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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을 찾아서] "지라시까지 올라와 정보 풍부… 대리ㆍ과장이 가장 많이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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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을 찾아서] "지라시까지 올라와 정보 풍부… 대리ㆍ과장이 가장 많이 참여"

입력
2018.01.03 04:0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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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같은 직장인 익명 SNS는 가벼운 뒷담화나 하소연부터 공식적으로 알리기 어려운 회사 내의 부조리까지 자유롭게 털어낼 수 있는 ‘대다무숲’ 같은 공간이기도 하지만, 익명이라는 가면 뒤에서 부정확하거나 왜곡ㆍ조작된 정보를 유통하고 일방적인 비방과 험담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도 하다. 블라인드를 사용하는 직장인들의 생각은 어떨까. 정보기술(IT), 유통, 중공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근무하는 다섯 남녀 직장인이 온라인에서 함께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의 요청에 따라 대담은 가명으로 진행했다.

[대담 참석자]

김우영(남ㆍ40) 중공업회사 마케팅팀 차장

박지현(여ㆍ35) 유통회사 홍보팀 과장

최원석(남ㆍ36) 화학회사 마케팅팀 과장

조성훈(남ㆍ37) IT회사 연구개발팀 과장

문철규(남ㆍ35) 물류회사 영업팀 대리

사회= 어떤 이유로 블라인드를 시작하게 됐나.

최원석= 회사 이야기를 익명의 힘을 빌려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반응이 좋을 땐 오피니언 리더가 된 기분도 들고, 아울러 타인의 생각을 알 수 있다는 점에 이끌려 자주 찾게 됐다. 이직할 때 업계 분위기나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박지현= 홍보팀에 있다 보니 회사의 안 좋은 소식을 먼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직원들의 불만도 신속히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아 가입했다.

김우영= 내가 근무하는 분야의 공통관심사를 공유하는 것이 좋았다. 블라인드가 회사는 물론 계열사, 업종별로 구분이 돼 있어서 공통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기 편했다. 아무래도 같은 직종이나 같은 분야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고민을 나눌 수도 있고 모르는 부분도 알게 되더라.

조성훈= 나도 비슷하다. 회사가 크고 여러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다 보니, 서로 간에 정보를 공유할 수도 있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문철규= 회사에도 익명 게시판이 있지만, 회사에서 운영하는 익명게시판은 마음만 먹으면 누가 작성했는지 밝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는데, 블라인드는 그런 위험이 없을 것 같아 회사 익명게시판보다 블라인드를 자주 이용한다.

사회= 주위 직장인들의 사용 비율은 얼마나 되나.

김우영= 그리 많이 사용하는 것 같진 않다. 우리 팀은 총 6명인데 쓰는 사람은 2명 정도다.

문철규= 우리 회사도 10~20% 정도 사용하는 것 같다. 그중에서 ‘눈팅(직접 글을 쓰지는 않고 다른 사람 글만 보는 것)’이 80~90%일 것이다.

조성훈= 우리도 10명 중 1, 2명 정도다.

사회= 블라인드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유익한 정보라면 어떤 것인가.

최원석= 같은 업계 정보를 꼽겠다. 대한민국에서 도는 찌라시(사설 정보지의 속칭)도 웬만하면 모두 올라온다. 주제별 카테고리도 있는데 요샌 재테크 관련 방의 글들이 재미있다. 블라인드를 통해 소개팅도 많이 하더라.

문철규= 회사 업무 관련된 것들을 서로 많이 물어본다. 이를테면 업무 관련 용어라던가 규정에 대해.

김우영= 특정 사안에 대한 여론도 파악할 수 있다. 아무래도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있다 보니 공통 관심사가 존재하고 관련 정보도 빠르다. 요즘은 가상화폐 토론이 대세인 듯하다.

조성훈= 업무와 관련해서는 사내 게시판에 전문가들이 더 많아 블라인드를 업무적으로 활용하지는 않는다.

사회= 블라인드를 쓰면서 혹시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나. 회사 기밀을 블라인드에 노출한다거나 회사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서 개선됐다거나.

김우영= 회사의 중대 기밀을 알 정도의 고위급은 블라인드에 참여한다고 보기 힘들다. 다만 회사의 치부나 굳이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소소한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는 더러 있다.

문철규= 친했던 사람이 블라인드 게시판에 안 좋은 이슈로 입방아에 오른 적이 있어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인사성이나 업무 태도로 비판하는 글이었는데 대상이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게 써놓았더라.

박지현= 사내 연애에 관한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실명을 쓰진 않지만 몇 가지 설명으로 누군지 유추할 수 있다. 어떤 회사에선 사내 성추행, 불륜 이야기가 올라와 관련자들이 경고를 받은 일도 있다고 하더라. 또 그룹 오너 일가와 관련한 비밀스러운 글이 올라왔다가 삭제되는 일도 있다.

사회= 회사 경영진이 블라인드 같은 익명 SNS를 자주 확인하나.

박지현= 인사팀에서 수시로 확인하면서 문제가 있는 글이 올라오면 작성자를 찾아내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최원석= 동향을 파악하는 수준이지 발본색원하는 분위기는 없는 것 같다. 회사에서 블라인드를 금지한다는 기사가 나오면 회사 이미지만 나빠지기 때문에 요즘은 그런 시도는 없는 듯하다.

조성훈= 한때 회사에서 블라인드를 통해 회사 내부 여론, 분위기를 살피는 듯했는데 요샌 자주 챙겨보진 않는 것 같다.

사회= 익명 SNS 사용이 직장인 사이에서 확산하는 분위기인가.

최원석= 대리, 과장이 가장 활발하고 부장급 이상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부장은 요새 블라인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보고받는 정도다. 블라인드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하면 왠지 공식화된 여론 같은 인상도 주니까.

박지현= 일부 불만이 가득한 사람들이 블라인드에 글을 올린다고 생각하는 직원들도 많다.

조성훈= 소수 사용자가 게시판을 독차지하면서 공감하기 힘든 여론을 형성하는 경우도 있어서인지 요즘은 블라인드 인기가 식어가는 듯한 인상도 받는다.

김우영= 요즘은 개인적인 이야기가 부쩍 많아지는 듯한 느낌이다. 예를 들어 소개팅, 재테크 상담, 이직, 결혼 문제 등.

사회= 익명성의 장점도 있지만 문제점도 있을 것 같다.

최원석= 같은 직무나 업계에 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기존에는 아는 사람에 직접 물어야만 알 수 있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특정 인물을 비방하는 글이 올라오면 마녀사냥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이처럼 불건전한 배설구 역할을 하는 측면도 있지만, 그런 통로가 있어야 문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해결할 수 있다.

조성훈= 상사에 대한 불만이나 회사에 대한 아쉬운 점을 이야기했을 때 타인의 공감을 받거나 위로를 받으면 위안이 된다. 그러나 책임이 뒤따르지 않은 익명성 때문에 일부의 잘못된 의견이 모여 사실을 왜곡하는 여론을 형성할 수도 있다.

박지현=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게시판에 글을 띄우는 건 좋지만 일부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글을 사실인 것처럼 올리는 건 문제가 있다. 내가 일하는 부서에 대한 험담을 읽을 때 자괴감이 들기도 하더라.

사회= 이런 역기능을 보완할 수 있는 개선책이 있다면.

최원석= 지금은 게시글에 찬성 기능만 있는데 반대 기능을 추가하면 좋을 듯하다.

김우영= 포털사이트 댓글의 신고 기능처럼 신고 기능을 강화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조성훈= 익명성이라는 게 장단점이 있는 양날의 칼이기 때문에 사용자가 어떻게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사회ㆍ정리=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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