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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포기하지 말고, 기부 UP!

입력
2017.12.13 20: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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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연말이긴 한가보다. ‘당신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합니다’라는 광고, ‘○○가 ○○에 ○○를 쾌척했다’는 뉴스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니 말이다. 찬바람이 불고, 출퇴근길 번화가에서 구세군 자선냄비를 보게 될 때쯤, “그렇지. 시간이 됐지”라고 떠올리는 기부나 자선 얘기다.

매년 지금쯤 전화를 걸어오는 친구가 있다. 제비가 오면 봄이구나 하듯, 그 친구 번호가 찍히면 ‘아 연말이구나’ 중얼거리면서 전화를 받곤 한다. “잘 지낸 겨?” “어. 그거 땜에?”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름을 들어봐야 누구도 쉽게 알은체 못하는, 충청도 조그만 자선단체에서 일하는 친구다.

근데 올해는 분위기가 심상찮다. “요즘 정말 힘들다.” 나름 번듯한 직장인이니 잔말 말고 돈 내라던 자신감은 사라지고, 초장부터 앓는 소리다.

짐작은 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기부 자선 단체 사람을 만나면, 올해는 초장부터 썰렁하다고 난리다. ‘기부 우려’라는 말에다 급기야 기부가 공포라는 ‘기부 포비아’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으니 오죽하겠냐 울상이다.

이유는 몇 가지다. ‘내 코가 석자’라는 게 제일 크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살기 버거운데 누굴 돕냐는 거다. 작년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전국 성인남녀 2,038명을 설문했더니, 964명이 1년간 기부를 안 했고, 그 중 절반(52.3%)은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란 답을 내놓았다고 한다. 작년이나 올해나 살기 퍽퍽하긴 매한가지니,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설상가상, 올해는 몇몇 사건까지 있었다. 나름 이름 있는 결손아동 돕기 단체인 새희망씨앗에서 100억원 넘는 기부금을 단체 사람들이 유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얼마 전엔 ‘어금니 아빠’ 이영학도 있었다. 희귀병을 앓는 딸 수술비를 보태달라고 울던 그가, 기부금을 고급 외제차 구입이나 취미생활에 썼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충격 받았다.

이런 상황이니 없는 살림에 몇 푼 기부해보겠다고 맘 먹었다가 ‘에이 나중에 하지 뭐’라거나 ‘됐어. 해서 뭐해’라고 지레 포기하는 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허리띠 졸라매 돈 줬더니 엄한 사람 배만 불리고 있다는 의심이 드는데, 지갑이 쉽게 열릴 리도 만무하다. 그렇게 그런 말을 친구에게 쏘아줬다.

“죽는 소리 그만해. 예전처럼 ‘이 사람 불쌍하니까 도와주세요’하면, ‘연말이니 불우이웃을 도웁시다’하면 딱딱 돈을 낼 것 같지? 사람들 이제 너네 잘 안 믿어. 모은 돈 어디 쓰는지 공개는 제대로 하냐?” 지극히 당연한 지적이라 생각했던지, 목소리도 제법 의기양양했다. 내친 김에, 기부단체를 제대로 감독 못하는 정부 얘기도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그런데 마음 한 구석은 불편했다. 김밥 팔아, 길가에 버려진 박스 모아, 수억원 기부를 하는 분들이 떠올랐다. 지금 어느 번화가 자선냄비에 구겨진 지폐를 넣고 있을 어떤 사람도 그려졌다. 그들은 여윳돈이 많아서,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다 알고서 기부를 결심한 걸까 의문이었다.

사실 살얼음 낀 기부 현장을 녹일 해법을 모르는 건 아니다. 결국 기부는 타자가 아닌 자아 만족과 실현을 위한 자발적인 선행이란 걸 우린 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 꽁꽁 닫는 지갑을 반대로 활짝 여는 이들이 있다는 것도 안다. 기부단체보다 더 열심히 발로 뛰면서 어려운 사람들 곁을 지키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이들에게 기부란 ‘아무나 할 수는 없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무나 할 수도 있는 일’이다. 지금도 맘만 먹으면, 재지 않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란 거다. 기부 희망자에게 일정 정도 경제적 여유와 올바른 장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정부 과제와는 별개다.

말미에 친구는 이런 말로 반격을 가했다. “왜 연말에만 전화하는지 안 물어 보냐. 연말에만 기부하라는 법 있냐?” 그래. 그것도 문제였구나.

남상욱 사회부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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