벌적 배상 범위가 ‘납품단가 후려치기’, ‘부당 발주취소’ 등으로 확대됐다.

대선 주자들이 하나 같이 징벌적 손해배상제 강화를 외치고 나선 것은 현행 배상액 규모가 너무 작아 제도의 실효성이 없다는 목소리가 높기 때문이다. 더구나 법률상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는 ‘최대 3배’지만 실제 선고되는 배상 한도는 2배 수준도 안 되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징벌적 손해배상의 기준이 되는 ‘손해배상액’도 피해자가 주장하는 손해액에 비해 훨씬 낮게 인정되곤 한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워낙 손해배상액이 낮아 3배까지 배상토록 해도 피해자가 입은 손해를 겨우 보전하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며 “사실상 ‘징벌’의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점인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작 ‘3배’ 배상에 어떤 중소기업이 거래관계 중단은 물론 업계 내 ‘영구 퇴출’까지 각오하고 소송에 나서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이후 ‘성적표’도 기대 이하다. 김차동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지난 2011년 손해배상제 도입 후 관련 소송이 제기된 건은 지금까지 단 한 건에 불과하다. 하도급 거래질서 개선의 징후도 없다. 김 교수는 “제도 도입에도 ‘부당한 대금결정’이나 ‘기술자료 제공요구’ 등 각종 불공정 행위에 대한 감소 효과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이황 교수는 “배상한도를 대폭 높여야 가해기업이 불법행위로 기대할 수 있는 부당이익보다 적발에 따른 예상손실 규모가 커지게 돼 ‘억지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차기 정부에선 어떤 식으로든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강화될 공산이 크다. 현재 하도급법, 제조물 책임법 등 일부 개별 법률(7개)에만 도입된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대기업의 담합, 독점 등의 행위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해 억제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경제부처의 한 고위 관계자는 “피해업체인 중소기업의 증거수집능력을 강화하는 ‘디스커버리 제도’(재판 전 양측이 증거를 공개하고 조사하는 제도)도 같이 도입돼야 실효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재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실제 입은 손해만큼 배상한다는 ‘실손전보’의 원리를 채택한 우리나라의 대륙법 체계와는 맞지 않는다”며 “징벌적 손해배상 범위와 수준이 지나치게 확대되면 과도한 배상금을 노린 줄소송이 잇따르는 등 부작용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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