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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3’만 보라고 강요하는 멀티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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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3’만 보라고 강요하는 멀티플렉스

입력
2018.05.01 04:4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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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악당 타노스는 우주만 제패한 게 아니라 한국 극장가도 통째로 집어삼켰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악당 타노스는 우주만 제패한 게 아니라 한국 극장가도 통째로 집어삼켰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개봉 6일 만에 관객 500만명 돌파

최고 상영점유율 77% ‘역대 최대’

한국 영화들은 정면 대결 피해

저예산, 예술영화만 같은 날 개봉

LA 극장에선 상영점유율 27%뿐

영화계 “스크린 상한제 도입을”

최다 스크린수 2,553개(28일), 최다 상영횟수 1만3,183회(28일), 최고 상영점유율 77.4%(29일), 일일 최다관객수 133만2,603명(28일)… 할리우드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어벤져스3’)가 한국 박스오피스 역사에 새로 써 넣은 기록들이다. 30일에는 500만 고지도 점령했다. 25일 개봉해 불과 6일 만이다. 최단기간 1,000만 흥행도 당연시되고 있다. 30일 오후 5시 기준 실시간 예매율은 90%를 웃돈다.

예상됐던 결과이면서 동시에 상상을 초월한 파괴력이다. 마블 스튜디오 10주년 기념작이라는 화제성을 앞세운 ‘어벤져스3’의 공습에 한국영화계는 패닉 상태다. 영화인들 사이에선 “마블 영화가 개봉할 때는 한국영화 전체가 휴가를 가는 게 더 이롭겠다”는 자조까지 들려온다.

해묵은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불거지고 있다. 관객의 관람 열기가 뜨거워 논란을 덮고는 있지만 폐해는 어느 블록버스터 개봉 때보다 더 심각하다. 극장들이 영화를 10번 상영할 때 ‘어벤져스3’가 8번 가까이 차지하는 상황이 분명 정상은 아니다. 다양성 상실로 영화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30일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점을 찾은 관람객들이 영화표를 구매하고 있다. 상영관 대다수가 ‘어벤져스: 인피티니 워’에 배정돼 있다. 류효진기자
30일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점을 찾은 관람객들이 영화표를 구매하고 있다. 상영관 대다수가 ‘어벤져스: 인피티니 워’에 배정돼 있다. 류효진기자

관객 뒤에 숨은 멀티플렉스 극장

전국 극장이 하루 종일 ‘어벤져스3’만 틀어대는 꼴이지만, 관객의 다양한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비판은 좀처럼 먹혀 들지 않고 있다. 지난 28일 일일 관객수 1만명을 넘긴 영화는 단 두 편. ‘어벤져스3’와 다큐멘터리 ‘그날, 바다’다. 그러나 관객수는 각각 133만2,603명과 1만4,775명으로 100배 가깝게 차이가 난다.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관객을 방패 막이 삼아 “각종 흥행 지표에 따른 스크린 배정”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어벤져스3’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도 극장들이 내세우는 방어 논리다. ‘당갈’ ‘클레어의 카메라’ ‘살인소설’ 등 주로 저예산ㆍ예술영화만 ‘어벤져스3’와 같은 날 개봉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데는 ‘학습효과’가 작용했다. 한국 대작영화는 여름 시장, 겨울 시장, 설 연휴, 추석 연휴에 주로 쏟아져 나오지만 4월 말, 5월 초도 알토란 같은 숨은 대목이었다. 근로자의 날과 어린이날이 주말과 함께 징검다리식으로 이어지며 꽤 큰 시장을 형성했다. 하지만 최근 ‘어벤져스’ 시리즈 등 마블 영화들이 주로 이 시기 개봉하면서 한국 중급 영화들은 봄 시장을 두려워하는 신세가 됐다. 물론 ‘어벤져스3’ 같은 영화와 대적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극장들이 상업성 극대화를 위해 특정 영화에 비정상적인 스크린 몰아주기를 하지 않는다면, 다른 영화들이 굳이 맞대결을 피할 이유는 없다.

스크린 독과점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더 심각하다. 지난해 여름 개봉해 스크린 독과점 논란으로 집중 포화를 맞았던 ‘군함도’는 상영점유율이 가장 높을 때가 55.8%였다. 최다 스크린 수 기준으로 상위 10위 안에 포함된 ‘부산행’과 ‘검사외전’(2016) ‘신과 함께-죄와 벌’(2017)은 각각 57.7%, 53.6%, 47%였다. 하지만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와 ‘스파이더맨: 홈커밍’(2017)은 각각 68.3%, 68.4%, 63%에 달했다. 한 영화인은 “한국 대작영화의 경우 극장 상영과 투자배급이 일원화된 수직계열화로 비판 받기 때문에 멀티플렉스가 여론을 살피는 시늉이라도 하지만, 할리우드 대작영화를 개봉할 때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 몰아주기가 더 심해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어벤져스: 인피티니 워’의 상영점유율은 80%에 육박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어벤져스: 인피티니 워’의 상영점유율은 80%에 육박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산업 성장에서 공정 경쟁으로 바꿔야

영화계는 특정 영화가 대기업 극장에서 일정 비율(40%) 이상 상영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스크린 상한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영화 및 비디오물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개정안도 발의돼 있다. 80%에 육박하는 상영점유율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기현상이다. 일례로 1일 하루 동안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점에서는 ‘어벤져스3’를 84회 상영한다. 상영 비율이 무려 75%다. 나머지 영화 6편의 상영횟수를 다 합쳐도 28회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미국 로스앤젤레스 AMC 프로메너드16에서는 ‘어벤져스3’가 19회, 다른 영화 13편은 총 51회 상영된다. 영국 런던 씨네월드 레체스터스퀘어도 ‘어벤져스3’ 상영은 하루 10회에 불과하다. ‘어벤져스3’ 상영 비율은 각각 19%와 38.4%에 그쳤다. AMC는 미국 2위, 씨네월드는 유럽 2위 극장 체인 사업자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그래픽=신동준 기자

하지만 영화 산업 주체들의 목소리가 엇갈리면서 영비법 개정안 통과는 요원한 상황이다. 이런 식으로 10년 넘게 논쟁만 거듭했다. 법적 규제가 최선이기는 하나 국회에만 책임을 미루지 말고, 정부 기관이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 동안 산업 규모를 키우는 데만 골몰했다면 이번 기회에 공정 경쟁이 가능한 환경으로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형석 영화평론가는 “흥행에만 집중하는 산업적 욕망이 ‘어벤져스3’에서 극한에 달했다고 본다”며 “영화계 내부 논의와 법률안 처리에 앞서 공정거래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 기관이 선제적으로 독과점 논란에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평론가는 “공정 경쟁이 가능한 환경이어야 한국 영화도 새로운 시도를 할 의지가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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