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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1원 1표’ 민주주의

입력
2017.08.30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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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유착은 궁극적으로 사회적 불평등 초래

경제성장 과실 기업과 부자에 편중되는 현상

유착 고리 끊어야 ‘1대 99’ 극복할 수 있어

언론사에서 광고를 담당하는 간부들끼리 모이면 심심치 않게 나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10대 그룹 오너 중 서넛 정도가 교도소 담장 위를 위태롭게 걸어야 광고가 좀 나아진다는 것이다. 담장 이쪽으로 넘어갈지 저쪽으로 넘어갈지 확실히 결정되지 않았을 때라야 광고 액수나 횟수가 많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언론계도 대기업 오너들의 법원 판결에 단순한 관심 이상으로 촉각을 곤두세운다.

10대 그룹 오너들 가운데 이 담장을 넘나든 경우가 적지 않다. 개인의 횡령 배임 등이야 기업 내부의 문제여서 관련법에 따라 처벌받으면 된다. 하지만 정경유착 등을 통해 회사나 개인의 이득을 극대화하려 했다면 얘기가 좀 다르다. 일반 국민과 무관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사회 불평등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우리 현대사를 돌이켜 보면 대개는 정치가 경제를 훼손했으나, 때로는 경제가 정치를 옭아맸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은 공생을 하다가도 갑자기 적대적으로 변하기를 숱하게 반복했다.

하지만 최종 결과만 본다면 정치권력은 짧았고, 재벌은 일시적으로 수난을 겪는 데 그쳤다. 역대 대통령과 재벌 총수의 현재를 비교해 보면 알기 쉽다. 역대 대통령은 퇴임 이후 대개 불행했지만, 재벌 총수들은 복역 이후에도 정상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도 새로운 정권이 창출되면 대통령은 기업인을 청와대로 불러 모은다. 그러고는 정부의 일자리 창출과 경제 살리기를 도와달라는, 부탁인지 강압인지 모를 일들을 반복한다. 문재인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정치자금으로 사회가 곤욕을 치른 것은 군사정권 때만의 일이 아니었다. 김영삼 정부 때는 ‘차떼기’가 있었고, 노무현 정부 이후에도 자잘한 자금이 돌았다. 한명숙 전 총리의 경우가 대표적이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수백 억원 대의 삼성 돈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법원의 판결대로라면 ‘묵시적 청탁’이어서 정치자금으로는 보기 어렵다.

하지만 정경유착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법과 제도를 특정 기업에 유리하게 바꾼다거나, 정부기관을 동원해 교묘하게 기업을 도와줄 수 있다. 대가가 없을 리 없다. 이런 유착의 결과는 기업이나 권력의 배후세력 등에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고, 국민에게는 부담을 가중하는 결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결국, 정치과정에서 ‘1인 1표’가 아니라 ‘1원 1표’가 되는 것으로, 민주주의 기본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2010년 연방 대법원이 기업이 정치 후보에게 정치자금을 무한정 기부할 수 있다고 한 판결을 미국 민주주의를 타락시킨 최악의 판결로 본다. 아프리카인의 후손이 미국 시민이 될 수 없다고 한 1857년 판결에 버금가는 것으로 평가한다. 이 바람에 미국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1년 연설에서 이 판결에 대해 “정치 기부금을 무제한으로 거둬들이는 소수에게 지나치게 큰 목소리를 실어 주어 민주주의를 최고액 입찰자에게 팔아버리는 위험에 내맡긴다”고 했다. 그래서 미국을 ‘1달러 1표’ 민주주의의 대표적 나라로 지목한다.

정치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는 저서 ‘1대 99를 넘어’에서 민주주의가 일반 국민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조작되고 불평등이 심화하는 과정을 지적한다. 경제가 수십 년간 계속 발전했는데도 성장에서 거둔 이익이 대부분 상위층에 돌아갔고 정치적 영향력도 위로 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과 갑부가 받는 혜택은 늘어나지만,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면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한다. 그는 불평등 심화는 미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도 위험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우리도 이런 맥락에서 예외는 아니다. 일찌감치 정치자금이 투명해진 것에 위안을 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과 삼성의 사례에서 보듯, 정경유착이 완전히 근절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처지여서 여전히 귀담아 들어야 할 지적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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