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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치열하고 치열한 예술가는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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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치열하고 치열한 예술가는 어디로 가나

입력
2017.08.2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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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 작가는 암으로 투병하다가 올해 1월 18일 별세했다. 2014년 문예지 ‘세계의 문학’에 연재된 ‘가수는 입을 다무네’는 마지막 장편소설이 됐다. 김병종 제공
정미경 작가는 암으로 투병하다가 올해 1월 18일 별세했다. 2014년 문예지 ‘세계의 문학’에 연재된 ‘가수는 입을 다무네’는 마지막 장편소설이 됐다. 김병종 제공

가수는 입을 다무네

정미경 지음

민음사 발행ㆍ336쪽ㆍ1만3,000원

소설의 내용, 문장만큼이나 소설이 나오게 된 배경, 맥락이 중요한 작품이 있다. 결혼, 출산, 육아에 충실한 여자만이 인간으로 대접받았던 빅토리아 시대에 결혼제도를 집약한 ‘제인 에어’가 그러하듯, 수십 년 후 이 시대와 결별을 선언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 ‘자기만의 방’이 그러하듯. 2017년의 시점으로 읽을 때 지극히 당연하고 유치한 선언들은, 작품의 시대와 작가의 생애를 알게 될 때 그 의미가 오롯이 완성된다.

올 봄 작고한 정미경의 유작 소설 ‘가수는 입을 다무네’ 역시 이 계보에 속하는 작품이 될 것이다. 다만 시대적 과업을 집약한 앞의 작품들과 달리 작가 생전 쓴 마지막 장편소설이라는, 온전히 개인적인 맥락 안에서.

10년 째 슬럼프를 겪는 록 가수를 그의 아내와 대학생 이경의 시점으로 그린 작품은 화가 김병종과 결혼 후 30여 년간 아침이면 식사 후 커피를 마시며 두 시간 넘게 문학과 예술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는 작가의 이력이 저절로 겹쳐 읽힌다. 제목은 기형도 시인의 동명의 작품에서 따왔다.

여기, 두 개의 세계가 있다. 사회 구조 안에서 열심히 발버둥치는 대학생 이경과 사회 구조 따위는 하등 상관하지 않고 제 삶을 사는 율. 정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취직했던 이경은 2년간의 직장생활 후 대학에 들어가 기존 친구들과의 인연을 끊는다. 그리고 온갖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번다. 단지 시간이 맞는다는 이유로 선택한 교양과목의 기말시험은 30분짜리 다큐멘터리 제작. 다분히 소설처럼, 악착같이 사는 이경을 좋아하는 돈 많은 ‘남자 사람 친구’ 현수는 하필 또 록 밴드 멤버와 친구이고, 현수는 그 친구의 정신적 지주이자 한때 잘 나가던 가수인 율을 다큐멘터리로 찍어보라고 제안한다. 1,600만 화소의 최신형 카메라를 갖다 바치면서.

전설의 기타리스트 겸 보컬인 율은 밤마다 환영에 시달리다가 목소리를 잃고 조울증과 대인기피증만을 가진 어린이가 됐다. 이런 율의 곁에는 10년째 같이 사는 아내 여혜가 있다. 그 자신 예술잡지의 편집장이자 유방암을 앓아 한쪽 가슴을 도려낸 환자이지만, 율 앞에서는 그의 널뛰는 바이오리듬을 맞춰주고, 몇 시간이고 신작의 오선지를 보며 조언하는, 엄마이자 애인이자 정신적 동지다. 그러나 여혜 역시 율의 소리 없는 절규를 듣지 못하고, 그래서 그는 차라리 입을 다문 채 죽음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율의 마지막 여정을 과제 제출용 다큐멘터리를 찍게 된 이경이 담는다.

작가 자신을 세 인물로 분할해 놓은 듯한 소설은, 줄거리보다 인물들의 대사에 눈길이 간다. 노래를 만든 건 “언제나 폭발하는 영감의 한 조각을 낚아채는 거”라는 율의 자아도취나, 율을 지켜본 여혜가 “곡을 만드는 일은 영감과는 별개의 육체적 노동”이라고 단언하는 대목은 작가 자신의 집필 과정을 작곡으로 환치해 설명해놓은 듯하다.

작품에 발문을 쓴 문학평론가 김미현은 이 작품을 ‘작가 정미경의 삶 혹은 문학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예술가 소설’이라고 소개했다. ‘세상을 떠난 자들의 삶은 그 자체로 존중 받아야 한다. 더욱이 그것이 최선을 다한 예술가의 삶이라면 그 삶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단순하게 이해하게 된다. 이런 존중과 이해는 상투적인 것이 아니라 온당한 것이고, 과장된 것이 아니라 절실한 것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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