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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세상 버리려던 50대 남성 구조한 파출소 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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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세상 버리려던 50대 남성 구조한 파출소 대원들

입력
2017.11.1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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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현동에서 4일 자살을 시도한 50대 남성을 구한 논현1파출소 소속 염승훈(왼쪽) 경장과 김지후 순경. 논현1파출소 제공.
논현동에서 4일 자살을 시도한 50대 남성을 구한 논현1파출소 소속 염승훈(왼쪽) 경장과 김지후 순경. 논현1파출소 제공.

“‘죽고 싶다’는 문자를 보낸 친구가 두 시간째 연락이 되지 않아요.”

4일 오후 5시30분쯤 서울 강남구 논현1파출소로 다급한 신고가 접수됐다. A(50)씨 인상착의와 논현동에 산다는 애매한 정보밖에 없었다. A씨가 실제 사는 곳을 찾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강남경찰서 실종수사팀과 파출소 공조로 A씨 휴대폰 위치 추적을 했으나 신호가 정확히 잡히지 않았다. 주민등록상 거주지를 찾아가니 “예전에 이사 갔다”고 한다. 20여분이 그렇게 지나갔다.

실종수사팀이 A씨의 사건 기록을 확인하면서 그의 실제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A씨가 운 좋게(?) 하루 전 강남서에 입건됐던 것. 그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실제 거주지를 말했다. 논현1파출소 염승훈(30) 경장과 김지후(32) 순경은 곧장 A씨 집으로 갔다. 집 앞 주차장엔 사건 기록에 나온 A씨 승용차가 주차돼있었다.

다음 문제는 비밀번호였다. A씨가 사는 다세대주택은 1층 현관에서 비밀번호를 입력해 출입하는 방식이었다. 비밀번호를 모르면 다른 주민이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 있네요.” 눈 밝은 염 경장이 출입문 구석에 적힌 숫자 몇 개를 찾아냈다. 배달원들이 쉽게 출입하기 위해 적어놓은 비밀번호였다.

A씨 집 앞에 다다르자 TV 소리는 들렸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경찰들은 뒤늦게 연락이 닿은 A씨 동거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비밀번호를 확인했다. 현관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굳게 닫힌 미닫이문. 연기는 보이지 않지만 탄내가 났다. A씨가 미닫이문 안쪽을 테이프로 밀봉하고 번개탄을 피운 것. 힘껏 미닫이 문을 열자 방안 가득 연기가 가득했다. 염 경장과 김 순경은 먼저 번개탄을 치우고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은 창문을 열었다. 연기가 걷히자 비로소 방 내부가 보였다. 빈 소주병들 사이로 A씨가 누워있었다.

염 경장과 김 순경은 A씨를 복도까지 끌어냈다. “괜찮으세요?” 어깨를 잡고 흔들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김 순경은 3년 전 경찰학교에서 배운 방법대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A씨가 “으윽” 소리를 내며 가늘게 눈을 떴다. 의식을 회복한 A씨는 오후 6시30분쯤 도착한 구급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A씨는 운수업 종사자로 전날 동거녀가 이별을 통보하자 상심해 자살을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두 경찰도 구조 과정에서 번개탄 연기를 마셨지만 이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김 순경은 “조금 안일하게 대처했더라면 A씨 생명이 위험했을지 모른다”며 “참 아찔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 긴장감이 한 생명을 구한 셈이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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