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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해군에게만 맡길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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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해군에게만 맡길 일인가

입력
2011.08.2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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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제주해군기지 부지에서 일행을 안내하던 해군장교들을 반대농성자들이 가로막았다. "(기지부지로 수용된)우리 땅인데 들어가지도 못합니까?" 장교들의 항변에 곧바로 거친 욕설이 날아들었다. '상황 발생'을 전파하는 농성자들의 호루라기와 사이렌 소음 속에서 장교들은 군복을 쥐어 잡히고 발길에 걷어차이며 쫓겨났다. 홍보 담당이라는 청년이 멀리까지 쫓아 나와 연신 카메라셔터를 눌러댔다.

팔다리의 피멍을 살피던 해군기지사업단장 이은국 대령의 표정은 참담했다. "말 한마디, 몸짓 하나 잘못했다간 바로 '군인이 욕하고 폭행했다"고 인터넷에 오를 겁니다. 그냥 당할 수밖에 없지요. 한 번이라도 같은 방식으로 맞대응했다간 끝장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반대자들에 맞는 해군장교들

지난 6월 시위자들이 항만 준설공사를 위해 시공사 직원과 해군이 탄 바지 예인선에 승선 시도를 할 때도 그랬다. 오르지 못하게 배 표면을 적시던 고무호스는 물대포가 되고, 끝내 예인선에 올라온 이들과의 선상 실랑이는 군의 폭행이 됐다는 것이다. 반대단체가 즉각 발표한 성명은 "비폭력으로 항의하는 민간인에 대한 군의 폭력은 용납할 수 없다"로 시작해 "군의 폭력 행사는 해군기지의 정당성 위기를 입증한 것"으로 치달았다. 해군이 "정 이러면 무허가승선, 폭행 등을 법적으로 처리하겠다"고 항의하면서 상황이 수그러들었다.

오해를 무릅쓰고 해군 입장에 기우는 얘기를 전하는 건 다름 아니다. 제주해군기지 문제가 또다시 이념진영간 대립으로 분화(噴火)했을 때부터 외부에 전달되는 정보가 현저하게 균형을 잃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런 일마다 평화ㆍ환경운동 등을 표방하는 온갖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와 네트워크, 인터넷과 SNS를 통한 신속하고도 광범위한 정보 유포는 압도적이다. 현장의 생생한 모습과 목소리 등을 통해 감성에 호소하는 방식도 대단히 효과적이다.

더욱이 연일 철야근무에 지친 현지경찰의 교대를 돕기 위한 경찰력 보강을 '4ㆍ3 이후 첫 육지경찰 투입'으로, 또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데도 아예 미군해군기지로 바꿔 부르는 전술능력까지 갖춘 이들이다. 현장 접근부터 불가능한 상대진영이 멀찌감치서 국익 수호, 지리ㆍ군사적 당위성 등 건조한 용어들이나 되뇌어 봐야 애당초 설득력에서 게임이 되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 정작 기막힌 건 애꿎은 현지 해군장병들만 이 모든 상황을 홀로 감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들은 다만 국가의 명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일 뿐이다. 이 대령도 사업단장 부임 전까지는 군 생활 대부분을 함상에서 바다를 지키며 보낸 정통 해군장교다. 명예를 존중 받아야 할 군인이 주민들에게 욕 먹고 차이고 현장을 찾은 정치인들에게까지 적대적 눈총을 받는다.

길게 얘기할 것 없이 제주해군기지는 이미 20년 전 국가적 필요성이 제기된 이후 긴 세월에 걸쳐 법적ㆍ행정적 절차와 보상ㆍ수용까지 마치고 이미 공사가 상당히 진행된 상황이다. 지금 와 이를 전면적으로 되돌리는 건 온당치도, 가능하지도 않다.

민ㆍ군 대치 더 방치해선 안돼

2006년 5월 평택 대추리에서 시위대 1,000여명이 미군 이전기지부지 철조망을 뚫고 난입, 군시설을 부수고 비무장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죽봉과 쇠파이프, 발길질에 난타당해 병원에 누운 아들을 보며 어머니는 "전쟁에서 싸워야 할 아들을 어떻게 시위대에 매질 당하게 놓아둘 수 있느냐"며 울부짖었다. 평택미군기지 확장 역시 수도 한복판의 미군기지를 돌려받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당시에도 다른 어떤 대안이 없었음에도 시위대는 오직 미군을 걸어 극한투쟁에 매달렸다. 오죽했으면 노무현 대통령조차 "불법시위를 엄단하라"고 엄정 대처를 지시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이 정부는 그저 손 놓고 있다. 직접 나서서 설득이든 조정이든, 아니면 법과 원칙대로 하든 무엇보다 민과 군이 직접 부딪치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도대체 뭐 하는 정부인가. 아니, 뭘 할 줄 아는 정부인가.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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