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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의 원근법] 체르노빌, 후쿠시마, 아이들의 미래

입력
2016.03.10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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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후 첫해에... 우리 마을에 참새가 사라졌어요. 여기저기에서 뒹굴었어요. 정원에서, 도로 위에서. 참새를 나뭇잎과 함께 컨테이너에 싣고 갔어요. 그 해에는 나뭇잎에 방사선이 있어서 못 태우게 했어요. 나뭇잎을 묻었어요. 그런데 2년 후에 참새들이 다시 나타났어요. 너무 신이 나 서로 자랑했어요. ‘나 어제 참새 봤어. 돌아온 거야.’”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벨라루스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에 나오는 ‘어린이 합창’의 한 대목이다. 내가 체르노빌 참사를 지켜본 것은 1985년 독일로 유학 간 이듬해 4월이었다. 참사가 일어나자 동유럽에서 국경을 넘어 독일로 들어오던 채소 수입이 금지됐다.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이들은 밖에 나가 놀 수 없었다. 참사는 내게 생태학을 공부하게 했고, 생태사회학 논문을 더러 쓰게 만들었다.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알렉시예비치가 10년 넘게 체르노빌 참사를 겪은 사람들과 인터뷰해 고통스럽게 쓴 책이다. 집필 과정에서 작가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쓰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작가의 ‘독백적 인터뷰’를 보면, “체르노빌에서는 ‘모든 것 후’의 삶이 더 기억에 남는다. 사람 없는 물건, 사람 없는 풍경… 목적지 없는 길, 목적지 없는 전선… 또 생각해 보면, 이것은 과거일까, 미래일까?” 책의 부제는 ‘미래의 연대기’다.

이 칼럼을 읽는 독자들은 눈치 챘을 것이다. 40년 전에 일어난 원전 참사를 내가 왜 이야기하는지 말이다. 오늘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참사가 일어난 지 5년이 되는 날이다. 2011년 오늘, 티브이를 통해 본 충격이 여전히 생생하다. 화면 안에 펼쳐진 거대한 쓰나미, 끔찍한 원전 폭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삶의 터전은 극장 안에서 보는 재난 영화가 아니라 바로 이웃 나라에서 방금 일어난 현실이었다.

5년이 지난 현재, 대지진과 쓰나미, 원전 폭발이 가져온 결과는 참혹했다. 1만6,000명에 가까운 사망자, 2,500명이 넘는 행방불명자, 47만명에 달하는 피난 주민은 이 복합 재앙이 기록한 통계 수치다. 그리고 원전 참사로 대피했다가 질병이나 건강 악화로 사망한 사람은 1,3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들이 있는 인근 지역은 더 이상 살 수 없는 땅이 됐고, 적지 않은 이들이 이승에선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 됐다.

후쿠시마 참사가 안겨준 교훈은 분명하다. 독일은 탈핵의 길로 나아갔고, 미국은 재생에너지 개발에 주력해 왔다. 멀지 않은 대만은 거의 완공된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중단했다. 문제는 우리나라다. 2011년 당시 21기였던 핵발전소는 시험 가동 중인 신고리 3호기까지 포함하면 현재 25기로 늘어났다. 2027년까지는 10기가 추가로 건립될 예정이다.

후쿠시마 참사 이후 원전에 대한 토론은 계속돼 왔다. 한편에선 원전의 효율성을 강조하고 다른 한편에선 그 위험성을 부각시켰다. 선거 때마다 탈핵이 쟁점을 이뤄 왔지만 정부 정책은 원전 확대에 주력해 왔다. 삼척과 영덕에선 주민들이 주민투표를 통해 핵발전소 유치 반대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역 여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원전 불감증이다. 후쿠시마 참사 이후 원전의 안전성을 높였다고는 하지만 원전이 주는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순 없다. 대안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핵발전소를 서서히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점차 확대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길은 여전히 열려 있다.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원전 참사를 통제할 수 있다는 인간의 오만이며, 이 오만이 가져올 지도 모를 재앙이다. 그 때는 시간이 너무 늦다.

‘체르노빌의 목소리’의 ‘어린이 합창’에 나오는 한 대목을 다시 인용한다. “의사 선생님께서 그러는데요, 우리 아빠가 체르노빌에서 일해서 내가 아픈 거래요. 나는 아빠가 갔다 온 다음에 태어났는데도요. 그래도 난 아빠가 아주 좋아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원전이라는 이 기관차로부터 이제는 내려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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