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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결혼 풍습…부신랑ㆍ부신부를 아시나요

입력
2017.01.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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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ㆍ신부 비서로서 궂은 일 “잘해야 본전, 욕 안 들으면 다행”

‘겹부조’에 3일 잔치 등 독특한 문화도 남아 있어

제주에서 촬영한 신혼부부들의 웨딩사진. 비바소울스튜디오 제공.
제주에서 촬영한 신혼부부들의 웨딩사진. 비바소울스튜디오 제공.

부신랑, 부신부, 1호차, 3일 잔치. 생소한 단어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이들 단어만큼 제주에는 독특한 결혼 풍습이 있다.

부신랑과 부신부는 1980년대를 전후해 나타난 결혼 풍속의 산물이다. 각각 신랑과 신부가 직접 뽑은, 그들의 ‘절친’ 중 한 명이다. 당사자들이 결혼식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온갖 궂은 일을 맡는다. 특히 부신랑은 신랑을 대신해 결혼 일정의 총괄적 진행을 맡는다. 워낙 큰일이라 사소한 실수가 뒤따르기 쉽다. 잘해야 본전, 욕만 먹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우선 결혼식 전날 신랑 친구들이 모여 놀 수 있도록 예식장이나 신랑 집 근처에 ‘여관방’을 잡는다. 밤새 즐길 수 있도록 야식과 술을 제공하고 다음날 결혼식에 지장이 없도록 신랑 대신 술을 마시는 흑기사 역할까지 맡는다.

예식 당일 신랑ㆍ신부가 타는 ‘1호차’를 장식하는 것은 물론, 양가 부모와 주례자를 식장까지 모실 차량을 수배하고 운전할 친구를 배정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식장에서는 부신부와 함께 양측 가족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일정을 조정하는 등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에 대처한다.

예식이 끝나도 부신랑ㆍ부신부의 일은 끝난 게 아니다. 신랑ㆍ신부의 친구들이 모여 예약된 술집에서 뒤풀이를 갖는데, 대부분의 신랑과 신부는 친구들이 건네는 축하주에 취하기 십상이어서 신혼 첫날밤을 보낼 호텔까지 데리고 가는 것도 부신랑과 부신부의 일이다. 제주에서는 보통 도내 호텔에서 첫날을 보내고 다음날 신혼여행을 떠난다.

그들은 신랑ㆍ신부의 가장 믿음직한 친구다. 제주의 결혼식에는 부조금 접수대나 부조함이 없다. 하객들이 개별적으로 신랑이나 신부에게 직접 전달한다. 전달받은 부조를 관리하는 것도 부신랑과 부신부의 일이다. 결혼식 과정에서 여러 비용과 부조 등 큰 금액을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신랑과 신부가 식을 치르고 인사하고 술을 마시는 사이 뒤에서 온갖 고생을 도맡아 하는 것이 부신랑과 부신부다. 힘든 일을 함께해서인지 가끔 부신랑과 부신부가 눈이 맞아 결혼하는 일도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제주에는 부신랑, 부신부, 3일 잔치 등 타지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결혼 풍습이 있다. 제주에서 찍은 웨딩사진. 비바소울스튜디오 제공.
제주에는 부신랑, 부신부, 3일 잔치 등 타지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결혼 풍습이 있다. 제주에서 찍은 웨딩사진. 비바소울스튜디오 제공.

그 외에도 독특한 결혼 풍습이 더 있다. 제주의 결혼식은 3일에 걸쳐 진행된다. 첫날은 결혼잔치 음식에 꼭 들어가는 ‘돗’(돼지의 제주 사투리) 잡는 날이다. 마을사람들이 모여 남자들은 돼지를 잡고 여자들은 음식을 장만하면서 사실상 잔치가 시작된다. 둘째 날은 잔치 음식들로 ‘가문잔치’를 벌인다. 이 때 예식장에 가지 못하는 지인들이 찾아 부조를 전달한다. 그리고 셋째 날 결혼식이 진행된다. 지금은 많이 간소화돼 대부분 1일 잔치로 끝나지만, 농촌 마을에서는 여전히 3일 잔치를 하기도 한다.

또 ‘겹부조’라는 제주의 특이한 상조문화를 기억해야 한다. 결혼의 경우, 당사자는 물론 평소 알고 지내던 부모, 형제 등에게도 부조를 해야 한다. 거꾸로 본인의 경조사 때는 자신이 부조를 줬던 사람들 모두에게 부조를 받는다. 요즘엔 부담이 크기 때문에 하지 말자는 분위기도 있지만, 대부분의 제주사람들은 여전히 겹부조를 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며 제주만의 결혼 풍습도 많이 바뀌고 있지만 친구나 이웃들이 서로를 돕는 분위기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제주=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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