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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Biz 리더] 달러에 이름을 새기는 남자, 스티븐 므누신

입력
2017.04.1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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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에서 취임선서를 하는 스티븐 므누신(왼쪽 두 번째) 미 재무장관. 왼쪽 첫번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왼쪽 세번째는 그의 약혼녀이자 배우인 루이스 린튼, 맨 오른쪽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
백악관에서 취임선서를 하는 스티븐 므누신(왼쪽 두 번째) 미 재무장관. 왼쪽 첫번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왼쪽 세번째는 그의 약혼녀이자 배우인 루이스 린튼, 맨 오른쪽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

트럼프 행정부 재무장관 므누신

부친 이어 골드만삭스서 중역 역임

17년 보수 5800만 달러로 사업 시작

헤지펀드ㆍ영화사업 투자 승승장구

트럼프 캠프 재정 맡으며 정계 입문

“기회 포착해 적응 잘하는 사람” 평

미국 재무장관은 자국 내 권력서열 순위(대통령직 승계순위)로는 6위, 행정부 서열로는 4위에 해당하는 자리다. 그러나 세계 최고 권력자라 불리는 미국 대통령조차 누리지 못하는 특별한 권한 하나를 갖고 있다.

바로 미국 달러 지폐 오른쪽 하단에 자기 이름을 서명으로 새길 수 있는 특권이다. 미 재무장관의 수기 서명은 한국 지폐에 새겨진 ‘한국은행 총재’ 직인과 같은데, 이 때문에 새로 미국 재무장관이 취임하면 그의 서명이 얼마나 멋진지 또는 그렇지 않은지를 두고 갖가지 기사가 쏟아지기도 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미국이 찍어내 세계에 뿌릴 지폐, 그러니까 앞으로 우리가 손에 쥘 빳빳한 새 달러 지폐에 이름을 새길 사람도 바뀌었다. 그는 바로 트럼프 정부 첫 재무장관이자 미국 제77대 재무장관으로 지명된 스티븐 므누신(55)이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 약력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 약력

포르쉐 몰던 금수저 대학생

일단 철자(스펠링)가 독특한 그의 이름을 도대체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부터 짚어보자.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미국 새 정부 재무장관의 이름(Steven Mnuchin)은 ‘스티븐 므누신’으로 읽어야 한다. 그가 처음 외신에 이름을 올렸을 때 한국 언론에선 그의 이름을 ‘너친’, ‘누친’, ‘므누친’ 등으로 표기했지만, 결국 ‘므누신’으로 정리됐다. 그러나 실제 미국에서 쓰는 발음을 그대로 표기한다면 ‘므누신’보다는 ‘미뉴신’이나 ‘므누친’ 쪽에 더 가깝다. 그러나 오렌지를 ‘어륀지’라 쓰지 않는 것처럼 이해하고 넘어갈 부분이다.

특이한 성을 가진 므누신은 가정환경으로 보면 완벽한 ‘금수저’다. 므누신은 1962년 뉴욕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투자은행 겸 증권회사인 골드만 삭스의 중역이었고, 변호사인 할아버지는 뉴욕 인근 고급 휴양지 햄튼에서 요트 클럽을 만든 부자였다. 증조부는 벨기에에서 다이아몬드 장사를 하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미국으로 이민 갔다.

경력으로 보면 므누신은 전형적 ‘월가 엘리트’의 길을 걸었다. 그는 아버지처럼 예일대에 진학해 그곳에서 엘리트 비밀 클럽 ‘스컬 앤드 본즈’에 가입했다. 친구들은 므누신이 대학 시절 포르쉐 자동차를 몰았고, 호텔에서 살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85년(23세) 대학을 졸업한 뒤 아버지 직장이기도 했던 골드만 삭스에 입사해 2002년까지 17년을 재직했다. 주로 모기지(부동산을 담보로 주택저당증권을 발행해 장기주택자금을 대출해 주는 것) 관련 부서에서 일을 했는데, 94년(32세)에는 골드만 삭스의 구성원(파트너) 자리까지 올랐다.

미국 재무장관 스티븐 므누신의 서명. 위의 서명은 원래 므누신의 서명이고, 아래는 달러 지폐에 들어갈 새로운 서명이다. 미국 CNBC 방송 캡쳐
미국 재무장관 스티븐 므누신의 서명. 위의 서명은 원래 므누신의 서명이고, 아래는 달러 지폐에 들어갈 새로운 서명이다. 미국 CNBC 방송 캡쳐

망해가던 은행, 지고 있던 정치인을 구하다

2002년(40세) 므누신은 17년 간의 골드만 삭스 생활을 접고 자기 사업을 하기 시작했다. 골드만 삭스에서 4,600만달러어치의 주식과 1,260만달러의 보상금을 챙긴 그는 헤지펀드인 ESL 인베스트먼트를 만든다. 이듬해(41세) ‘투자의 귀재’ 조지 소로스와 동업해 SFM 캐피털 매니지먼트라는 이름의 회사를 차렸고, 2004년(42세)엔 골드만 삭스에서 일했던 동료들과 듄 캐피털 매니지먼트를 설립해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했다. 듄 캐피털 매니지먼트는 나중에 미국 제45대 대통령이 되는 도널드 트럼프의 회사에 투자를 하며, 트럼프가 시카고에 초고층 빌딩을 건설하는 데 대출을 해 주기도 했다.

2008년 다가온 글로벌 금융위기로 월가 거대 금융기관들이 줄줄이 치명상을 입었지만, 므누신은 위기를 기회로 살리는 데 성공했다. 2009년(47세) 므누신은 조지 소로스, 존 폴슨(헤지펀드 매니저), 마이클 델(델 컴퓨터 창업주) 등 쟁쟁한 투자자들과 함께 모기지 업체 인디맥을 사들인 뒤 회사 이름을 원웨스트 뱅크로 바꿨다. 원웨스트 뱅크 CEO 겸 회장에 취임한 므누신은 경영에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며 1년 만에 회사를 남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자산 규모가 큰 은행으로 키웠다. 그의 재산은 최소 1억6,600만달러에서 최대 4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2016년(54세)은 므누신의 경력을 완벽하게 바꾼 전환점이 됐다. 그는 한 번도 발을 들인 적이 없었던 정치계에 입문한 뒤 공화당 경선 초반 제대로 주목하지 못했던 비주류 후보 트럼프의 진영으로 들어가 선거캠프의 재무 책임자 역할을 맡았다. 망하던 은행을 다시 되살렸던 것처럼, 이번에도 므누신의 선견지명은 빛을 발했다.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을 꺾은 것이다. 트럼프의 50년 지기(知己)이자 므누신과도 교분을 쌓았던 억만장자 부동산 업자 리처드 르프랙은 므누신을 “기회를 포착해 그 상황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라 평가했다.

영화 제작자ㆍ카메오 배우 경력도

므누신의 ‘투자 본능’은 금융업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쪽에서도 빛났다. 그는 월가의 반대 쪽 할리우드와도 깊은 관계를 맺고 국내에도 잘 알려진 여러 블록버스터급 영화 제작에 참여했다. ‘엑스맨’, ‘아바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아메리칸 스나이퍼’ 등이 그가 제작에 관여한 영화들이다. 듄 캐피털 매니지먼트가 참여한 할리우드 영화만 80여편이다. 스릴러 영화 ‘인트루더: 낯선 침입자’에 출연했던 스코틀랜드 출신 배우 루이스 린튼(37)은 바로 므누신의 약혼녀다.

영화에 돈만 대던 므누신은 지난해 마침내 배우로서 스크린에 데뷔했다. ‘레즈’와 ‘딕 트레이시’ 등을 감독한 감독 겸 배우 워렌 비티(80)의 2016년작 ‘룰스 돈 어플라이’에 은행원 역으로 카메오 출연을 했다.

정치적 성향 및 업무평가는

지난해 트럼프 캠프에 들어오기 전까지 므누신은 특별한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지 않았다. 95년부터 2014년까지 12만 달러의 정치기부를 했는데, 공화당에 11번, 민주당에 36번의 돈을 냈다.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앨 고어 등 민주당 유력 정치인뿐 아니라 미트 롬니 공화당 전 대선 후보에게 기부했을 정도로, 정당을 가리지 않고 정치자금을 댔다.

세계 최고 부국의 곳간 열쇠를 거머쥔 므누신이 금융권, 영화계, 대선에서 거둔 성공을 공직에서도 계속 이어갈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공직이라고는 처음 맡아 본 므누신은 취임 두 달간 여러 차례 설화를 겪으며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지난달 “적어도 앞으로 50~100년은 인공지능(AI)이 인간 일자리를 대신할 일이 없다”고 했다가 물정 모르는 소리를 한다며 빈축을 샀고, 최근엔 자기가 투자한 회사에서 만든 영화 ‘레고 배트맨 무비’를 공개적 자리에서 언급했다 비판을 받았다.

앞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을 ‘혈맹’이나 ‘우방’으로 간주하기보다는 ‘거래의 상대방’으로 볼 것이 분명한 상황인 만큼 당분간 우리나라에서도 트럼프의 재상(財相)인 므누신의 이름을 자주 듣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환율정책이 공정하지 않다든가, 한국이 미국산 상품을 적게 수입한다는 불평들이 므누신의 입을 통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므누신이 국제 관계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헤지펀드 업자’의 본색을 드러낼 지는 좀 더 지켜 볼 일이다. 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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