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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분투기] 왜 전부 다 멸종으로 끝나?

입력
2016.06.30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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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이와 읽던 책의 한 부분이다. “지금은 늑대가 너무 많이 죽어서 늑대를 볼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어요. 몇몇 사람들은 늑대가 멸종될까 봐 걱정했어요”. 아이에게 이 부분을 읽어주자 아이는 “또 멸종이야?”라며 고개를 들었다. “또 멸종이라니?” 내가 되묻자 아이는 “말리 코끼리도 원래 1,000마리나 됐는데 지금은 400마리도 안 남았대, 지구가 더워져서, 지난번에 읽었던 책에는 바다거북도 바다에 기름이 퍼져서 많이 죽었대, 왜 전부 다 멸종으로 끝나.” 그러고 보니 그랬다. 아이와 함께 읽었던 동식물 관련 책은 언제나 멸종으로 끝난다. 동물은 위기에 처해있고, 자연은 더러워졌고, 지구는 병이 들었다.

영국에 사는 데이비드 본드라는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자연’에 대한 이런 이미지들을 바꿔보고 싶어 했다. 자신의 두 아이가 스마트 기기에 중독되었다고 생각한 그는 아이들이 자연으로 나가지 않는 이유가 ‘자연’에 대한 아이들의 부정적인 이미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두 아이에게 자연은 따분하고, 지저분하고, 썩어가는 공간이다. 그는 자신의 두 아이뿐 아니라 영국의 대다수 아이가 가진 이런 생각을 바꿔보기 위해 ‘와일드 씽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우선 그는 폭스바겐과 같은 대기업의 브랜드를 구축해온 마이클 울프의 조언에 따라 아이들이 ‘자연’에 대해 긍정적 이미지를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브랜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요컨대 사람들이 어떤 디젤 자동차에 대해 ‘클린 디젤’ ‘친환경’ ‘경제성’과 같은 긍정적 이미지를 가진다면 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연비를 속였음’ ‘배출가스 측정을 조작함’ 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가진다면 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작을 것이다. 데이비드는 ‘자연’이란 브랜드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 과학자와 환경보호활동가, 작가들을 인터뷰했다. 이들에 따르면 자연은 아이들을 더 행복하게 하고, 자연을 더 사랑하게 한다. 무엇보다 야생(wild)은 의지(will)의 원천이다. 데이비드가 ‘자연’을 새로운 이미지로 브랜드화하고 아이들을 자연으로 데려나가기 시작하자 ‘자연’이라는 말에서 따분함, 지루함, 불결함을 떠올렸던 아이들도 표정이 하나같이 밝아졌다.

영국 아이들에게도 ‘자연’은 인기가 없는 모양이지만, 그것은 단지 쥐와 뱀과 거미가 있는 무서운 곳이고, 너무 춥고 더워 불편하고, 해야 할 것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아 지루하고, 신발에 진흙이 묻기도 하고 동물이 썩어가는 것도 보이는 더러운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데이비드 본드처럼 사람들이 ‘자연’이라는 브랜드를 잘 구축하여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도록 한다면 쉽지는 않겠지만 아이들을 자연으로 데려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처한 상황은 이와 다르다. 우리 아이들이 가진 자연에 대해 갖는 무서움 불편함 지루함 더러움을 마이크 울프와 같은 브랜드 대가가 와서 모두 긍정적인 이미지로 바꿔준다고 해도 아이는 자연으로 나갈 수가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해 자연으로 나가도록 허락할 수가 없다. 며칠 전 아이가 쓴 그림일기를 살펴보니 날씨란에 맑음, 흐림, 비, 눈, 안개가 적힌 날은 며칠되지 않았다. 대신 ‘미세먼지’가 적힌 날은 절반이 넘는다. 날씨란에 미세먼지라고 적은 날, 아이는 심심하고, 답답하고, 짜증 났고, 집에서 낮잠을 잤다고 썼다. ‘야생’은 고사하고 마음껏 달리지도 못하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어떤 ‘의지’를 품고 이 사회에서 자라날 수 있을까.

동물들에게만 닥친 일이 아니다. 지금 아이들도, 어른들도 온갖 위기에 처해 있다.

권영민 ‘철학자 아빠의 인문 육아’ 저자ㆍ철학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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