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기억할 오늘] 나뉨(1.1)

입력
2018.01.01 04:40
30면
0 0
ss.와리무 호의 마크 트웨인. quadriv.wordpress.com/
ss.와리무 호의 마크 트웨인. quadriv.wordpress.com/

캐나다 밴쿠버항을 떠나 호주로 향하던 3,300톤 급 증기 여객선 ‘SS 와리무 Warrimoo’ 호는 1899년 12월 30일 태평양 한복판을 사선으로 분주히 질러가고 있었다. 1등 항해사가 선장 존 필립스(John Philips)에게 날짜와 그들의 묘한 위치를 환기한 건 어쩌면 따분함을 덜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배가 지나던 지점은 북쪽으로 위도 0도 31분, 서쪽으로 경도 179도 30분.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적도이고, 동쪽으로 30분만 되돌아가면 날짜변경선이었다.

필립스 선장의 장난끼가 발동했다. 그는 항해사들에게 속도와 방향과 위치를 시시각각 확인하며 곡예운항을 시작했다. 다행히 바람이 잔잔했고, 하늘도 맑았다. 다음날 자정 배는 적도와 날짜변경선이 교차하는 지점에 세로로 비스듬히 걸터앉았다. 선수는 남반구의 여름, 선미는 북반구의 겨울이고, 선미는 1899년 12월 31일이고 선수는 1900년 1월 1일인 지점. 배와 승객들은 그 순간, 두 개의 다른 날과 달과 연도와 계절과 세기에 존재했다.

본초자오선이 없던 대항해 시대, 대양을 넘나드는 무역선들은 국가마다 경도 기준이 달라 선박의 위치와 날짜를 확인하는 데 혼선을 빚곤 했다. 1884년 영국이 주축이 돼 세계 22개국 대표단이 미국 워싱턴에서 국제자오선회의를 열고,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기준자오선을 정했다. 런던 기점으로 서쪽으로 12시간이 서반구, 동쪽으로 12시간이 동반구가 됐다. 천문대의 지구 정반대 쪽, 즉 경도 180도는 날짜 변경선이 됐다.

마크 트웨인이 여행에세이 ‘적도를 따라가며 Following the Equator’(1896)를 쓰기 전 탄 배도 S.S 와리무였다. 적도를 지날 무렵 한 선원이 소녀 승객에게 배가 힘겨워하는 이유는 지구 중심의 불룩한 언덕(적도)을 오르기 때문이라고, 언덕만 넘어서면 내리막이라 쏜살같이 나아갈 거라고 하더라는 이야기와 함께 날짜변경선의 ‘마법’도 농담처럼 에세이에 담겨있다. 변경선을 관통하던 순간, 선실에서 태어난 아이의 생일은 어떻게 정해야 하느냐는 이야기. 트웨인은, 종교든 정치든 뭔가를 나누는 모든 것이 그처럼 작위적인 원칙의 문제일지 모른다는, 자못 철학적인 결론을 맺었다.

시공간이 잘리듯 나뉘는 그 기이한 순간의 그 자리에 섰던 필립스와 승객들도 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최윤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