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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리뷰] 마지막 황녀 비운의 삶, 허진호표 멜로로 되살려

입력
2016.07.27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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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덕혜옹주'는 비련의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의 삶을 돌아본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덕혜옹주'는 비련의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의 삶을 돌아본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세 단어만으로도 비애가 풍긴다. 단편적 정보만으로도 정서가 빚어진다면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불리할 수밖에. 영화 ‘덕혜옹주’는 모두가 어느 정도 알 만한, 그러나 대개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역사 속 사연에 허구를 보탠다. 주인공에 관한 선입견이 만들어내는 영화에 대한 예단을 어떻게 극복하냐가 흥행의 관건이다. 장편 데뷔작 ‘8월의 크리스마스’(1997) 이후 멜로의 대가로 오래도록 불려 온 허진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손예진과 박해일이 주연을 맡았다. 관객들의 기대치를 높일 요소다. 27일 오후 서울 광진구 한 멀티플렉스에서 열린 언론시사회를 통해 첫 공개된 ‘덕혜옹주’를 한국일보 영화담당 기자들이 만났다.

영화는 신문사 간부 김장한(박해일)의 시선으로 서술된다. 고종의 막내딸이었던 덕혜옹주(손예진)는 고매한 신분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격변기가 만들어 낸 세파에 시달린다.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될지도 모를 덕혜옹주는 유배나 다름없는 일본 유학 길에 오르고, 오빠 영친왕(박수영) 부부 등과 함께 기약 없는 일본 생활을 한다.

일제 앞잡이 한택수(윤제문)의 윽박과 일제의 강요로 내선일체의 선전 도구로 악용되기도 하던 덕혜옹주 앞에 어린 시절 어른들이 백년가약을 맺어준 김장한이 나타난다. 김장한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일본군 장교이지만 일제 몰래 상하이 임시정부와 함께 영친왕과 덕혜옹주의 망명을 추진하는 독립투사다. 대한제국의 황녀로 당당히 살고 싶고, 원하는 사람과 사랑을 이루고 싶은 욕망은 덕혜옹주에게 거사를 감행토록 한다. 영화는 껍데기로 살아야 하는 운명에 맞서다 시대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비련의 여인이 된 덕혜옹주의 한 많은 삶을 127분 동안 비춘다. 3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 한국일보 영화담당 기자가 본 ‘덕혜옹주’

※★다섯 개 만점 기준, ☆는 반 개.

멜로 감성으로 돌아본 비련의 시대

시대극이 품기 마련인 화려한 볼거리에 치우치기보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에 집중한 작품이다. 늦둥이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고종과 덕혜옹주의 모습, 어머니 양귀인(박주미)의 안위를 위해 강제 유학을 받아들이는 덕혜와 어머니의 서글픈 사연이 도입부를 장식한다. 어린 시절부터 일본 생활을 하기까지 덕혜와 함께 했으나 한택수의 계략으로 강제 이별하게 된 궁녀 복순(라미란)과의 우정도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 망명 작전을 수행했다가 30년 만에 조우하는 장한과 독립투사 복동(정상훈)의 모습은 회한을 자아낸다.

인물들 사이의 관계 중에서 핵심은 역시 장한과 덕혜의 사연이다. 서로 사랑을 품고 있으면서도 연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기나긴 인연을 이어가는 두 사람의 서러운 감정이 영화를 지배한다. 사랑함에도 여러 환경의 제약을 넘지 못하고 고개를 떨궈야 했던, 허 감독 영화 속 주인공들을 떠올리게 한다. 요컨대 ‘덕혜옹주’는 비극적인 역사를 멜로의 감성으로 돌아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박해일과 손예진의 연기 앙상블이 인상적이다. 독립운동이라는 공적인 일과 사랑이라는 사적 감정 사이에서 머뭇거리며 애달픈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연기는 관객들의 심장을 아프게 한다. 순제작비 85억원을 들여 구현해낸 시대상도 쏠쏠한 볼거리다.(라제기 기자)

덕혜옹주의 정혼남 김장한(왼쪽)은 덕혜옹주와 영친왕의 망명을 추진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덕혜옹주의 정혼남 김장한(왼쪽)은 덕혜옹주와 영친왕의 망명을 추진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담담한 시선에 감정이입 힘들어

허진호 감독의 ‘덕혜옹주’는 역시 담담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호우시절’ 등에서 남녀의 심리 변화를 섬세하게 잡아냈던 감독답게 비련의 여인 ‘덕혜옹주’에도 담백한 시선을 유지한다. 감독은 일제에 의해 희생된 한 여인의 삶에 자신의 감정을 물들이지 않으려고 애쓴 듯하다.

그러나 ‘덕혜옹주’가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를 다룬 역사물이라는 점에서 감정이 폭발하는 클라이맥스가 없다는 점은 아쉽다. 일제에 의해 13세의 나이로 일본 유학을 떠났을 때도, 일본인과의 정략결혼을 강요 받을 때도, 영친왕의 망명작전에 휘말렸을 때도, 해방 후 이승만 정부에 의해 입국이 거부됐을 때도 덕혜옹주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지나치다 싶게 건조하다. 관객이 일제의 만행에 주체할 수 없이 고조된 감정을 쏟아내고 싶어도 그럴 만한 장면이 없다.

큰 기복 없이 흘러가는 영화는 덕혜옹주를 연기한 손예진보다 그녀를 지키며 독립군으로 열연한 박해일의 연기에 주목하게 한다. 독립투사에서 기자로 변신해 덕혜옹주를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려는 김장한의 애절한 상황만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마지막에 “옹주님” 하며 손예진을 바라보는 박해일의 한 마디가 큰 여운을 남기는 이유다.(강은영 기자)

처연하고 비극적인, 그러나 울림은 없다

모두가 지키려 했으나, 누구도 지키지 못했다. 역사의 격랑에 모두 떠밀려 가고, 홀로 외롭게 사그라지는 덕혜의 삶이 눈물 겹도록 처연하다. 덕혜가 마지막까지 부여잡고 있던 건, 조선의 마지막 황녀라는 자존심이 아닌, 존재로서의 정체성이다. 영화는 역사의 한 편린으로 박제된 덕혜의 삶을 조심스럽게 떼어내 온전한 복원을 시도한다. 덕분에 시대상과의 맥락은 약하지만 드라마는 더 강해졌다. 역사물보다는 휴먼스토리로 보는 게 더 타당해 보인다.

드라마에는 충분히 감화될 수 있다. 억지로 꾸며낸다 한들 이보다 더 비극일 순 없다. 측은하고 가엾다. 주름진 얼굴을 따스하게 쓰다듬어 주고 싶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뿐이다. 지금 이 시대에 왜 덕혜를 돌아봐야 하는지, 고민의 함량이 부족하다. 현재와 연결고리가 느슨한 탓에 극장 밖으로 나서면 드라마가 금세 힘을 잃는다. 기억해야 할 역사 속 인물을 조명했다는 사실에 만족하기엔 이 영화에 쏟아 부어진 것들이 너무 많다. 허진호 감독이라면 한 걸음은 더 전진했어야 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나무랄 데 없다. 손예진은 무력하면서도 강직한 덕혜 역에 최적의 캐스팅이다. 박해일은 영화가 설득해내지 못한 부분까지 연기로 극복한다. 절대 울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결국 무너진 건 궁녀 복순 역의 라미란 때문이다.(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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