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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꽃을 버려야 열매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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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꽃을 버려야 열매를 얻는다

입력
2010.08.1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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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다들 너무 젊고 아름답다. 그래서 사람을 대할 때 나이를 짐작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어떤 때는 직접 나이를 듣고도 수긍이 가지 않을 만큼 젊게 보이는 사람들도 많다. 도시의 거리를 지나다 보면 지나치는 사람들이 다들 모델 같고 TV 탤런트 같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이렇게 젊고 건강하며 아름다운 사람들을 보고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사람들이 너무 젊음과 아름다움에 집착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을 비롯해서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태어나면 일정기간 성장한다. 그 이후로는 늙고 병들고 죽는 대자연의 법칙에 따르게 되어있다. 모두가 알고 있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생로병사의 법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고 즐기고 싶은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심정일 것이다. 이런 욕심이 바로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을 불러오는 것이다.

어느 날, 농부와 길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마침 감꽃이 노랗게 핀 감나무 곁을 지나며 예쁜 감꽃에 대해 말을 걸었다. "와, 감꽃이 정말 예쁘지요?" 그러자 농부가 투박하게 대답했다. "네, 꽃이 잘 핀걸 보니 감이 알차게 열겠네요." 다른 꽃나무들도 마찬가지였다. 농부의 눈에 비치는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때로 농부도 꽃의 아름다움을 알고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꽃이 져야 열매를 맺는 까닭에 그들은 결코 꽃의 아름다움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리 예쁘고 고와도 열매를 맺지 않는 꽃나무에 농부는 그리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들의 눈에는 그야말로 '쓰잘데기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자유를 즐기기 위해서 결혼을 하지 않거나, 또 결혼을 해도 아이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나이든 농부의 눈에 이런 사람들은 꽃만 예쁘고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와 다름없다.

잘 살펴보면 꽃이 예쁘다고 열매를 맺지 않는 꽃나무가 어디 있겠는가. 사람들에게 소용이 안돼서 그렇지 나름대로 다들 열매를 맺어 씨앗을 만들어 낸다. 씨앗이 있는 까닭에 그 존재를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나무든 꽃을 버려서 열매를 맺는다.

꽃이 아름다움을 버려서 열매를 맺듯이 사람은 건강과 젊음을 자양분으로 자식을 낳아 키우고, 스승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모두 전해주어서 제자를 길러야 한다. 나의 젊음과 자유에 집착해서 결혼과 자식을 포기하거나, 나와 경쟁 상대가 될까 봐 제자에게 모든 것을 전하지 않는 스승이 있다면 참으로 바보스러운 일에 다름 아니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는 화엄경의 말씀은 농부의 마음과 다름없는 소박한 가르침을 정신이 번쩍 드는 간결한 언어로 전하고 있다.

지금 우리 시대에는 꽃을 버리지 못한 나무와 강을 버리지 못한 강물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개인의 선택과 자유라는 근사한 명분아래 순리를 잊고 질서에 역행하는 삶을 살면서 스스로 즐겁고 만족하다고들 주장한다. 하지만 더욱 새롭고 아름다운 것을 얻기 위해서는 기존의 아름다움을 버려야 한다. 머물러 있는 것, 정지되어 있는 젊음과 아름다움은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니다.

혹시라도 젊음, 아름다움, 자유라는 허상의 꽃에 붙들려, 늙어지고 변해가는 삶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외면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주경 서산 부석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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