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산 ‘우물에서 하늘 보기’
황현산 지음
삼인 발행ㆍ272쪽ㆍ1만3,000원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황현산씨의 고향 후배 이야기다. 문청의 꿈이 좌절된 후 마흔 넘어 고향으로 내려간 그는 노모와 함께 된장을 담가 팔며 삶에 안착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가 돌연 ‘참된’ 된장을 찾아 전국 산간을 돌며 재래종 콩의 종자를 구하고 각지의 장 담그는 법을 기록해 집대성하려 하면서 사업은 기울고 그는 고향을 떠난다. 황씨는 그 후배를 “예술가를 자처한 적은 없으나 (…) 그 몸으로 예술가의 알레고리가 된 사람”이라고 부른다. 삶을 이어갈 수 있음에 감복하지 않는 인간, 먹고 살기의 전쟁 속에서 사치스럽게도 본질에 한 눈 파는 인간. 어떤 예술가들이 예술의 무용성을 변명하거나 반박하는 데 반해, 이 원로학자는 대담하게도 무용함을 예술로 정의해버린다. “나는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 자신을 무용한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었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황씨의 시화집 ‘우물에서 하늘 보기’가 출간됐다. 2014년 초부터 한국일보에 연재했던 글 27편을 모은 것이다. 이육사, 한용운, 윤극영, 서정주, 백석, 유치환, 김수영, 보들레르, 진이정, 최승자 등의 시편을 통해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다시 읽는다. 그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윤 일병 사건 등 유독 참혹한 일이 많았던 지난해에도 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그 무용함을 빛냈다. 세월호 때는 망각을 지연시켜 일상으로의 복귀를 막았고, 윤 일병 때는 인권의 중차대함을 상기시키며 ‘민생’으로부터 눈 돌리게 만들었다.
황씨는 올해 칠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장 많이 읽고 쓰는 학자 중 한 명이다. 어른이란 말을 칭찬으로 듣지 않는 원로학자의 ‘현재진행형’ 통찰이 돋보인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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