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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Biz 리더] “답을 아는 사업만 하면 오래 못 가” 매일이 ‘창업 첫날’

입력
2017.04.2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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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아마존 제공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아마존 제공

인터넷 사용자가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했던 1994년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의 헤지펀드 회사 ‘D. E. 쇼’의 창업자인 컴퓨터공학 박사 데이비드 쇼는 당시 서른 살의 젊은 부사장 제프 베조스에게 인터넷 신기술을 활용한 사업 아이템을 연구해보라고 지시했다. 베조스는 인터넷 사용인구가 1년 만에 2,300배나 늘었다는 통계를 보고 그것이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 줄 것이라 확신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눴던 사업 아이템 중엔 전 세계 모든 종류의 상품을 파는 인터넷 회사 ‘에브리싱 스토어’도 있었다. 베조스는 일단 책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결론 내렸다. 책은 누구에게나 친근하고,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를 토대로 이미 분류가 잘 돼 있는 상품이었다. 책 재고가 없어도 2곳의 대형 도매상을 이용하면 상품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오프라인 서점보다 검색도 쉽고 몇 배나 많은 책을 판매할 수 있는 게 최대 장점이었다.

그는 쇼에게 창업해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을 전했다. 그러나 베조스를 곁에 두고 싶어했던 쇼는 그를 단념시키려 했다. 이제 막 결혼한 청년이 고액 연봉을 뿌리치고 미래가 불투명한 도서 통신판매에 뛰어드는 것은 위험하다는 이유였다. 베조스가 경쟁자로 성장할 것을 두려워했던 측면도 있었다.

고민에 빠진 베조스는 컴퓨터 마니아답게 자신만의 사고 시스템 ‘후회 최소화 프레임워크’를 고안했다. “여든 살이 돼 삶을 뒤돌아봤을 때 보너스를 포기한 일을 후회하진 않겠지만, 인터넷이 엄청난 것이 될줄 뻔히 알면서도 사업에 뛰어들지 않는다면 정말 후회할거라 생각했습니다.”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은 이렇게 시작됐다.

고객 우선의 혁신, 아마존을 초일류 기업으로 만들다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제프 베조스(53)는 사업과 무관한 집안에서 자랐다. 1964년 미국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서 태어났을 때 어머니 재클린 자이스는 고등학생이었고, 아버지 테드 조겐슨은 외발자전거 선수였다. 재클린은 아들이 17개월 됐을 때 가정에 무관심했던 테드와 이혼하고 이듬해 쿠바 출신 대학생 미겔 베조스와 재혼했다. 미겔은 졸업 후 정유회사 엑슨의 엔지니어로 취직했다. 가족 중 그나마 베조스가 하는 일과 가장 가까운 이는 외할아버지였다. 미 국방부 연구기관에서 미사일 로켓 과학자로 근무하다 은퇴 후 텍사스에서 목장을 운영했는데 외손자와 로켓, 우주여행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

소년 베조스는 총명하고 집중력이 뛰어났고, 경쟁심과 승부욕이 남다른 아이였다. 퍼스널 컴퓨터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초등학생 시절, 매뉴얼만 보고 교사들도 쓸 줄 몰랐던 교내 컴퓨터 작동법을 알아냈을 정도였다. 전 과목 A로 수석 졸업한 고교 졸업식 연설에서 그는 우주 개발의 꿈을 얘기했다. 프린스턴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창업을 고민하다 경험을 쌓기 위해 온라인 주식거래 시스템을 만드는 신생 회사 피텔에 입사했고, 두 곳의 회사를 더 거친 뒤 시애틀로 건너가 집 차고에서 아마존(처음 등록한 회사명은 주문을 외울 때 쓰는 ‘아브라카다브라’에서 따온 ‘카다브라’였다)을 시작했다.

제프 베조스는 시대를 잘 타고난 행운아였다. 그러나 운은 여러 성공 요인 중 일부에 불과했다. 아마존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미래를 내다보는 베조스의 혜안과 자신의 결정을 밀어붙이는 투지, 어떻게든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창의성, 냉철한 판단력과 신속한 결정, 그리고 매일을 ‘창업 첫날(Day 1)’처럼 여기는 마음가짐 때문이었다. 물론 맨 앞에는 ‘고객 최우선주의’가 있었다. 지금 전 세계 온라인 상거래의 표준으로 자리잡은 것들은 대부분 베조스의 고객최우선주의에서 나왔다. 개인 정보를 미리 입력해 놓으면 한 번의 클릭만으로 결제할 수 있는 ‘원클릭’ 시스템, 독자 리뷰와 별점, 고객의 구매 패턴이나 관심사를 반영하는 도서 추천 시스템, 다른 판매자가 아마존에서 상품을 팔 수 있도록 한 장터 기능(마켓플레이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윤보다 브랜드 가치와 고객 서비스를 최우선

베조스는 이윤 창출보다 시장 선점과 고객 확보에 무게를 두며 몸집을 불려나갔다. 적자 규모가 급격히 늘어났지만 인재 영입, 신기술 개발, 새로운 시장 개척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답을 알고 있는 사업만 하려 한다면 그 회사는 오래가지 못한다”며 낯선 분야에 뛰어들었다. 책에서 음반, DVD, 장난감, 전자제품 등으로 유통 품목을 확장했고, 인수하고 싶은 회사가 있으면 끝까지 밀어붙였다. 최고의 인재를 뽑기 위해 까다로운 채용 절차를 거쳤고, 채용된 직원들에 대해서는 혹독하게 채찍질했다. 고객이 다양한 상품을 좀 더 쉽게, 더 낮은 가격에 구매하고, 더 빨리 배송받을 수 있다면 합법적인 선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출판사나 도매업체에 책을 더 낮은 가격으로 공급하도록 압박하는 일도 빈번했다.

닷컴 기업들이 몸집만 키우다 하나둘 무너진 것과 달리 아마존은 성장통을 극복하고 초일류 기업이 됐다. 혁신을 통한 성장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클라우드 컴퓨팅 인프라를 제공하는 아마존웹서비스(AWS)다. 2006년 시작한 AWS는 대규모 서버와 저장공간, 데이터베이스 같은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기업이나 웹개발자들에게 안성맞춤인 서비스였다. 전자책 단말기 ‘킨들’, 화장지ㆍ세제처럼 자주 주문하는 소모품을 작은 스위치만 누르면 자동 주문해주는 ‘대시’, 인공지능 스피커 ‘에코’ 등도 아마존의 혁신 상품이다. 아마존은 드론 배송과 판매원과 계산대가 없는 자동 결제 매장 ‘아마존 고’를 탄생시켰고, 자율주행차로 물류시스템의 혁신을 예고하고 있다.

베조스는 2013년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하며 세상을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그는 아마존처럼 빅데이터를 활용해 독자 성향에 맞춘 기사들이 화면에 우선적으로 노출되도록 했다. 기존 기사 틀을 깨고 사진 중심의 콘텐츠를 적극 활용해 매체를 디지털 환경에 최적화시켰다. 그 결과 워싱턴 포스트의 웹 방문자는 2015년 뉴욕타임스를 넘어섰다.

인터넷을 넘어 우주로, 오늘도 창업 ‘첫날’처럼 뛴다

아마존의 성장 속도는 너무 빨라 현기증이 날 정도다. 1994년 자본금 1만달러(당시 약 800만원)로 시작한 아마존은 2015년 역사상 최단 기간 연 매출 1,000억달러(약 113조원) 돌파 기록을 세웠고, 최근 시가총액 4,000억달러를 넘어서며 세계 5위 기업이 됐다. 베조스는 지난달 미국 블룸버그통신이 발표한 ‘2017년 억만장자 지수’에서 순자산 756억달러(약 85조원)로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749억 달러)을 제치고 2위에 올랐다. 베조스는 애초의 꿈대로 인터넷 서점을 ‘에브리싱 스토어’로 키웠고 아직도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있다.

아마존은 5억개가 넘는 상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소매점이자 신선식품ㆍ음식을 배달하고 영화와 드라마를 제작하는 회사이며, 전자제품을 만들고 IT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우주 여행은 베조스가 사비를 들여 하는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가 2000년 비밀리에 설립한 블루 오리진은 우주 공간이 시작하는 경계까지 올라가 우주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연구와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베조스는 이달 초 “매년 10억달러씩 아마존 주식을 팔아 블루 오리진에 투자할 것”이라며 승객 6명이 탑승할 수 있는 우주 캡슐의 실물을 공개했다.

베조스의 이런 시도들이 모두 성공할 수 있을까. 10여년 전 블루 오리진을 공개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주비행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우리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조금씩, 하지만 꾸준히 나아갈 겁니다. 작은 발걸음이라도 더 자주 내디디면 더 빨리 많은 걸 배우게 되고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으며 결국 하늘로 날아오르는 날을 맞이할 수 있을 겁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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