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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부터 잠자리까지 평균 61일.. “性은 즐기는 것”

입력
2016.03.1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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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인간관계 익숙한 젊은이들

성관계 상대 수 > 연애 상대 수

“혼전순결 지켜야” 대답 5% 그쳐

성생활 공공연히 드러내는 세태

“불편한 기색 보이면 눈총받아”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최모(32)씨는 금요일만 되면 회사 동료들과 한껏 멋을 내고 서울 청담동과 이태원 일대의 고급 바를 찾는다. 그는 선남선녀가 모인다는 소문이 자자한 이곳에서 마음에 드는 여성들을 만나 벌써 여러 명과 잠자리를 가졌다. 최씨는 16일 “아직 결혼 전인데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문제 될 건 없지 않느냐”며 “여성들도 연애하기 보다 부담 없이 만나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곳에선 결혼한 이들도 종종 ‘썸’(남녀가 밀고 당기면서 정식으로 사귈 지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을 탈 상대를 찾곤 한다”고 귀띔했다.

한국 사회의 연애와 성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담론 중 하나다. 그러나 2030세대의 성에 대한 생각은 거침없다. 본보는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을 활용, 지난달 20일부터 2주간 2030세대 380명을 대상으로 성에 대한 생각과 경험에 대한 설문을 벌였다. 그 결과 2030세대들의 대부분은 “즐길 건 즐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설문 응답자는 남성 195명, 여성 185명이었고, 연령별로 보면 20대가 235명, 30대는 145명이었다.

얕고 넓은 만남, 나이 들수록 개방적

사귀는 사람과만 잠자리를 갖는다는 발상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았다. 설문에 응한 2030세대의 평균 연애 상대 수는 4.2명이었지만 성 관계를 맺은 이는 이보다 1명 이상 많은 5.5명이었다. ‘셀 수 없다’는 응답도 눈에 띄었다.

나이가 들수록 이 같은 격차는 더 컸다. 20대의 연애 상대 수와 성 관계를 가진 이는 각각 3.9명과 4.1명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30대는 연애 상대 수가 4.7명인데 비해 성 관계를 가진 이는 7.8명으로 3명 이나 더 많았다. 지금까지 8명과 연애를 했다고 밝힌 한 30대 남성은 무려 80명과 성 관계를 가졌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직장을 다니며 짧은 시간 얕은 관계를 맺는 일에 익숙해지면서 성에 대한 관념이 희미해진 것으로 보인다. 직장인 김모(31)씨는 15번의 연애와 23명과의 잠자리를 가졌다. 그는 “취업을 하면서 경제력을 갖추게 된 데가 화술이나 이성과의 ‘밀당’ 도 이전보다 능숙해졌다”며 “클럽이나 바, 기타 모임 등으로 여러 이성을 만날 수 있는데 굳이 연애를 해야 하는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30대의 연애 속도 역시 20대보다 빨랐다. 첫 만남부터 성 관계를 갖기까지 기간은 평균 60.9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 보면 20대는 평균 66일이었으나 30대는 이보다 2주 가량 짧은 52일로 나타났다.

“썸이면 어떤가”

성 관계를 맺기 데는 시간이나 관계의 깊이보다는 당시의 느낌이 중시됐다. ‘하룻밤(원나잇) 경험이 있는가’에 대한 답으로는 10명 중 3명(29.1%)이 ‘그렇다’ 고 답했다. 원나잇 상대를 만난 곳으로는 ‘술집, 클럽 등에서의 즉석만남’이 56.7%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미팅이나 소개팅 등 지인이 중간에 있어도 원나잇을 했다는 답변도 16.7%나 됐다. 채팅 앱이나 온라인 커뮤니티는 세번째(10%)였다.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28)씨는 “미팅이나 즉석만남 등의 자리는 어차피 서로 가볍게 놀기 위해 만난다고 생각한다”며 “결국 오래 볼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해 평소보다 좀 더 개방적으로 행동하게 된다”고 말했다. 정당하게 성 욕구를 표현하는 자유로운 태도도 확인됐다. ‘왜 원나잇을 했는가’라는 질문에서 ‘애인이 없고 성인으로서 즐길 수 있으므로’가 58.9%로 1위를 차지했다. ‘당시 성적 욕구를 참을 수 없어서’(17.8%)가 그 뒤를 이었다.

애인은 아니지만 미묘한 감정선이 오가는 ‘썸’ 단계에서도 스스럼없이 성적 행동을 표출하기도 했다. ‘썸 단계에서 어디까지 스킨십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포옹’이라고 응답한 이가 21.8%로 가장 많았으나 잠자리(21.6%)도 큰 차이가 없이 수위를 다퉜다. 키스가 18.9%로 3위였다. 이 같은 개방적인 사고 속에 이제 혼전순결은 진부한 담론이 됐다. 응답자의 오직 5.2%(15명)만이 ‘혼전 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답했다. 대학생 김모(22ㆍ여)씨는 사귀었던 6명의 남성 외에 채팅앱 등으로 3명을 만나 모두 한 달 내 관계를 가졌다. 김씨는 “양쪽 모두 동의한다면 만난 당일에도 관계를 갖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다”며 “성적 결정은 엄연히 자기 몫인데 굳이 사회에서 비판적으로 볼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에 대한 개방성을 넘어 도덕적 일탈도 발견됐다. ‘애인이 있지만 다른 상대와 성관계를 가진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30.3%(115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상대를 만난 곳으로는 ‘직장, 학교 등 동료 모임’이 35.7%로 가장 많았다. 2위는 ‘술집, 클럽 등에서의 즉석만남’이었다.

‘쿨함’이 불편한 사람들

물론 이 같은 자유로운 성 담론이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개방적인 성생활이 ‘쿨함’(멋짐)으로 여겨지는 사회 분위기가 불편하다. 홀로 간직하고 싶은 경험을 드러낼 것을 은연 중에 강요하는 것도 폭력으로 느껴질 수 있다. 직장인 김모(32)씨는 “아무렇지 않게 애인이나 클럽에서 만난 이성과의 잠자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 ‘선비’소리를 듣게 된다”며 “소중한 경험을 남과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을 뿐인데 일부러 숨긴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이들도 타인의 성 생활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대학생 박모(25ㆍ여)씨는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친구들의 성 생활에 대해 지적하지는 않는다”며 “그렇지만 내가 만날 이성은 설령 개방적일지라도 내게는 드러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2030세대들은 자신의 자유로운 성 의식을 드러내면서도 한국 사회보다 자신의 성적 개방도가 좀 더 보수적이라고 여겼다. ‘자신의 개방성에 스스로 몇 점을 주겠냐(10점 만점ㆍ높을수록 개방적)’는 질문의 답은 평균 6.3점이었으나 사회의 개방성은 6.8점으로 나타났다. 또 남성은 자신의 개방성을 6.6점으로 평가했으나 여성은 5.9점으로 다소 차이를 보였다. 이상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1980년대와 90년대 본격적으로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한 주장이 나오던 시기에 태어난 2030세대들은 개방적인 성적 행동을 보여왔다”며 “하지만 동시에 과거부터 있던‘정조’라는 사회적 통념에 사로잡혀 스스로 자신을 보수적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준호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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