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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컬러는 ‘젠더리스’의 핑크와 블루

입력
2016.01.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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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는 더 이상 여성의 색이 아니다. 11세 소년을 여성복 모델로 내세운 스웨덴 패션 브랜드 아크네 스튜디오. 아크네 스튜디오 제공
핑크는 더 이상 여성의 색이 아니다. 11세 소년을 여성복 모델로 내세운 스웨덴 패션 브랜드 아크네 스튜디오. 아크네 스튜디오 제공

패션 피플을 열광시키는 요즘 가장 핫한 브랜드 아크네 스튜디오. 북유럽 스타일의 대변자인 이 스웨덴 브랜드는 2015 가을·겨울 시즌 여성복 광고 캠페인에 11세 소년을 모델로 등장시키면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니 요한슨의 아들인 이 성장기 소년은 하이힐에 핸드백을 든 채 모델 뺨치는 ‘포스’로 개성을 뽐냈다.

조니 요한슨은 “나는 새로운 세대들이 패션을 대하는 태도를 볼 때마다 정해진 규칙에 얽매이거나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입증하려하기보다 옷 자체가 담고 있는 커팅과 디자인 등의 특징에 더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을 느꼈다”며 “이런 영감을 불어넣어준 아들 프라세가 (모델로)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말했다. 젠더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고 못 박았지만, 젠더리스, 혹은 무성(agender) 패션으로 불리는 패션계의 강력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축구광인 아들 프라세는 패션지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옷이 남자 옷인지 여자 옷인지는 나한테 중요하지 않다”며 “옷에 어떤 구분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 구분 같은 옷의 관습이 아닌 옷 자체에 집중하는 새로운 세대의 감각을 보여주는 아크네 스튜디오. 아크네 스튜디오 제공
성 구분 같은 옷의 관습이 아닌 옷 자체에 집중하는 새로운 세대의 감각을 보여주는 아크네 스튜디오. 아크네 스튜디오 제공

미국 색채 전문기업 팬톤이 무성 패션의 이 도도한 흐름에 본격 가세했다. 매년 올해의 컬러를 선정, 발표하는 미국 팬톤색채연구소가 2016년의 색깔로 낮은 채도의 페일 핑크와 소프트 블루를 골랐다. 공식 명칭은 ‘로즈쿼츠(Rose Quartz)’와 ‘세레니티(Serenity)’. 대칭적이며 상호보완적인 두 색의 그라데이션을 통해 성의 경계를 흐리며 전통적인 색채 관습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파스텔톤의 핑크와 블루는 더 이상 각기 여성과 남성을 상징하는 성 인지적 색상이 아니며, 분홍과 파랑 사이를 넘나드는 유동하는 성 ‘유니섹스 팔레트’가 올해의 컬러인 것이다. 2000년부터 올해의 색을 선정해온 팬톤이 두 가지색을 동시에 내놓은 것도 처음이거니와 파스텔색이 등장한 것도 2006년 이후 최초다.

팬톤색채연구소의 레아트리스 아이즈먼 이사는 “세계의 많은 곳에서 패션과 색채에 대한 성적 고정관념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고, 그 경험이 디자인의 다른 모든 분야에서 컬러 트렌드에 영향을 끼친다”며 분홍과 파랑의 동시 선정이 “젠더 평등과 유동성을 지향하는 사회운동, 자기표현 수단으로서의 색채, 색채 사용에 대한 색다른 접근법”에 대한 응답임을 명시했다. “2016년 봄, 남자와 여자의 옷 사이에는 어떤 인지 가능한 차이도 없다. 남녀 모두 호흡하고 성찰하고 유희하려는 욕망만이 있을 뿐이다.”

팬톤이 선정한 올해의 컬러 '로즈 쿼츠'와 '세레니티'. 팬톤 제공
팬톤이 선정한 올해의 컬러 '로즈 쿼츠'와 '세레니티'. 팬톤 제공

지난해에는 진한 와인색인 마르살라(Marsala)가 올해의 색이었다. 건강하고 풍요로우면서도 매력적이고 세련된 색상이었다. 버건디, 벨벳레드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며 2015년을 석권했던 이 적자주색은 그러나 올해 평정과 치유의 색 로즈쿼츠와 세레니티에 권좌를 넘겨야 한다. 테러와 경제 위기, 사건과 사고의 연속이었던 2015년은 불안의 감각을 극대화했고, 매일의 소용돌이에 지친 현대인들에겐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심리적 안정과 웰빙이 제1의 욕구로 자리잡았다. 내면의 고요와 평화는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영혼의 목적지.

팬톤은 “로즈쿼츠와 세레니티는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현대인의 갈망을 충족시키는 안락한 컬러”라며 “불안과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고요와 이완을 불러일으키는 색”이라고 설명한다. 로즈쿼츠는 따뜻하고 포근한 장미톤으로 동정심과 평정의 느낌을 전달하며, 세레니티는 머리 위에 넓게 펼쳐진 푸른 하늘이 주는 고요함, 화창함, 청명, 침착 등을 의미한다고. 험난한 시기에도 기분전환과 휴식의 느낌을 만끽할 수 있는 색상들이라는 것이다.

올해의 컬러는 이미 런웨이를 화사하게 수놓고 있다.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가 지난해 가을 공항 컨셉트로 진행한 2016 봄ㆍ여름 레디투웨어 컬렉션은 두 색 모두를 나란히 선보였으며, 프라다, 펜디, 로베르토 카발리, 톰 브라운, 발렌티노 등 오트 퀴튀르의 주요 디자이너들이 로즈쿼츠와 세레니티를 두드러지게 컬렉션에 사용하게 있다. 메인 컬러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파스텔톤인 만큼 같이 매칭할 수 있는 색들도 전반적으로 채도가 낮다. 실버 그레이, 크림 골드, 라벤더 포그, 라일락 그레이 등 무채색에 가까운 컬러들이 올해의 컬러와 잘 어울리는 색들로 제안됐다. 최근 몇 년간 강세를 보여온 오렌지도 복숭아 빛의 피치 에코로 차분해졌다.

팬톤이 선정하는 올해의 컬러는 해마다 적중도가 제각각이지만, 의상, 보석, 패션 액세서리, 웨어러블 기기 등을 비롯해 메이크업, 인테리어 장식, 그래픽 디자인 등 산업 전반에 끼치는 영향력이 막강하다. 지난해 마르살라를 비롯해 2014년의 에메랄드 등이 높은 적중률을 보이며 세계의 통일색 역할을 한 바 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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