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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은 선거 중]‘멕시코의 트럼프’ 로페스, 3수 끝에 대권 거머쥘까

입력
2018.04.12 18:2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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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레나당 이끄는 온건 좌파

"국경장벽ㆍ반이민정책은 인권침해"

트럼프 정면 비판하며 지지율 1위

폐쇄적 통상정책 등 트럼프와 비슷

당선돼도 무역문제 갈등 예고

멕시코는 물론 세계경제 악재될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방적인 이민 정책으로 멕시코를 압박하면서 이에 대한 멕시코 국민의 민족주의적 반작용이 7월 1일 멕시코 대선 향방의 가늠자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을 공격해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야당 대선 후보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2006년 대선 출마 당시 재검표 촉구 시위에 참여한 모습. 멕시코시티=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방적인 이민 정책으로 멕시코를 압박하면서 이에 대한 멕시코 국민의 민족주의적 반작용이 7월 1일 멕시코 대선 향방의 가늠자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을 공격해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야당 대선 후보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2006년 대선 출마 당시 재검표 촉구 시위에 참여한 모습. 멕시코시티=AP 연합뉴스

멕시코의 24세 여성 산드라 플로레스는 지난 1일(현지시간) 멕시코ㆍ미국 국경 인근에서 열린 좌파 야당 모레나(국가재건운동)의 대통령 선거 후보 출정식에 두 자녀를 데리고 참석했다. 이름의 첫 알파벳을 딴 ‘암로(AMLOㆍAndres Manuel Lopez Obrador)‘라는 약칭으로 유명한 대선 후보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이하 안드레스 로페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을 추진하며 연일 멕시코를 압박 중인 상황을 유세에 적극 활용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멕시코 정부와 국민은 외국 정부의 피나타(몽둥이로 부수는 종이 인형)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또 연설 내내 트럼프 대통령을 조롱하며 “사회 문제는 장벽을 쌓고 무력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연설을 지켜본 플로레스는 “2012년 대선 때 가족 모두가 지금의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에게 투표했지만 솔직히 만족스럽지 않았다”며 “트럼프 대통령에 맞설 수 있는 사람은 로페스뿐”이라고 로이터 통신에 밝혔다.

멕시코에서는 7월 1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선거가 열린다. 임기 3년의 하원 의원 500명과 임기 6년의 상원 의원 128명, 8명의 주지사와 멕시코시티 시장, 그리고 6년 단임제인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다. 지난달 30일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선거 분위기도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코스타리카(2월)와 파라과이(4월), 베네수엘라(5월), 콜럼비아(5월)를 거쳐 브라질(10월)까지 이어지는 중남미 대선 레이스의 일부로서 대선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멕시코 일간 ‘엘 우니베르살’이 3~5일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안드레스 로페스(65)가 42% 지지율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좌파 정책 정당 모레나를 이끄는 안드레스 로페스는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중도 중산층의 표심을 잡지 못해 2006년과 2012년 대선에서는 고배를 마신 바 있다.

트럼프에 맞서는 ‘멕시코의 트럼프’

이번 대선은 5파전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대선 삼수생’ 안드레스 로페스에 이어 지지율 31.1%로 2위에 오른 PAN(국민행동당)의 리카르도 아나야(39), 여당 PRI(제도혁명당)를 대표하는 호세 메아데(48), 펠리페 칼데론 전 대통령의 부인인 무소속 마르가리타 사발라(51)가 일찌감치 후보로 나섰다. 최근에는 하이메 로드리게스 누에보레온 주지사가 두 번째 무소속 후보로 등록을 마쳤다. 엘 우니베르살 조사에서 호세 메아데는 21.9% 마르가리타 사발라는 5%의 지지율을 각각 기록했다.

선거 운동 초기이긴 하지만 현재 구도에서 우파 당의 합종연횡이 없다면 당선이 유력해 보이는 안드레스 로페스는 1976년 멕시코 타바스코주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PRI 후보 지원 업무를 맡으며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1989년 PRI를 탈당한 뒤 좌파 이념이 확고한 이들과 뭉쳐 PRD(민주혁명당)를 창당했고 2000년에 멕시코시티 시장 선거에서 승리하며 야권 핵심지도자로 자리를 굳혔다. 두 차례나 PRD 대선후보였던 안드레스 로페스는 다시 탈당 후 2015년 좌파 모레나당을 꾸려 이 당의 대선 후보로 나서게 됐다.

안드레스 로페스의 높은 지지율은 멕시코 내 반트럼프 정서가 확산된 덕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인의 미국 유입을 막기 위해 양국 간 국경에 장벽을 쌓겠다고 발표했고 멕시코계 장기 불법 체류자 추방에도 나섰다. 멕시코에 공장을 지으려는 미국 기업들에는 계획 철회를 요구했다. 지난해 초에는 니에토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거기 나쁜 녀석들(bad hombres)이 많은데 당신이 막지 못하면 미군을 보내겠다”고 위협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에 안드레스 로페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국경 장벽 건설과 반이민 정책을 “인권을 침해하고 차별하는 행위”라고 비난하는 등 ‘반트럼프 전선의 기수’로 떠오르면서 지지도를 쌓았다.

그는 또 ‘멕시코의 트럼프’로 불릴 정도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자)다. 거침없는 발언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통상 정책 측면에서 다분히 폐쇄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등 트럼프 대통령과 닮은 점도 많다.

자연스럽게 다른 대선 후보들도 반미정서와 민족주의에 호소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분위기다. 아나야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주 방위군을 국경 지대에 파견키로 결정한 뒤 “이를 취소하지 않으면 앞으로 멕시코는 반테러 작전에서 미국과의 협조를 제한하겠다”고 선언했다. 여당 대선 후보 메아데는 "지금은 대선 후보들도 각자의 정치적 이견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주권과 위신을 세우기 위해 단합해야 할 때"라며 미국의 무리한 정책을 거부하고 이행을 철회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패 척결, 권력 마피아 청산, 노인연금 확대, 공무원 임금 삭감, 일자리 창출, 인프라 투자 확충 등을 내걸며 멕시코의 변화를 외치는 안드레스 로페스는 현 정권에 대한 멕시코 국민의 실망감이 반영된 반사이익을 얻었다. 현 니에토 대통령은 부인이 정부계약 기업으로부터 수주 대가로 700만달러짜리 호화 주택을 받는 등 부패 스캔들에 휘말려 지지율이 끝도 없이 추락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부패 스캔들에 연루돼 약속한 만큼 경제 성장을 이끌어 내지 못한 니에토 정권의 실패를 안드레스 로페스가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경제 문제는 대선의 핵심 어젠다 중 하나여서 아나야도 이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는 11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2021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공공 투자를 늘리고 이를 계기로 민간 투자를 자극해 GDP의 25%까지 투자가 늘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차베스 같은 급진주의자는 아니다

안드레스 로페스가 오랜 기간 집권하지 못하고 18년째 대선에 도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기득권층의 ‘급진 좌파’ 프레임을 통한 ‘공포 마케팅’이 유효했기 때문이다. 그가 2006년 대선에 처음 출마했을 당시 상대 후보 진영에서는 그에게 남미 급진 좌파의 대표인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이미지를 덧씌웠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멕시코가 위험해진다는 노골적인 협박이 담긴 선거 전략을 편 것이다.

멕시코 대선은 유세 과열과 함께 여권의 관권 선거 개입, 매표 행위 등의 변수가 많아 결과를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번 선거 운동 과정은 안드레스 로페스가 최소한 수사적으로라도 차베스와는 차별화된 온건 좌파 성향을 보이는 등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멕시코 일간 ‘라 호르나다’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안드레스 로페스는 은행가협회 총회에 참석해 “대통령이 되면 취임 후 3년 이내에 대법원을 개혁하되 금융 분야의 외국인 투자는 적극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2006년 그를 ‘멕시코의 위험’으로 표현했던 정치평론가 안토니오 솔라는 현지 언론에 “정상적인 조건하에서라면 이번 대선에서 당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포퓰리스트로서 그의 당선으로 빚어질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안드레스 로페스가 당선되면 미국과 멕시코 간 무역, 이민, 장벽 건설 등의 문제에서 갈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그의 당선은 외국인직접투자 감소 등 멕시코 일부 경제지표의 악영향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세계은행은 지난해 멕시코 경제성장률을 세계 평균 경제 성장률 3%에 못 미치는 1.9%로 추정했고, 올해 경제성장률은 2.1%로 전망했다.

안드레스 로페스가 당선되는 일은 단순한 미국과 멕시코의 갈등을 넘어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미 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은 최근 발표 보고서에서 2018년 세계 경제를 위협할 10대 리스크 중 하나로 멕시코를 꼽았다. 대미 무역 강경론자인 안드레스 로페스가 대통령이 되면 대미 무역의존도가 높은 멕시코 경제는 물론 미국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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