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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내친구]<6> ‘사람중심경영’의 글로벌 전도사 살바토레 제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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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내친구]<6> ‘사람중심경영’의 글로벌 전도사 살바토레 제키니

입력
2018.04.27 17: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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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왼쪽) 가톨릭대 교수와 살바토레 제키니 교수. 김기찬 교수 제공
김기찬(왼쪽) 가톨릭대 교수와 살바토레 제키니 교수. 김기찬 교수 제공

중소기업 분야 산학협력에 관심을 갖다 보니 자연스레 한국중소기업학회장, 아시아중소기업학회장, 세계중소기업학회장 등의 감투를 쓰게 됐다. 덕분에 전세계 각국의 중소기업 정책입안자, 교육자, 연구자, 기업인을 만날 수 있었다. 대부분 열정 넘치고 중소기업 혁신과 기업가 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분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인물을 꼽자면 이탈리아 출신의 살바토레 제키니다. 현재 ‘토르 베르가타 로마’ 대학에 재직 중인 제키니 교수는 스스로에게 엄격하면서도 ‘포용 성장’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제키니 교수의 경력은 화려하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랑하는 ‘와튼스쿨’ 출신으로 재무전공 경영학 박사다. 이탈리아 중앙은행 이코노미스트와 국장, 국제통화기금(IMF) 이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차장 등을 거쳐 OECD의 ‘중소기업 및 기업가 정신위원회’ 의장도 맡았다. 이렇게 다채로운 경력을 거치면서도 일관되게 사회ㆍ경제발전의 동인(動因)을 ‘기업가 정신’과 ‘혁신’에서 찾고 있다. 또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창업 및 육성이 경제발전에 중요하다는 소신도 버리지 않고 있다.

제키니 교수는 “중소기업에 대한 열정이 이탈리아 중앙은행의 경제조사 부서에 근무할 때부터 생겨났다”고 내게 말한 적이 있다. 또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연구개발과 혁신에 투입할 충분한 예산을 갖고 있지 못하므로, 정부와 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중소기업 관련 학술분야에서 세계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따뜻한 포용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제키니 교수는 내가 최근 펴낸 ‘사람중심 기업가정신’이라는 책의 추천사에서도 이런 소신을 숨기지 않았다. “경제발전의 혜택이 사회 전체가 아닌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하는 현상을 걱정해야 한다. (기업가와 일반 직원이) 혁신의 성과를 공유하고 지속성장을 할 수 있도록 기업가는 포용적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사람중심의 철학’을 다른 각도에서 새롭게 역설한 것이다.

제키니 교수는 중소기업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원래 전문영역은 금융과 재정분야이다. 그래서 포용성장과 함께 기업혁신의 중요성도 함께 강조한다. 이런 신념은 2016년 4월 서울에서 열린 ‘중소기업 월드 컨퍼런스’ 특별대담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당시 그는 이렇게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기업가 정신의 르네상스 시대가 될 것이다. 산업의 융복합화와 창의적 도전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OECD 통계를 보면 지난 10년간 전체 고용의 75%를 창업 5년 미만 ‘스타트 업’이 담당했다. 기업가 정신은 일자리 창출의 엔진이다. 청년 일자리를 위해서도 창업과 기업가 정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서로 교분이 깊어지면서 제키니 교수가 나를 알기 오래 전부터 한국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는 걸 알게 됐다. 그에 따르면 한국에 본격 관심을 갖게 된 건 IMF 이사로 근무하면서다. 제키니 교수는 유럽 경제통합과 관련된 이슈에 대해 유럽 주요국 장관들의 컨설턴트로 활동한 바 있다. 유로화에 의한 화폐통합 작업에도 깊게 관여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재정ㆍ금융전문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았고, 1984~1989년 유럽을 대표하는 IMF 이사로 5년 동안 활동하면서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게 됐다.

당시 한국은 개발도상국으로서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주목 받던 시기였다. 제키니 교수는 기업가 정신과 혁신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한국에 주목했다. 실제로 당시 한국은 부지런하면서도 높은 교육수준을 바탕으로 한 기업가 정신이 과감한 연구개발과 혁신으로 발현되면서 일본 등 선진국을 짧은 시간 안에 추격하고 있었다.

제키니 교수는 한국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정책에 대해서도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 신용보증 시스템에 관심이 많다. 경쟁력이 약한 중소기업에 적절한 신용을 공급하면서도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한 한국 특유의 지원 방식이 비슷한 처지의 다른 국가에는 ‘벤치마킹’ 대상이라는 입장이다. “민간과 정부의 역할이 상승 작용을 일으켜 한국은 OECD나 세계은행에서 ‘1만 달러 함정’이라고 부르는 ‘중간소득 함정’을 극복한 몇 안 되는 나라가 됐다”고 말했다.

제키니 교수의 주장대로, 기업가 정신은 정부주도가 아닌 민간부문의 개혁과 촉진의 원천이다. 그는 한국 경제의 발전과정을 관찰해서 얻은 경험을 OECD에서 사무차장으로서 일할 때 적극 활용했다. 여러 국가를 자문하고, 방대한 국가협력 프로그램을 주도할 때마다 한국 기업가들의 도전정신을 칭송했다.

물론 제키니 교수는 한국에 대해 칭찬만 하는 건 아니다. 애정 어린 쓴소리도 아끼지 않는다. 국제 학술회의에서 만날 때마다 한국에서도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사람중심 경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기업간 관계에서도 협력적 생태계를 조성하고 상생하며 함께 발전하는 동반성장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더 나아가 젊은이에게 기업가 정신을 장려하고, 국가ㆍ사회는 혁신하고 상생하는 기업가형 생태계를 키우는 사회가 되어야만 한국 경제의 미래가 있다고 강조한다.

십여 년간 교분이 쌓이면서 제키니 교수를 사석에서는 ‘살바토레’라고 부르게 됐다. 마찬가지로 ‘사람중심 기업가 정신’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상호 이해의 폭이 두터워지고 있다. 건강한 자본주의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내 친구 살바토레의 건승을 기원한다.

김기찬ㆍ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국민경제자문회의 혁신분과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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