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강 기자

김주영 기자

등록 : 2018.03.18 09:20
수정 : 2018.03.18 20:27

영광에서 나락으로… 전직 대통령 5인의 카퍼레이드

[View&]퍼레이드 사진으로 본 전직 대통령 영욕의 역사

등록 : 2018.03.18 09:20
수정 : 2018.03.18 20:27

취임 직후 청와대로 향하며 카퍼레이드를 벌인 전직 대통령 중 5인이 임기 후 각종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명예롭지 못한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사진은 박근혜(왼쪽), 이명박 전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시작은 영광스러웠으나 끝은 명예롭지 못했다. 뇌물수수 등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전직 대통령의 행차를 보며 드는 생각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4일과 15일 서울 논현동 자택과 서초동 검찰청사를 오간 시간은 각각 10분이 채 안 됐다.시민들의 싸늘한 시선과 취재 차량의 열띤 추격 속에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진 전직 대통령 수송작전은 아이러니하게도 10년 전 환호와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청와대에 입성하던 그날의 축하 카퍼레이드를 떠올리게 한다.

2008년 2월 25일 의전차량에 올라선 그는 시민과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희망찬 새 시대를 약속했다. 하지만 권력의 정점에서 간여한 각종 불법과 비리 의혹이 뒤늦게 불거지면서 ‘줄행랑’ 같은 카퍼레이드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영광에서 나락을 향해 카퍼레이드를 벌인 전직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 외에 4명이나 더 있다. 5인의 전직 대통령 역사에 남긴 영욕의 카퍼레이드 장면들을 소환해 보았다.

1988년 2월 25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탄 승용차가 취임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수천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검찰의 소환 통보를 받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5년 10월 27일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노태우 전 대통령이 두 차례의 검찰 조사 후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 구치소로 향하는 검찰 승용차에 지친 표정으로 오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 노태우(13대) 대통령

1988년 2월 25일 헌정 사상 첫 직선제로 선출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취임식장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청와대까지 취임 카퍼레이드를 벌인 최초의 대통령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에 소환된 전직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도 안았다.

1995년 11월 수천억 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에 대해 눈물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노 전 대통령은 장남 재헌씨의 배웅을 받으며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을 출발했다. 서초구 대검찰청까지 이어진 전직 대통령의 침통한 카퍼레이드는 서대문과 서울역을 거쳐 용산역, 잠수교를 지나 21분 만에 마무리됐다. 그 후 한 차례 더 조사를 받고 구속 수감된 노 전 대통령은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검찰 승용차에 쓰러지듯 오르며 지친 눈을 감았다.

#2 전두환(11, 12대) 대통령

1981년 제12대 대통령에 취임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취임식을 열었다. 당시 취임 퍼레이드를 ‘하는’ 대신 시민과 학생이 동원된 퍼레이드를 ‘관람’만 한 그는 임기 중 여러 차례 카퍼레이드의 주인공으로 나섰다. 해외 순방을 오가는 길목마다 학생들을 세워 태극기를 흔들게 하고 꽃가루를 뿌리며 화려한 퍼레이드를 벌였다. 한국일보 DB콘텐츠부에서 보관 중인 사진 기록만 헤아려도 10차례가 넘는다.

그랬던 그가 자신의 생애 가장 치욕스러운 카퍼레이드를 벌인 것은 임기를 마친 지 9년 만인 1995년 12월 3일. 12ㆍ12 군사 반란,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무력진압 등 혐의로 검찰의 소환 통보를 받은 그는 즉시 반발,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검찰 수사관에 의해 안양 교도소로 압송되고 만다. 그가 ‘검찰 포토라인에 선 전직 대통령’ 명단에선 빠진 이유다. 검은색 ‘프린스’ 승용차 뒷좌석에서 수사관들 사이에 끼어 앉아 고속도로를 달린 4시간여 동안 그의 눈앞엔 과거 화려했던 카퍼레이드와 시민들의 환호가 어른거리지 않았을까?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임기 중 해외순방을 오가며 벌인 카퍼레이드 모습. 왼쪽은 1981년 2월 8일, 오른쪽은 1982년 9월 8일.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95년 12월 2일 검찰 소환에 불응,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가기 앞서 서울 연희동 자택 앞에서 이른바 ‘골목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골목 성명’을 발표한 바로 다음날 경남 합천에서 검찰 수사관에 의해 체포된 전 전 대통령이 검찰의 검은색 프린스 차량 뒷좌석에 앉아 안양 교도소로 압송되고 있다. 한국보도사진연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2월 25일 청와대로 향하는 의전 차량에 올라 시민들을 향해 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다(왼쪽). 그로부터 6년 후인 2009년 4월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버스에 오르기 전 두 손을 모으고 소감을 밝히고 있는 노 전 대통령. 연합뉴스 한국일보자료사진

2009년 4월 30일 노 전 대통령을 태운 대형버스가 지지자들의 노란 풍선 환송을 받으며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빠져나가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한 당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그의 구속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3 노무현(16대) 대통령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2월 청와대로 향하며 환호하는 시민들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으나 그 또한 임기 후 검찰 포토라인에 선 전직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2009년 4월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 소환 통보를 받은 그는 청와대 경호처가 제공한 의전용 대형 버스를 타고 김해 봉하마을에서 대검찰청까지 458㎞에 달하는 장거리 출두에 나섰다. 당시 노란 풍선을 든 노사모 회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출발한 전직 대통령의 검찰 행 카퍼레이드는 5시간 17분 만에 서초동 대검찰청에 도착하며 일단락됐지만 구속을 촉구하는 보수단체와 지지자들의 응원이 뒤엉킨 어수선한 현장을 지나쳐야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출두와 귀가 도중 들른 휴게소에서 단 한차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4 박근혜(18대) 대통령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2월 25일 취임 카퍼레이드를 벌일 당시만 해도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자 2대째 대통령에 오른 특별한 인물로 주목받았다. 더없이 영광스러웠던 그날의 카퍼레이드는 4년 후 헌정 사상 최초로 파면된 전직 대통령의 초라한 귀갓길로 변하고 말았다. 취임 1,476일 만인 2017년 3월 12일 밤 탄핵 당한 대통령이 떠나간 청와대는 별도의 환송행사도 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국정농단 사건의 피의자로 전락한 박 전 대통령은 그로부터 9일 후 취재진이 탄 차량과 오토바이의 추격을 받으며 검찰청사로 향했다. 박사모 등 태극기를 든 지지자들의 시끌벅적한 배웅을 받으며 시작된 그의 카퍼레이드는 불과 8분 만에 검찰청사에 도착하며 막을 내렸고, 국민들은 착잡한 심정을 억누르며 이를 지켜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3년 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취임식을 마친 후 카퍼레이드를 벌이며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된 박 전 대통령이 2017년 3월 12일 어둠이 짙게 깔린 청와대를 떠나 서울 삼성동 사저로 향하고 있다. 고영권기자

박 전 대통령이 2017년 3월 30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삼성동 사저를 나서며 지지자와 취재진을 응시하고 있다(왼쪽). 그에 앞선 21일 검찰에 출두하는 박 전 대통령의 차량을 언론사 취재진이 추격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8년 2월 25일 청와대로 입성하며 카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뇌물수수·횡령·조세포탈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 소환 조사를 위해 1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을 출발,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차에서 내리기 전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5 이명박(17대) 대통령

2008년 2월 25일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를 내세워 10년 만의 정권 교체를 이룬 이명박 전 대통령은 불황에 허덕여 온 국민들에게 한 가닥 희망이었다. 꾸준히 제기된 다스나 BBK 의혹은 취임 카퍼레이드에 묻혔고 실제로 많은 국민들이 그날의 그 미소를 믿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4일 이 전 대통령은 다섯 번째로 검찰 조사를 받는 전직 대통령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날 논현동 사저를 출발해 검찰청사로 향하는 4.8㎞ 거리의 짧은 카퍼레이드를 보며 국민들은 또다시 혀를 차야 했다. 경찰은 전직 대통령의 출두에 대비해 사저 주변에 240명, 검찰청사 주변에 800명의 경찰력을 배치했지만 극소수의 지지자를 제외하고 카퍼레이드에 손을 흔드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를 중심으로 아침 시간 차량 통제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만 가득했다. 검찰 조사에서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진 그의 카퍼레이드가 앞으로 몇 차례나 더 이어질지 주목된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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