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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컴 왓슨, 인공 지능이 만드는 또다른 산업혁명

입력
2014.08.0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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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왕 이기며 화려하게 등장

초당 100만권 빅데이터 분석

암치료 방법ㆍ요리법 제안 등, 컨설팅 프로그램 활용 가능

8조원 시장 신성장 동력 기대

미국 뉴욕시 맨해튼 57가에 위치한 IBM 디자인랩에서 리서치 과학자와 소프트웨어 개발자, 웹 디자이너 등 왓슨그룹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왓슨의 상용화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모습. IBM 제공
미국 뉴욕시 맨해튼 57가에 위치한 IBM 디자인랩에서 리서치 과학자와 소프트웨어 개발자, 웹 디자이너 등 왓슨그룹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왓슨의 상용화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모습. IBM 제공
숫자로 보는 IBM의 CAMS(2013년 기준) CAMS: 클라우드ㆍ빅데이터 분석ㆍ모바일ㆍ소셜비즈니스
숫자로 보는 IBM의 CAMS(2013년 기준) CAMS: 클라우드ㆍ빅데이터 분석ㆍ모바일ㆍ소셜비즈니스

2004년 여름 미국 뉴욕 맨하튼 업 타운에 위치한 유명한 한 선술집. IBM 수뇌부는 저녁 만찬을 마친 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한 쪽 끝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TV를 시청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미국 최고 인기 TV 퀴즈 쇼인 ‘제퍼디’ 에서 켄 제닝스가 또 한번 승리를 거두며 역사를 만드는 순간이었다. 제닝스는 무려 74번 연속 최장기간 우승을 거두며 ‘지식의 수호자’라는 잡학 전문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그 순간 누군가가 목소리를 높였다. “바로 저 것이야 !” 인간 언어로 던지는 질문을 알아 듣고, 스스로 생각하며 학습해 몇 초 안에 답을 찾아 말로 답하는, 인간을 닮은 IBM의 인공지능 슈퍼 컴퓨터 개발 아이디어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IBM은 이듬해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갔다. 그리고 5년이 지나 제닝스는 IBM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왓슨이라는 슈퍼컴퓨터를 만들어 당신을 이기고 싶습니다.” 제닝스는 컴퓨터와 대결을 흔쾌히 수락했고, IBM 창사 100주년을 맞은 2011년 2월 ‘제퍼디’ 쇼에서 왓슨과 대결을 벌였다. 결과는 제닝스의 참패.

왓슨은 ▦하드웨어의 빠른 계산능력 ▦'제퍼디' 문제를 알아듣고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한 최적의 알고리즘을 담은 '딥(Deep)QA'라는 소프트웨어 ▦1초에 책 100만권 분량의 빅데이터를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결합된 결과물이었다. 현재 왓슨은 IBM의 가장 중요한 신성장동력으로 발전을 거듭하며, 이젠 일선 산업 현장과 생활 속까지 투입되고 있다. IBM의 비즈니스 모델 역시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음은 물론이다.

왜 왓슨 인가

“IBM은 103년 역사에서 중요한 혁신이 필요한 순간마다 연관부서를 하나로 통합하는 ‘그룹’을 만들어왔다. 1960년대 메인 프레임에 이어 1981년 개인용 PC 출시, 90년대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를 인수해 글로벌 컨설팅서비스에 집중할 때도 그랬다. 우리는 이제 또 한번의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 바로 오늘 그 네 번째 순간인 왓슨그룹의 출범은 IBM 역사뿐 아니라 테크놀로지의 역사에서도 아주 중요한 변화의 순간이다.”(2014년1월10일 버지니아 로메티 IBM 회장)

IBM은 올해 초 왓슨을 핵심사업으로 선정하고 새로운 서비스와 솔루션을 만들기 위해 무려 1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하면서, 이를 위한 전담조직 왓슨그룹을 출범시켰다.

IBM은 왜 왓슨에 큰 '베팅'을 했을까. 지난해 IBM의 내부조사에서 글로벌 CEO들은 앞으로 3~5년내 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요인으로 '기술’을 꼽았다. 지난 10년간은 ‘시장 환경’이 가장 큰 요인이었지만, 이젠 미래 발전이 기술에 달려 있다는 판단이었다. 로메티 회장은 왓슨과 같은 최첨단 기술의 활용이야말로 IBM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왓슨 그 자체보다도 인지컴퓨팅 기술을 통한 새로운 소프트웨어, 새로운 서비스, 새로운 앱 등 상용화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IBM이 애플과 모바일 관련 기술 파트너십을 체결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IBM은 빅데이터를 이용한 인지컴퓨팅 기술을 모바일에 적용해 상업화에 고삐를 죄고 있다. 린다 샌포드 IBM 혁신 담당 수석부회장은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왓슨은 IBM 100년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의 하나로, 또 다른 변신을 위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그린 필드(미개척 분야)”라고 말했다.

지금 왓슨 연구소에선...

지난달 23일 오전 미국 뉴욕 맨하튼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 북동쪽으로 달려 요크타운 하이츠에 위치한 '왓슨 연구소'에 도착했다. IBM을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1920년대 CEO 토마스 J. 왓슨의 이름을 따 1961년에 설립한 이 연구소는 전 세계 12개의 리서치센터의 본사 역할을 한다. 올 초 로메티 회장이 발표한 3대 핵심기술인 ▦데이터 ▦클라우드 ▦소셜 비즈니스(참여ㆍ연계 시스템)를 중심으로 다양한 연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IBM은 이들 기술과 관련한 시장 규모가 2017년 83억달러(8조5,265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IBM은 이날 국내 언론사로는 최초로 한국일보에‘씽크 랩(Think Lab)’을 공개했다. 왓슨의 인지 컴퓨팅과 클라우딩 컴퓨팅, 빅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의료와 금융, 유통 등 일선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솔루션 연구가 진행중인 '비밀창고'로, 지난 5월 문을 열었다.

약 600평 규모의 넓은 실험실의 첫 번째 연구실에는 왓슨의 원형이 '제퍼디'에 등장한 모습 그대로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현재 왓슨의 크기는 대형 피자상자 4개 크기로 줄어들었고, 대신 성능은 25배나 향상됐다.

이어진 긴 타원형 모형의 탁 트인 홀에선 왓슨의 기술력으로 설계된 의학과 유통, 고객 서비스 등 각종 신기술 솔루션 시스템들이 구현되고 있었다. 제이 머독 IBM 산업 솔루션 연구소장은“이곳에선 왓슨의 무한한 잠재력을 활용해 각종 기업들이 원하는 맞춤식 산업 솔루션을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며 “왓슨은 증기 기관차나 컴퓨터 발명처럼 또 한번의 산업혁명을 불러 일으킬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했다.

'씽크랩' 중앙에 설치된‘혁신을 위한 우주(universe for innovation)’라는 실험실에 들어서자 ‘제퍼디’등장 이래 지난 3년간 이뤄져 온 왓슨 컴퓨터의 진화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대형 LED 스크린에는 100여 개의 낯익은 주제어 들이 빼곡히 나타났다. 현재 왓슨 연구소에서 진행중인 모든 연구 내용들을 산업ㆍ 테마별로 정리한 리서치 목록이었다. 테마 별로 에너지, 생물학, 컴퓨터과학, 보안, 인지컴퓨팅 등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주제어들이 나타났다. 머독 소장이 이를 산업별 카테고리로 재배열하자 재생에너지, 소비재, 금융, 교육, 자동차, 의학, 법률, 보험, 건설, 유통, 여행, 통신, 고객 서비스 등 다양한 주제어들이 등장했다.

그는 기자에게 하나의 주제어를 선택할 것을 제안했다. 기자가 ‘고객서비스’를 선택하자 기업들과 현재 공동으로 연구 개발중인 10여 개에 달하는 다양한 리서치 프로젝트 파일이 나타났다. 그는 해당 기업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최근 개발중인 심리학 프로파일 프로젝트‘시스템 U(당신)’를 소개했다. 정치가인 힐러리 클린턴에서부터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돌 스타에 이르기까지 주요 인사들의 트윗터와 페이스북 등의 데이터와 관련 뉴스에 포함된 개인 신상내용에 대한 모든 데이터가 그 속에 담겨 있었다.

왓슨은 이를 근거로 특정 인사의 어투와 선호 표현양식을 분석해 성격과 특징 등 개인에 대한 각종 정보가 포함된 심리 프로파일을 만들어 그에게 어떤 식으로 접근해 소통하는 것이 바람직한 지 그 방향을 제시했다. 인공지능을 넘어 상대방 마음까지 읽는 것이었다. 머독 소장은 “특정 고객과 기업CEO 등에 대한 심리 프로파일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다면 고객서비스나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왓슨의 논쟁(debate) 프로젝트도 눈길을 끌었다. ‘바이오 연료 보조금’이나‘우주 식민화’ 등 미국에서 뜨거운 논쟁거리인 정치 경제 과학분야의 각종 쟁점 사안들을 왓슨은 찬성(pro)과 반대(con)의 입장에서 각각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그 이유와 근거를 제시하는 치밀한 논리성까지 보였다. 이는 기업이 다른 기업을 인수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와 기회, 장단점 등을 찬성과 반대의 입장에서 분석하고, 그 근거를 제시해 기업들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을 주는 컨설팅 프로그램으로 활용된다.

왓슨은 지난해부터 미국 텍사스 의과대학 MD앤더슨 암센터 병원과 뉴욕의 메모리얼 슬론캐터링 암센터 등에서 암 진단과 치료 부문에 도입돼 이용되고 있다. 2,000만 페이지 분량의 암 정보를 비롯해 임상결과와 최신 논문들을 데이터베이스로 활용해 의사가 작성한 환자의 임상정보와 병력, 테스트 정보 등을 분석해 최적의 처방과 치료방법을 의사에게 제안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왓슨이 내놓은 환자에 대한 소견자료는 보험사에도 유용한 정보로 활용되고 있다.

왓슨은 금융분야에서도 이미 맹활약하고 있다. 호주의 ANZ은행과 CLSA증권 등에서 금융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고객의 투자선호도 조사, 투자 종목 제안 등 금융부문 자문역을 맡고 있다. 또 IBM 자체와 유통부문에선 콜센터 상담원의 업무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몇 초 내에 방대한 자료를 분석해 고객문의에 최적의 답을 제시해 줄 정도다.

데이비드 부캐넌 왓슨연구소 인지과학담당 연구원은 “언어는 같은 단어라도 문장이나 구체적인 컨텍스트 속에서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가 있는데 이를 구별하고, 의학이나 금융 등 특정분야에 대한 고도화되고 폭증하는 정보 중에서 원하는 해결책을 찾는다”며 "다만 인간만이 느끼는 상식을 이해해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데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높다”고 지적했다.

버지니아 로메티 IBM 회장
버지니아 로메티 IBM 회장

일상 속으로 들어온 왓슨

왓슨은 일상 생활 속으로도 속속 진입하고 있다. 왓슨은 세계적 요리 전문 잡지인 본아뻬띠(Bon Appetit)와 공동으로 ‘본아뻬띠와 함께하는 왓슨 요리사’ 앱을 지난달 출시했다. 왓슨의 기술력과 본아뻬띠의 9,000여 레시피 및 요리 지식이 결합된 이 앱은 일반 가정의 요리사들이 지금까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요리법을 만들게 도와준다.

기자도 IBM이 제공한 태블릿 앱을 통해 시연에 나섰다. 먼저 원하는 음식을 스테이크(고기)로 지정하고 다양한 요리 가운데 케밥을 선택했다. 그러자 어떤 스타일의 스테이크와 케밥를 원하는 지 물었다. 코리안 바비큐(갈비)라고 입력했더니 1초 만에 100개의 갈비 요리법이 나왔다. 한국 전통 갈비요리 맛에 맞게 마늘과 간장, 생강 등 양념의 다양한 분포를 알려주는 10개의 요리법과 민트와 타이, 후추 등 상상해보지 못한 이국적인 재료가 첨가된 90여 가지의 새로운 퓨전 갈비 요리법을 소개했다. 제레미 하지 IBM 디자인랩 왓슨 고객경험 책임자는 “최근엔 요리 프로젝트에 이어 신약 제조 프로젝트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며 “왓슨이 인식할 수 있는 언어도 현재 영어에서 일본어로 확장하고, 다른 나라의 언어도 추가하는 등 활용 분야를 더 넓혀갈 것”이라고 말했다.

왓슨그룹은 오는 10월 뉴욕의 실리콘벨리로 통하는 빌리지 근처 이스트앨리에 둥지를 트고 ‘왓슨 생태계’ 만들기에 나선다. 이곳에선 IBM 리서치 과학자와 소프트웨어 개발자, 웹 디자이너 등 왓슨그룹 구성원들이 벤처 개발ㆍ투자자 및 기업들과 협업을 통해 각종 제품ㆍ서비스 개발에 참여하게 된다. 샌포드 IBM 부회장은 “기술의 변화 속도는 너무 빠르고 이를 예측하기엔 어렵지만 결국 데이터와 클라우드, 소셜 비즈니스가 동시에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왓슨의 발전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며 “ 메인프레임을 시작으로 PC, 글로벌 솔루션서비스로 이어져온 IBM 비즈니스 모델 혁신의 중심에 왓슨이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요크타운 하잇츠ㆍ아몽크ㆍ맨하튼 (미 뉴욕주)=장학만 선임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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