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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의 애인? 세상을 바꾼 첫 여성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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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의 애인? 세상을 바꾼 첫 여성 과학자

입력
2015.05.0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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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최세민 옮김/ 생각의 나무 발행/ 430쪽/ 1만5,000원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최세민 옮김/ 생각의 나무 발행/ 430쪽/ 1만5,000원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마리 퀴리(1867~1934)의 명성은 과학계만큼은 여성 차별이 없었다는 착시를 낳는다. 하지만 그 위대한 업적이 무색하게도 퀴리는 끝내 프랑스 화학아카데미 회원이 되지 못했다. 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1878~1968)는 청소부를 제외하곤 여성은 출입 금지라는 연구소장 방침에 따라 별도 출입구가 있는 지하실에서 숨어 실험을 했다. 우라늄 핵분열 현상을 규명한 그의 연구업적은 공동연구자인 오토 한에게 가로채여 노벨상 수상자에서 제외됐다. 로절린드 프랭클린(1920~1958)이 촬영한 그 유명한 DNA 이중나선 구조 사진은 자신의 논문이 아닌, 나중에 노벨상을 함께 수상한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의 논문에 실렸고 프랭클린의 기여는 거의 인정받지 못했다.

여성들이 아이를 키우고 아름다움을 가꾸는 데에서 월등한 능력을 보인다면야. 그러나 남성의 분야에 도전하는 여성, 어려운 수학을 풀고,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거나, 터프한 스포츠를 하는 여성은 그 능력을 과소하게나마 평가받기 앞서 우선 ‘별난 여자’ 취급부터 받는다.

20세기의 사정이 이러니 하물며 18세기는 어땠으랴. ‘마담 사이언티스트’가 생생하게 살려낸 에밀리 뒤 샤틀레(1706~1749) 후작부인은 근대과학에서 최초의 여성 과학자이자 볼테르의 연인으로서 계몽주의 사상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여성에 대한 정규교육 자체가 없었지만 그는 귀족이라는 배경과 영민함, 과학에 대한 열정으로 존재하지 않던 길을 거침없이 개척해 나아갔다. 에밀리는 볼테르와 함께 외딴 성을 개축해 사설 연구소를 만들어 빛의 성질을 연구하고 에너지 보존의 개념을 세웠다. 난해하게 쓰인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보다 명료하게 해석해낸 에밀리의 ‘뉴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덕분에 프랑스가 영국보다 100년이나 앞설 수 있었다는 평도 있다. 돈이 떨어지면 명민한 계산능력을 발휘해 도박판에서 돈을 휩쓸었고, 프랑스 국가복권을 조작해 거액을 손에 넣기도 했다.

에밀리의 사후 세상은 여성이 그처럼 중요한 업적을 남긴 것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고 인정하지도 않았다. “샤틀레 부인이 그런 탁월한 일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여성이 턱수염을 길렀다는 것만큼이나 얼토당토않은 소리”라고 깎아내린 것은 도덕론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였다. 역사에 남은 것은 그저 볼테르의 연인이라는 꼬리표와 당시 사회적 평판이 나빴다는 주석뿐이었다.

“당신은 아름다우니 인류의 절반은 당신의 적이 될 것이오. 당신은 영민하니 사람들이 당신을 두려워할 것이오. 당신은 남을 잘 믿으니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할 것이오”(‘중상모략에 관한 서한’ 중)라고 볼테르는 썼고 예언은 적중했다. 앞서가는 이들은 적을 만들기 일쑤다. 그래도 에밀리는 당대의 평판이나 학문활동을 가로막는 사회적 환경 따위를 개의치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모든 관습을 무너뜨리는 것이 그가 가장 잘 하는 일이었기에.

김희원 문화부장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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