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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님, '공순이' 최순영을 기억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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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님, '공순이' 최순영을 기억하나요?"

입력
2016.12.0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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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8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체제 아래서 일어난 YH무역 사건은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이다. YH무역의 여성노동자들은 부당하게 폐업한 회사에 맞서 당시 야당인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벌였다. 여기에 정부가 무술경관을 투입해 강경 진압하면서 노동자가 추락사했다.

이에 당시 신민당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정부를 강경 비판하면서 국회의원직을 잃고 제명당하는 사태로 이어졌고, 급기야 여기 항의하는 부산과 마산시민들이 궐기해 부마사태로 확산됐다. 그로부터 며칠 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을 맞고 숨지는 10.26사태가 터졌다. 그런 점에서 YH무역 사건은 유신체제의 종말을 이끌어 낸 도화선이었다.

당시 신민당사에서 “배고파 못살겠다”며 울부짖던 여성노동자들은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한 60대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 광장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이들이 있었다. 이들의 외침은 “부끄러워 못살겠다”로 바뀌었다. 지난달 29일 경기 부천의 부천교육지원청에서 YH무역 노조지부장이었던 최순영(63) 전 민주노동당 의원을 만났다.

최순영 전 민주노동당 의원은 1979년 YH무역 사건 당시 YH무역의 노조지부장이었다. 정유경 인턴기자
최순영 전 민주노동당 의원은 1979년 YH무역 사건 당시 YH무역의 노조지부장이었다. 정유경 인턴기자

공순이 최순영의 ‘그때 그 시절’

최 전 의원은 1970년 만 17세 나이로 고향인 강릉을 떠나 서울로 와서 가발을 만들어 수출하던 YH무역의 여공으로 입사했다. 먼지 가득한 작업장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일했지만 손에 쥐는 월급이 고작 몇 천원이었다. 그는 “YH무역은 일하는 분량에 맞춰 월급을 주는 도급제여서 눈 뜨면 일하고 밥 먹자마자 일하고 잠 줄여가며 일할 수 밖에 없었다”며 “나는 부서에서 가장 열심히 일해 봉급이 제일 많았다”고 말했다.

최 전 의원은 동료들의 권유에 노조에 가입했고 거기서 가난이 개인의 잘못이 아닌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시절 ‘공순이’라는 말로 비하되던 여공들은 개인의 희생을 전제로 성장을 주도하던 박정희식 경제개발 모델의 최대 희생자였다. 그는 “정부는 산업역군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을 추켜세우는 척하면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혹사시켰다”며 “선 성장 후 분배를 강조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노동자들에게 기본적인 생존권 조차 보장해주지 않았고 경제성장의 열매를 기업 및 그들과 결탁한 정치인들과 나누었다”고 주장했다. 정당하게 분배하지 않은 불평등한 경제성장 방식이 지금의 양극화와 사회갈등을 초래했다는 얘기다.

1979년 8월 YH무역의 여공들이 회사의 부당 폐업에 항의해 신민당사 4층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79년 8월 YH무역의 여공들이 회사의 부당 폐업에 항의해 신민당사 4층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YH무역은 박정희 정권의 수출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기적과 같이 성장한 대표적 수출기업이었다. 1966년 자본금 100만원, 종업원 10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4년 만에 4,000여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수출 실적 100만달러를 달성했다.

그러나 가발공장들이 우후죽순 생겨나 경쟁이 거세지면서 위기를 맞았다. 최 전 의원은 “1970년대 중반부터 창립자인 장용호씨가 회삿돈을 챙겨 미국으로 도피했다”며 “그의 친인척이 회사를 맡아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해 경영난에 빠졌다”고 회고했다. 급기야 월급이 점점 밀리면서 1979년 7월 노조원이 200명 남짓으로 줄었고 회사가 폐업을 선언했다.

최 전 의원은 1979년 8월9일을 잊지 못한다. 그날 YH무역 노조원들은 신민당 당사를 찾아가 "배고파서 못 살겠다"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생계 유지를 위해 폐쇄된 공장을 다시 열어달라는 간절한 호소였다.

시민운동가 황주석(2007년 작고)씨와 결혼한 최 전 의원은 당시 임신 6개월의 몸으로 여공들을 이끌었다. 그는 “군사독재 시절이라 경찰에 끌려가면 아이가 유산이 될까봐 걱정했지만 믿고 따르는 동료들과 함께하기로 했다”며 “여공들은 혹시나 내가 징역을 오래 살면 아이를 감옥에서 키워야 하는지, 밖에서 키울 수 있다면 서로 돌봐주겠다며 함께 걱정했다”고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최 전 의원은 감옥에 끌려갔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시대의 흐름 덕에 4개월만 복역하고 풀려나 사회에서 아이를 무사히 낳았다.

유신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여공들의 삶은 여전히 어려웠다. 최 전 의원은 “여공들 대부분이 강제 귀향 당해 고향에서 경찰들의 감시에 시달렸다”며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한동안 재취업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과 함께 경기 부천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 노동운동에 뛰어 들었다. 최 전 의원은 부천에서 시의원을 두 번 지냈고 2000년 민주노동당 부대표를 맡으며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박근혜(오른쪽) 대통령은 1975년 최태민 목사가 만든 구국여성봉사단에서 새마음 갖기운동을 함께 했다. 이때 새마음전국대학생연합회 회장이 요즘 국정농단 사태의 중심에 선 최순실(왼쪽)씨다. 뉴스타파 캡처
박근혜(오른쪽) 대통령은 1975년 최태민 목사가 만든 구국여성봉사단에서 새마음 갖기운동을 함께 했다. 이때 새마음전국대학생연합회 회장이 요즘 국정농단 사태의 중심에 선 최순실(왼쪽)씨다. 뉴스타파 캡처

"박정희 후광에 기댄 박근혜 시대 떠나 보내야"

최 전 의원은 2004년 민주노동당 부대표 시절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에게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하라”며 공개 서한을 보낸 적이 있다. 과거사 청산을 제대로 해야 현재를 바로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최 전 의원이 광화문 광장에 선 이유도 같은 이유다. 그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처럼 유신체제 유지를 위해 부역한 사람들이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권력을 유지한다는 것은 우리사회의 자정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라며 “불행했던 과거를 제대로 심판하지 못해서 현재 국민들까지 불행하게 만들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박 대통령은 1970년대 중반 퍼스트레이디 노릇을 하며 ‘새마음 운동’을 하던 시절에 최순실과 인연을 맺고 있었다”며 “40년 넘게 이어진 유착의 고리가 오늘날 부끄러운 일로 터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교롭게 인터뷰는 박 대통령이 퇴진조차도 국회에서 논의해 달라며 즉각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제 3차 담화 직후 이뤄졌다. 최 전 의원은 이에 대해 실망감을 나타냈다. 그는 “박 대통령은 세 차례 대국민 담화에서 줄곧 국민과 국가를 앞세워 변명할 뿐 성찰이 없다”며 “국회로 공을 넘겨 정치권을 분열시키는 꼼수”라고 비판했다.

같은 이유로 새누리당에게도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했다. 그는 “박 대통령을 18년 이상 정치적으로 보좌해온 새누리당 역시 심판대상”이라며 “박 대통령을 여권의 대표 정치인으로 만든 여당이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상황을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으며 정말 몰랐다면 스스로 무능력을 자임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국민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김주성기자 poem@hankookilbo.com
지난달 26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국민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김주성기자 poem@hankookilbo.com

요즘 최 전 의원은 지역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부천시 학교급식네트워크 운영위원장으로 4년간 일했고 현재는 부천교육청 시민감사관, 경기여성연대 공동대표로 일하고 있다.

여기에 매주 토요일이면 촛불을 들고 광장을 찾고 있다. 1970년대와 다른 시위 문화는 흘러간 세월을 느끼게 한다. 실망과 개탄이 반복되는 세월이었지만 요즘 광장에서 희망을 본다. 그는 “평화적으로 촛불을 든 국민들이 주권자로서 책임의식을 갖고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뭉클하다”고 말했다. 그는 “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국민을 대신해 고작 몇 년짜리 권력을 넘겨 받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주권자인 국민들이 조건 없이 퇴진하라고 주문하는 만큼 대통령이 국민의 목소리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정유경인턴기자 (서강대 프랑스문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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