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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표현, 그것이 시의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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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표현, 그것이 시의 소명"

입력
2015.07.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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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언어가 인간성 각성시켜… 한일문학, 저항의 기억 잊었다"

문학에세이 '시의 힘' 출간을 기념해 한국을 방문한 서경식 도쿄게이자이대 교수. 그는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노래하는 시어야말로 소수자의 아픔을 상상할 수 있는 자양분이라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문학에세이 '시의 힘' 출간을 기념해 한국을 방문한 서경식 도쿄게이자이대 교수. 그는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노래하는 시어야말로 소수자의 아픔을 상상할 수 있는 자양분이라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홀로코스트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동일본 대지진, 세월호 참사… 역사적 상처 속에서 문학의 역할은 늘 같았다. 아프다고 소리 지르되,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전할 가치가 있을 만큼 탁월한 언어로 호소하는 것이다.

재일조선인 2세로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평생 소수자 문제에 천착해온 서경식(64) 도쿄게이자이대 교수가 어릴 때부터 문학에 관심을 보인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베스트셀러인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비롯해 ‘청춘의 사신’ ‘고뇌의 원근법’ ‘디아스포라 기행’등 예술과 정치에 관해 왕성하게 글을 써왔던 그가 중학교 때 최초로 쓴 글은 재일조선인들이 모인 소학교 시절의 어두운 기억을 더듬은 단편소설이었다.

그의 첫 문학 에세이 ‘시의 힘’(현암사)이 최근 발간됐다. 근 몇 년간 한국과 일본에서 한 문학 강의를 모으고 가필한 이 책에서 서 교수는 일제 강점기에 쓰인 윤동주의 시와 군사정권 아래 탄생한 김지하의 시,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일본 시를 통해 ‘절망의 시대에 시는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는가’에 대해 탐색한다.

책 출간을 기념한 북 콘서트 참가 차 아내와 함께 한국을 찾은 서 교수를 10일 종로구 서머셋펠리스 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첫 문학 에세이에 대해 “반 세기를 돌아왔다”고 말했다.

'시의 힘'
'시의 힘'

-한용운부터 정희성까지, 한국 시에 대한 소양이 상당하다. 처음 한국 시를 접한 건 언제인가.

“한국 시가 일본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건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이다. 김학현이란 분이 재일조선인들이 많이 보는 문예지 ‘삼천리’에 동시대의 아픔을 노래한 시들을 많이 소개했다. 그 중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을 보고 감명이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꼈다. 현재 김 시인의 변화에 대해선 매우 착잡하게 느끼지만 그의 시가 당시 우리에게 미친 영향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재일조선인으로서 한국의 저항시에 그토록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개인적으론 한국 유학 중이던 두 형(서승, 서준식)이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 수감된 게 컸다. 또 다른 이유는 한국 저항시에서 발견된 보편성 때문이었다. 당시 일본은 전후 군국주의를 딛고 민주화를 갈망하는 상황에서 폴 엘뤼아르의 저항시가 널리 읽혔고 일본 시단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그런데 내 조국인 한국에도 프랑스의 저항시 못지 않게 매우 감동적인 시가 있다는 걸 발견한 것이다. 한국의 시가 세계적인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이 끌렸다. 처음엔 한국어를 전혀 못해 번역된 시를 읽을 수 밖에 없었지만 90년대 들어서는 원문으로 읽기 시작했다.”

-시의 사명은 저항이라고 생각하나

“어려운 질문이다. 시는 저항시와 저항 아닌 시, 둘로 나뉘는 것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윤동주의 시가 정치적이 아니어서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건 틀린 말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정서는 정치와 무관할 수 없다. 정치와 무관한 정서는 없는 것이다. 슬픔을 정치적이지 않게 표현하는 게 윤동주 시의 매력일 뿐이다. 시에 사명이 있다면 그것은 시인과 당대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얼마나 온 몸으로 시대의 아픔을 표현하는지가 시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과 일본의 시에 담겨야 할 소리는 뭐라고 생각하나

“지금 일본에선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가 창궐하다. 길거리에서 ‘조선인 여자를 강간하고 죽이자’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너희의 말이 얼마나 틀린 것인지 논리적으로 설득해도 소용이 없다. 이들의 인간성을 각성시키는 언어는 논리의 언어가 아니라 시의 언어다. 과거 시 속에서 인간이 무엇을 욕망하고 무엇에 고통 받았는지 봄으로써, 현대에 고통 받는 소수자들의 심정을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교양이다. 인간을 단편화시키지 않는 문학의 힘이다. 요즘 학생들을 보면 스마트폰을 통한 단편적 지식 습득에 익숙해져 있다. 이는 타자에 대한 상상력 부족으로 이어진다. 조국의 과오, 전쟁이 어떤 것인지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일본은 50년 전으로, 한국은 30년 전으로 퇴행할 위기에 놓여 있다. 언어 표현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할 일이 많다.”

-한국에선 시인이 앞장서서 사회 문제를 들추는 시대는 간 것 같다. 일본의 상황은 어떤가

“최근 사회비판적인 내용의 하이쿠(일본 전통 단시)를 쓰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억압이 있다. 공민관이라고 동네마다 있는 주민자치센터에서 한 주민이 평화 헌법을 주제로 하이쿠를 지었는데 신문 게재를 거부 당했다. 센터에서 정부 눈치를 보고 알아서 뺀 것이다. 권력에 의한 검열보다 더 무서운 건 자기검열이다. 한국문학이든 일본문학이든 저항의 기억을 잊었다. 저항의 의미를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시대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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