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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조금 다를 뿐... 장애인과 함께 ‘땐쓰 땐쓰 땐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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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조금 다를 뿐... 장애인과 함께 ‘땐쓰 땐쓰 땐쓰’

입력
2017.04.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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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무용가 안은미의 3부작

작년 시각장애인들과 ‘안심땐쓰’

내달 저신장장애인과 ‘대심땐쓰’

성소수자 ‘방심땐쓰’는 구상 중

●무용단과 2월부터 호흡 맞춰

같은 동작도 힘이 5배 더 들어가

“이들 향한 편견 바뀌는 계기되길”

내달 무대에 오를 신작 '대심땐쓰'를 연습 중인 현대무용가 안은미(왼쪽 두 번째)와 무용수들이 연습 중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대심땐쓰'는 저신장장애인들과 함께 만드는 작품이다. 권도현 인턴기자
내달 무대에 오를 신작 '대심땐쓰'를 연습 중인 현대무용가 안은미(왼쪽 두 번째)와 무용수들이 연습 중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대심땐쓰'는 저신장장애인들과 함께 만드는 작품이다. 권도현 인턴기자

“범진아 이제 잠 깼어?” 현대무용가 안은미(55)의 신작 ‘대심땐쓰’ 연습이 한창이던 20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내 한 연습실에 웃음이 한 가득 퍼졌다. 연습 시작 두 달 여 만에 처음으로 늦잠을 잤다는 김범진(26)씨에게 안무가이자 연출가인 안은미는 이렇게 물었다. 함께 춤을 추는 무용수의 머리 위에 올라 온 몸을 길게 펼치는 고난도 동작을 선보여야 하는 범진씨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였다. 범진씨와 김유남(24)씨는 함께 연습 중인 다른 무용수들보다 체구가 훨씬 작은 저신장장애인이다. 하지만 연습을 시작하기 전 함께 동료 무용수들과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푸는 모습에선 체구 외에 다른 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원래부터 무용단 안은미컴퍼니의 단원이었던 것처럼 이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연습을 시작했다. “무릎이 아프면 얘기해, 더 편한 자세를 찾아보자”며 기존 무용수들과 특별한 객원 무용수 둘은 서로를 배려하며 적당한 동작을 찾아갔다. 이들에게 스승이나 다름 없는 안은미는 직접 자세를 잡아주며 지도를 아끼지 않았다. 동료 무용수의 머리 위에서 균형을 잡던 범진씨는 바닥에 내려와선 마치 쓰레기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는 다른 무용수의 팔을 잡아 끌어 무대 밖으로 옮긴다. 한 편의 현대무용 작품이 만들어지는데 이들에게 ‘신체 장애’는 아무런 장벽이 되지 못했다.

내달 12~14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오르는 ‘대심땐쓰’는 ‘안심땐쓰’ ‘대심땐쓰’ ‘방심땐쓰’로 이어지는, 안은미의 3부작 중 두 번째로 발표되는 작품이다. 제목 속 ‘대심’은 ‘몸은 작지만 마음은 크다’는 뜻을 담고 있다. 신장이 147.5㎝를 넘지 않는 저신장장애인 2명과 무용수 7명이 한 무대에 오른다. 안은미는 “이 친구들이 얼마나 열심히, 잘 하는지 모른다”며 “(연습에 매진해) 범진이는 근육이 늘었고, 유남이는 살이 너무 빠져서 바지가 흘러내릴 정도”라며 웃었다.

2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내 발레 연습실에서 현대무용가 안은미가 저신장 장애인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신작 '대심땐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권도현 인턴기자
2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내 발레 연습실에서 현대무용가 안은미가 저신장 장애인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신작 '대심땐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권도현 인턴기자

안은미가 지난해 선보인 ‘안심땐쓰’는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들에게 현대사회는 안심할 수 없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은 작품이었다. 안은미는 “사회에서 주목 받지 못하고 있는 소수자들이 춤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접근하면 새로운 작품이 탄생할 거라고 생각했다”며 “안은미컴퍼니와 저신장장애를 가진 친구들의 이야기를 합해 다른 각도의 삶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습실 한 켠에는 화려한 색상의 줄무늬 원단 조각들이 늘어져 있었다. 작품의 의도를 상세하게 살리기 위해 의상도 직접 디자인하는 안은미가 심혈을 기울여 고르고 있는 의상 원단이었다. “’안심땐쓰’ 무용수들은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점자에서 착안해 땡땡이무늬 의상을 입었는데 이번엔 줄무늬예요. 저신장장애 친구들은 높이와 길이에서 다름을 느끼니까요.” 그는 모든 것이 비장애인들 기준에 맞춰져 있는 현실을 이번 작품을 통해 역설적으로 표현하려 한다. “이 친구들은 평생 우리가 볼 수 없는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봐요. 모든 게 비장애인들의 키 높이에 맞춰져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삶은 어떨지 춤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무용수들은 춤을 통해 공존하는 방법을 다시금 고민하게 된다. “(우리에게) 잘 해줘서 너무 고맙다”는 장애인 무용수들의 말에 안은미는 “이게 무슨 잘 해주는 거야, 우리는 늘 이렇게 한다”고 답한 적이 있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우리 사회에서 이들에 대한 관심이 적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고도 했다. “우리나라처럼 복지나 인권이 무딘 곳에서 가장 힘든 이들은 결국 이 친구들과 같은 소수자들이죠. 개인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들은 한계가 있다 보니 이렇게 함께하는 작품이 더 의미 있고 기쁨도 커집니다.”

신체 장애는 그저 약간 다름을 의미하지만, 함께 춤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쉬웠던 것만은 아니다. 저신장장애는 근골격계질환 등을 동반하는 탓에 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비장애인보다 근력에 힘이 5배까지 더 들어간다. 아름다운 동작을 만들어내면서도 이들의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챙기는 것도 안은미의 몫이다. 연습하다 힘들면 바로 쉴 수 있도록 이들을 위한 ‘낮은 의자’도 구비해 뒀다. 이에 부응하는 듯 범진씨와 유남씨도 땀을 뻘뻘 흘리며 연습에 임했다. 안은미는 “천사들이 있다면 이 친구들이 아닐까 싶다.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준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이들의 동작은 비장애인은 할 수 없는, 고유하고도 아름다운 비율을 보여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기도 했다. “이 친구들이 보여주는 몸의 확장성을 사람들이 인지한다면 이들을 향한 편견이 또 다른 관점으로 바뀔 수 있겠죠.”

내년이면 창단 30주년을 맞는 그의 무용단 안은미컴퍼니 단원들에 대한 믿음도 컸다. 안은미는 “단원들은 춤 뿐만 아니라 타자와의 소통에 대한 훈련이 돼 있는 친구들”이라며 “혼자라면 할 수 없었을 작품들을 단원들과 함께 해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무용단과 저신장장애인들은 지난 2월부터 ‘대심땐쓰’를 위해 호흡을 맞춰왔다. 연습실에서 이들은 위계질서나 상하관계 없이 더 좋은 동작을 위해 온 몸을 맞대고 공동작업을 하는 동료 그 자체였다.

역동적인 에너지와 유쾌한 무대를 선보여 온 안은미는 세계무대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안무가다. 프랑스 끌레르 몽빼르 극장은 그의 ‘땐쓰’ 3부작이 다 완성도 되기 전에 세 작품 모두를 자신들 무대에 올리기로 계약을 마친 상태다. 안은미는 성소수자들과 함께 무대에 오를 ‘방심땐쓰’까지 마치고 난 후엔 ‘기계’와 함께 춤을 추기 위해 구상 중이다. 그는 작품에 늘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는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잖아요.”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2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발레 연습실에서 현대무용가 안은미가 신작 '대심땐쓰' 연습 중 함께 무대에 오르는 저신장장애인 김범진씨의 동작을 지도하고 있다. 권도현 인턴기자
2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발레 연습실에서 현대무용가 안은미가 신작 '대심땐쓰' 연습 중 함께 무대에 오르는 저신장장애인 김범진씨의 동작을 지도하고 있다. 권도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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