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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출판사 첫 책] ‘바보들의 행복한 유언’(2009)

입력
2016.03.2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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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청탁을 받은 날, 우연의 일치인지 회사에 작은 경사가 있었다. “대표님, 저희 ISBN 100개 모두 썼어요. 기분 참 묘하네요.”

편집장이 벅찬 표정으로 말을 건넸고 나 또한 그러했다(편집장은 내가 회사를 창업했던 2009년 당시 우리 회사의 유일한 직원이었고, 지금껏 회사의 기둥 역할을 잘해주고 있다). 국제표준도서번호인 ISBN은 신규 등록한 출판사에 우선 10개의 번호만 부여한다. 그 번호를 모두 사용하면 100개의 번호가 다시 나오는데, 우리 회사가 8년 동안 110개의 번호를 단 책을 펴냈다는 사실은 의미가 무척 컸다.

대형 출판사의 편집실장으로 일했던 나는 그곳에서 정년까지 일하며 아들을 공부시킬 생각이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는 일로 퇴사를 결심했고, 단 돈 2,000만원을 가지고 창업을 했다. 억 단위의 자본금과 최소 20개의 기획 아이템을 갖추어야 망하지 않는다는 출판계 ‘설’이 무색하게 ‘빈약한 창업 자금’과 ‘기획 아이템 전무’가 나의 현실이었다. 자신감인지 무모함인지 사업자 등록을 하고 편집자를 뽑고 바로 광화문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차렸다. 매일 둘이서 기획 회의를 하고, 이런저런 아이템을 고민하는 사이 시간은 잘도 흘렀다. 이렇게 한 달이 가버리면 월세와 월급으로 자본금의 절반이 훌쩍 빠질 게 뻔했다.

그때 전 직장을 다니며 틈틈이 써두었던 원고가 생각났다. 내 인생의 화두 중 하나가 있었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가. 잘 산 사람은 삶의 마지막에 어떠한 말을 남기게 될까. 한 사람의 유언은 그의 삶 전체를 말하는 게 아닐까. 마음속에 미리 새긴 유언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지 않을까. 그 화두를 담아 3년 이상 기획하고 자료를 모으고 글을 써 완성된 원고였다. 그리고 모 출판사와 계약을 앞둔 시점이었다. 넌지시 편집자에게 그 원고를 보여주었다. 매의 눈으로 원고 검토를 마친 직원은 긍정적인 답을 주었고, 바로 편집 작업이 시작됐다.

그렇게 우리 출판사의 첫 책 ‘바보들의 행복한 유언’이 세상에 나왔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유언을 남긴 고 김수환 추기경과 “돈은 비료와 같아서 여기저기 뿌려줘야 한다”며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브룩 애스터 등 국내외 38인의 글을 실었다. 그리고 책 나오기 불과 한 달 전에 먼 길 떠나신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말씀,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를 실었다. 가시는 마지막 길에서도 상대를 원망치 않고 끌어안은 마음, 진정으로 용서하고 관용을 베푼 깊은 마음, 그리하여 스스로 떳떳함을 보이신 그 삶을 담았다.

다행스럽게도 책이 방송과 신문에 소개되었다. 읽으신 분들의 따뜻한 호응을 느낄 수 있었다. 작지만 나름 큰 성공이라 자부했다. 그렇게 힘과 용기를 얻어 두 번째, 세 번째 책을 냈고 8년 차 출판사가 되었다.

이 달 말 북로그컴퍼니에서 111번째 번호를 단 책이 나올 예정이다. 그저, 한 권 한 권 기획과 출간에만 정신을 쏟았을 뿐인데 돌아보니 직원도 8명으로 늘었고, 제법 견실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감사할 일이다. ‘우리 출판사’의 주인이 되어 일해 준 직원들과 조촐한 축하 자리를 마련해야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자식한테 보여주기에 부끄러운 책은 만들지 않는다는 내 마음속 ‘유언’을 지키는 출판인의 마음을 잊지 않으련다.

김정민 북로그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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